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메아스 (주인)
저자는 하인들 사이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잘 알고 있을 테지. 저자는 캐묻기를 좋아하는 작자거든. 나오는군그래. 얘! 여봐라...
파르메논 (집사)
어떻게 할깝쇼, 영감마님?
데메아스
어떻게 하느냐고? 그 문에서 나와 이리로 오기나 해. 이리로 조금 더 오란 말이다.
파르메논
자요.
데메아스
파르메논아, 내 말을 들어봐라. 내 너를 때리지는 않을 테니 그리 알고 말하란 말이다.
파르메논
때린다고요? 제가 무슨 짓을 했기에 때린다는 거죠?
데메아스
이봐라. 내 말을 들으란 말이다. 그 어린애가 누구 아인가 말이다.
파르메논
네?
데메아스
누구 아이냐 말이야! 아비가 누구지?
파르메논
영감마님이시죠...
데메아스
그렇담 말 다했다. 넌 나를 놀리고 있어.
파르메논
제가요?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일곱 번째 작품은 메난드로스의 '사모스의 여인'입니다.
메난드로스(Menander, 기원전 342년경 – 기원전 291년경)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대표적인 ‘신희극(New Comedy)’ 작가입니다. 그는 이전의 정치 풍자와 사회비판이 주요 특징이었던 전통 희극을 탈피하고 개인의 삶과 관계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웃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 복잡한 인물 관계와 어지러운 감정선, 관용과 화해의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오늘날의 tv시트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모스의 여인> 작품은 전편이 온전히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줄거리와 주요 장면을 복원한 내용뿐이 볼 수 없는데요. 그래도 데메아스의 독백 부분은 현존하는 그리스 희극 중 단연 압권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데메아스는 사모스 출신의 첩(여자 하인) 크리시스를 두고 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기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가가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인 모스키온이 몰래 크리시스와 관계를 맺어 나은 아이라고 오해하게 됩니다. 사실은 데메아스의 친구 니케라토스의 딸과 모스키온의 아이였는데 말이죠.
화가 난 데메아스는 크리시스와 아기를 길바닥에 내쫓게 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니케라토스는 그 둘을 자신의 집으로 들이게 됩니다.
그러고나서 다시 상황이 역전됩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 니케라토스는 이 모든 책임을 자신이 떠맡은 것 같아 분개하여 아이를 불에 태우겠다고 합니다. 데메아스는 막상 자신의 손자가 불에 타는 것이 두려워 다시 크리시스와 아이를 데려오려고 합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데메아스
(조롱하는 투로) 숙녀시여? 당신은 마을로 들어가면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크리시스! 너같이 사랑을 파는 여인은 구르고 저리 굴러서 사내놈들이 취해서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술을 먹여 놓고는 돈벌이를 한단 말이다. 그 사내들은 곧 죽지 않으면 배고파서 비실비실하다가 죽을 거야. 내 짐작엔 너 이상으로 그 일에 대해서 더 잘 알 사람이 없을 것이다. 넌 이제 네가 어느 정도라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이다. 거기 그대로 서 있어.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크리시스
아, 내 신세야!
(생략, 크리시스와 아이는 니케라토스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된다.)
데메아스
큰일 났군! 저렇게 큰 소리로 야단이니. 불을 가져오라고 하는군그래. 뭘 하려는 것일까? 뭐? 어린애를 태운다고? 이를 어쩌나! 내 손자가 내 눈앞에서 타 죽는 꼴을 봐야만 하나? 여기 다시 나오는군. 마치 폭풍이나 질풍 같지, 사람 같지를 않군.
니케라토스
(뛰어나오며) 데메아스 영감! 크리시스가 내게 반항해서 아주 괘씸하게 구는구려.
데메아스
어떻게?
니케라토스
그 계집애가 내 마누라에게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어린애를 꼭 쥐고 아무리 내가 뺏으려 해도 뺏기지 않으려 하는군요. 그러나 어디 두고 보라지. 그 계집애까지 죽여 버릴테니.
데메아스
죽여 버려?
니케라토스
그것이 이 일을 저지른 한통속이니 말이오.
데메아스
영감! 제발 그러지 마시오. (무서워 움츠리고 있다.) 저 사람 마치 미친 사람 같군... 저 쏜살같이 뛰어 들어가는 좀 보지. 난 그런 야단스러운 꼴을 처음 보네.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해버리는 게 차라리 낫겠어. 이크! 문이 또 열리는군그래.
(이때 크리시스가 뛰어나오는데, 어린 것을 아직도 안고 있다. 뒤에 매를 들고 잡아 죽일 듯한 기세로 니케라토스가 쫓아 나온다.)
크리시스
에구머니! 이를 어쩜 좋아요! 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린애를 뺏을 테니 어쩌지?
데메아스
(자기 집 문 앞에서) 크리시스야! 이리 오너라. 안으로 들어와라... (크리시스는 그의 뒤로 숨는다.)
니케라토스
데메아스! 비켜요. 어린애는 내가 뺏어야겠소. 그런 다음에 여편네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데메아스
이자가 미쳤어. 날 때릴 테야?
니케라토스
때리고말고.
데메아스
(크리시스에게) 넌 어서 뛰어 들어가라. (니케라토스에게) 그럼 내가 때리지 않고 가만있을 줄 알고. (둘은 붙잡고 씨름한다.) 크리시스야! 어서 뛰어. 이 영감쟁인 너무 세차서 내가 이길 자신이 없다. (크리시스는 어린것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다. 니케라토스는 더욱더 화가 나서 쫓아 들어가려니까 데메아스가 그를 붙잡는다.)
니케라토스
응! 이젠 네가 공격해왔겠다. 그럼 나는 막아주지.
데메아스
너는 여자를 때리려고 했고, 그리고 추격했어.
데메아스의 츤데레적인 성격이 보이시나요?^^
평소 언행이 거칠거나 나빠도 중요한 상황에서 마음을 고쳐먹고 좋은 행동을 하는 캐릭터는 결국 호감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ㅎㅎ
이후 상당 부분 원고가 손실되어 간단한 줄거리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둘의 갈등은 해소되어, 두 집안은 결혼을 승인하고 평화를 되찾는다고 합니다. 웃긴 건 상황이 해결되었는데도 아들 모스키온은 홀로 아버지 눈치를 심하게 보는 상황입니다.
모스키온
그러나 그렇다고 나는 절대로 비겁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이 사건을 처리하지 않을 테야. 오히려 나는 아버지를 위협해서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겠다고 해봐야겠어. 그러면 아버지는 다신는 꾸중을 안 하시고 조심스럽게 나를 다룰 테지. (집사 파르메논에게) 여봐라.
파르메논
안녕하세요, 도련님!
모스키온
그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 외투하고 어떤 종류라도 좋으니까 칼을 하나 가져오너라.
파르메논
칼을요? 뭘 하시려고요?
모스키온
어서 들어가서 가져오기나 해. 잔소리는 집어치우고.
파르메논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모스키온
맞아야 알겠니?
파르메논
천만엡쇼. 들어갑죠.
모스키온
그럼 왜 머뭇거리는 거야? (파르메논, 들어간다.) 인제 아버지가 오셔서 날 붙잡으시겠지. 그래도 나는 절대로 안 되겠다고 버티어 봐야지. 좀 그래 보다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될 때 못 이기는 체하고 그의 말에 복종해야지.
(생략)
파르메논
아뇨, 지금 모두들 도련님 잔치 준비에 바쁘던걸요. 술을 젓고 향불을 피우고 야단들인뎁쇼.
모스키온
내 말 안 들려? 가지고 오란 걸 가져왔냐 말이다!
파르메논
아아뇨. 이거 보세요 도련님! 모두들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 빨리 가셔서 신부나 데려오세요. 도련님은 행복하시단 말예요. 아무 일도 없으니 걱정 마세요.
(생략)
모스키온
어서 빨리 들어가지 못해?
파르메논
(문에서) 결혼식을 참말로 하는 거예요!
모스키온
어서 빨리 가란 말이야! 가서 소식이나 듣고와. (파르메논 들어간다.) 인제 우리 아버지가 오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버지가 오시지를 않고 화가 나서 내가 가도록 내버려 두시면 어쩌죠? 그건 생각지 못했거든요. 그러지는 않으시겠지만, 만약에 그러신다면 말예요. 불가능이란 없으니까요. 맙소사, 그렇게 되면 나는 뭐가 되죠? 바보밖에 더 되겠어요.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
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오해는 어떻게 삶의 리듬을 구성할까요? 그것이 있으면 삶에 무엇이 도움이 되나요?
2. 모스키온은 호감인가요, 비호감인가요? 나와 비슷한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3. 데메아스는 크리시스와 아이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요? 데메아스의 사랑 표현 방식은 도대체 뭘까요? 그를 이해할 수 있나요?
4. 남들의 결점이나 약점이 꼭 내 모습 같아 보인 적이 있나요? 그럼 그 사람이 좋아지나요, 싫어지나요?
5. 착한 사람이란 뭘까요? 어느정도 세속적인 것이 좋은 건가요, 아예 그러지 않는 사람이 좋은 건가요, 그럼 나쁜 사람이란 뭘까요? 둘 다 포함되시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그리고 그 틈에서 가장 진실한 얼굴을 발견한다.
-버지니아 울프-
오늘의 명문입니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 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意思)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말로 바람쟁이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올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유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도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多幸)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不幸)해하는 법이 없다. 같은 나무, 이웃 나무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나무는 서로 속속들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정하고 공감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기쁘고, 일생을 이웃하고 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참다운 친구다.
이양하 - 나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