햄릿
(무대 밖에서)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햄릿 등장.
햄릿
어머니, 무슨 일이십니까?
왕비
햄릿, 너의 아버님(죽은 남편의 동생이자 새아버지)께서 너 때문에 대단히 화가 나셨다.
햄릿
어머니, 어머니 때문에 저의 아버님도 대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왕비
아니, 그런 불성실한 대답이 어디 있느냐?
햄릿
아니, 그런 부도덕한 질문이 어디 있습니까?
왕비
왜 그러느냐, 햄릿?
햄릿
왜 그러십니까?
왕비
나를 잊었느냐?
햄릿
잊다뇨! 천만에요! 왕비이며, 남편의 동생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저의 어머니십니다.
왕비
음... 계속 그렇게 나오면 너를 혼내줄 수 있는 분을 불러야겠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네 번째 작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입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극작가, 시인, 배우로, 전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이 작품은 사실 4대 비극(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 왕) 중 가장 대표작인지라「희극의 파편」시리즈에 왜 들어갔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요.
셰익스피어의 작품 특징 중 하나는 인물들이 운문과 산문의 혼용 속에서 지독한 언어유희, 말장난, 대구법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안 희극적일래야 안 희극적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엄마와 아들 햄릿의 말싸움 장면입니다.
햄릿의 아버지(덴마크의 왕)가 남동생에 의해 독살당해 죽었습니다. 그 사실도 모른 채 햄릿의 엄마는 그 남동생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홀로 아는 햄릿은 엄마가 답답해 미칠 지경이죠.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햄릿은 커튼 뒤에서 엿듣고 있던 폴로니어스(햄릿의 예비 장인어른)를 칼로 찌르고 만다.
햄릿
(칼을 빼들고) 이건 뭐야? 쥐냐? 죽어라, 죽어! (커튼 속을 찌른다.)
폴로니어스
(쓰러지면서) 아이고, 나 죽는다!
왕비
아니, 이게 무슨 짓이냐?
햄릿
모르겠습니다, 저도. 왕입니까? (커튼을 들고 보니 폴로니어스가 죽어있다.)
왕비
아, 이 무슨 난폭하고 잔인한 짓이냐?
햄릿은 새로운 왕(아버지의 남동생)을 죽이는 것이 최선의 복수라고 생각은 하지만 특유의 우유부단함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갑자기 엉뚱한 사람이 죽고 맙니다. 햄릿은 졸지에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햄릿
(폴로니어스의 시체를 보면서) 경솔하게 아무 데나 참견하는 못난 바보 같으니. 좀 더 훌륭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다 네 운명으로 알고 받아들여라. 너무 설치면 위험하다는 걸 이제는 알았겠지. (엄마에게) 그렇게 손만 쥐어뜯지 마시고 진정하고 앉으십시오. 제가 그 가슴을 쥐어짜드릴 테니까. 그 가슴에 도리가 통한다면 말입니다. 설마 그 망측한 행위 때문에 가슴이 놋쇠처럼 굳어져 감정이 전혀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무감각해진 것은 아니겠지요.
왕비
대체 내가 무슨 행동을 했기에 네가 감히 그토록 무례하게 큰 소리로 욕을 하며 대드는 것이냐? (생략) 아니, 대체 뭐가 어쨌다고 이렇게 떠들고 야단법석이냐?
햄릿
(벽에 걸린 두 초상화 쪽으로 왕비를 데리고 가서) 자, 보십시오! 이 그림과 저 그림을. 같은 피를 나는 두 형제분의 초상화입니다. 보십시오. 저 빼어나게 아름다운 얼굴을! (생략) 모든 신들이 이 사람야말로 모든 남성의 모범이라고 공표한 듯한 남성, 이분이 전남편이십니다. 자, 다음에는 이쪽 그림을 보십시오. 현재의 남편입니다. 병든 보리이삭처럼 형을 말려죽인 놈입니다. 눈이 있습니까, 어머니는? 이런 아름다운 산을 버리고 이런 황무지에서 맛있는 먹이를 찾다니, 기가 막히는군! 정말 눈이 있습니까? 설마 이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요. 어머니 정도의 나이가 되면 불같은 욕정도 숨이 죽어 순해지고 분별심에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까? 분별심이 있다면 여기서 이리로 자리를 옮기지는 않을 겁니다. 욕정이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감각도 있을 텐 데, 그러나 미치광이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아무리 광증 에 자유를 빼앗긴 감각이라도 약간의 식별력은 남아 있을 텐데, 이런 뚜렷한 차이를 구별 못하시나요? 귀신한테 흘려서 눈뜬 장님이라도 되셨단 말입니까? 감각이 없어도 눈이 있다면, 시력이 없어도 감각이 있다면, 손이나 눈이 없어도 귀가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이 없어도 코만 있다면, 혹은 비록 병든 감각일지라도 한 조각만 남아 있다면 이렇듯 망령을 부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 수치심아, 너의 부끄러움은 어디 갔느냐? 저주받을 욕정아, 네가 중년 부인의 뼛속에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을 보니, 피 끓는 청춘 속에서 도덕이 초처럼 불에 녹아 없어지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느냐! 감당하지 못할 욕정에 빠지더라도 창피해할 것은 조금도 없다. 머리에 서리가 앉은 늙은이도 활활 타는 정욕의 불길에 휩싸이고, 이성이 욕망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판이니!
왕비
오, 햄릿, 그만해라. 네 말을 들으니 비로소 이 마음속이 뚜렷이 들여다보이는구나. 내 마음속에 새겨진 이 시커먼 오점,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으리라.
햄릿
아니, 지워지기는커녕 땀내 나고 기름에 전 이불 속에 들어가 욕정에 넋을 잃고, 돼지처럼 엉겨서 시시덕거리고...
왕비
오, 그만해라. 네 말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찌르는구나. 제발, 그만해라, 햄릿.
햄릿
살인자! 악당! 선왕의 백분의 일만도 못한 하인 같은 자식, 폭군 중의 폭군, 영토와 왕권을 가로챈 소매치기! 선반 위의 귀중한 왕관을 훔쳐다가 제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놈...
(생략)
햄릿
저분을, 저분을 보십시오! 저렇게 창백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저 모습, 저 가슴에 맺힌 사연을 들으면 돌도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제발, 저를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그렇게 애처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시면 저의 굳은 결심이 꺾이고 맙니다. 그러면 제가 해야 할 일이 빛을 잃어 피 대신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왕비
누구에게 말을 하는 거냐?
햄릿
저기 아무것도 안 보이십니까?
왕비
아무것도 없잖니.
햄릿
그럼, 아무 소리도 안 들리십니까?
왕비
아니, 우리 두 사람의 말소리밖에는...
햄릿
아, 저기를 보십시오! 지금 사라지고 있잖습니까!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보십시오, 저리로 가십니다. 지금 막 문 밖으로 나가십니다!
왕비
네 눈에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구나. 광증은 종종 그런 환상을 그려낸다더라 (생략) 아, 햄릿, 너는 내 가슴을 둘로 갈라놓았다.
햄릿
아, 그렇다면 그 나쁜 쪽은 버리시고, 나머지 좋은 쪽으로 좀 더 깨끗하게 살아가십시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왕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
햄릿
제가 절대로 하지 마시라고 한 말을 잊어버리고 무슨 짓이든지 하시지요. 비곗덩어리 왕이 유혹하면 다시 침실로 따라가시고요. 음탕하게 볼을 꼬집히고, '요, 귀여운 생쥐!'라고 속삭이게 하십시오. 냄새나는 입으로 두어 번 입이나 맞추고, 그 징글맞은 손가락으로 목을 만지작거리면, 그때는 다 고해 바치시지요. 실은 그 애가 미친 것이 아니라 미친 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어떤가요? 한마디도 안 지고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햄릿이 머릿속으로 상상이 가시나요?^^ 그 성격이 햄릿의 장점이자 모두의 파멸로 이끄는 단점이 되기도 했답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햄릿은 미친 걸까요? 미친 척하는 걸까요?
2. 햄릿처럼 어른, 권위를 가진 존재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파했던 적이 있나요? 윗세대가 아니더라도 불편한 후배에게 그런 적이 있나요?
3. 그것은 기싸움이었나요, 아니었나요?
4. 그렇게 하고 결국 본인의 생각대로 상황이 재조정됐나요, 안 됐나요?
5. 이후 그런 발언을 후회했던 적이 있나요? 그 말대꾸의 감정은 어디에서 기인됐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광기는 그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말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선언한다.
-미셸 푸코-
오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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