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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라는 감옥

「희극의 파편」 번외 - 진짜 내 이름은...

by 재준

Mi chiamano Mimi,
사람들은 저를 미미라고 불러요.


il perchè non so.
그 까닭은 저도 몰라요.


ma il moi nome
사람들은 저를 미미라고 부릅니다만


è Lucia.
진짜 이름은 루치아입니다.


Sola mi fo
저는 외톨이에요.


il pranzo da me stessa.
식사도 혼자 하지요.


Non vado sempre a messa,
교회에는 열심히 나가지는 않지만,


ma prego assai il Signor.
때때로 기도하기는 좋아합니다.


Vivo sola, soletta
저는 외톨이에요.


là in una Bianca cameretta
나만의 하얗고 작은 방에서


guardo sui tetti e in cielo,
조그만 지붕 사이로 하늘을 봐요...



내 이름은 숙이랍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에레나예요.


그냥그냥 애니라고도 부른답니다.


술이 좋아 마신 술이 아니랍니다.


괴로워서 마신 술에 내가 취해서


고향에 부모형제 고향에 내 친구


보고파서 웁니다.


어느날 신사동에서 어느날 이태원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은 거짓이예요.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시 「희극의 파편」 시리즈를 접어두고 번외 편으로 돌아왔습니다.


희곡의 대사 한 조각, 장면 하나를 붙잡고 들여다보는 「희극의 파편」 시리즈를 연재하며

저는 오래된 감정의 표면을 꾹꾹 눌러보고, 웃기면서도 아픈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파편을 감정적으로 응시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패턴의 방식은 어느 순간 정해진 틀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을 갖추는 건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스스로 갇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중간중간 번외편을 연재하여 그런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합니다.


‘희극’이라는 단어는 꼭 희곡이 아니라도 우리 삶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이 번외편은, 그 흩어진 희극을 줍는 작은 산책입니다.
가볍고, 조금은 무계획적이며, 말보다 여운이 많은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웃을 준비는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ㅎㅎ 그냥 바라보면 됩니다.


먼저 이 두 영상을 시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이름은 미미> <내 이름은 숙이>

출처 : HalmaCineTokki할마씨네토끼 채널, 진당 1 채널


<내 이름은 미미>


푸치니(Giacomo Puccini) 작품〈라 보엠〉(La Bohème)을 알고 계신가요?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편하게 영상을 시청해보세요. 노래가 좋습니다^^

자유롭고 가난하지만 열정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 중 '내 이름은 미미' 넘버곡은 아름답지만 외롭고 한가한 여성의 삶을 나타낸 곡입니다.



Vivo sola, soletta

저는 외톨이에요.


là in una Bianca cameretta
나만의 하얗고 작은 방에서


guardo sui tetti e in cielo,
조그만 지붕 사이로 하늘을 봐요.


ma quando vien lo sgelo
하지만 봄이 오면


il primo sole è mio!
햇빛은 제일 먼저 저를 찾아오지요.


il primo bacio dell' aprile é mio!
4월의 첫 키스도 제가 먼저에요.


Germoglia in un vaso una rosa..
꽃병에는 장미가 가득 꽂혀 있어요.


Foglia a foglia la spio
전 그 하나하나 향기를 맡습니다.


Cosi gentile il profumo d'un fior!
얼마나 달콤한지 아시나요!


Cosi gentile
너무도 달콤한


il profumo d'un fiore!
그 꽃향기!


Ma i fior ch'io faccio, ahimè!

제가 수놓은 꽃과는 비교도 안 되겠죠.


non hanno odore.
내 꽃들은 향기가 없습니다...


Altro di me non le saprei narrare?
더 무슨 말씀을 드릴까요?


Sono la sua vicina
저는 이런 시간에 당신을


che la vien fuori d'ora a importunare.
방해나 하고 있는 이웃이군요.



<내 이름은 숙이>


이수진의 '내 이름은 숙이'는 정확한 노래 배경에 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지만,


가사 내용을 보고 짐작해보자면, 아마 가부장적 문화에서의 한국 여성의 억압과 차별에 관한 노래가 아닐까 싶네요. 해병대 비공식 군가에서도 나오는 노래 중 하나라고 합니다.


내 이름은 숙이랍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에레나예요.


그냥그냥 애니라고도 부른답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 마세요.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그냥 애니라고만 불러주세요.


술이 좋아 마신 술이 아니랍니다.


괴로워서 마신 술에 내가 취해서


고향에 두고온 첫사랑 삼돌이


못 잊어서 웁니다.


어느날 신사동에서 어느날 이태원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은 거짓이에요.



어떤가요? 동서양의 두 노래가 이렇게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그들의 이름은 루치아와 숙이였습니다. 그런데 왜 미미, 에레나라고 불리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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