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소리치며) 폴랴, 가정교사에게 내 집무실로 오라고 전해요. (책상에서 봉투를 꺼내어 그 속에 돈을 넣고는 봉투를 책상 서랍 속에 치워둔다.)
율리야 바실리예브나(가정교사)
(소심하게 문을 열며) 저 부르셨어요?
주인
예, 예, 어서 오시죠. 앉으세요,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율링 바실리예브나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 궁금한 듯 주인을 쳐다본다.
주인
자, 계산합시다. 아마도 돈이 필요하실 텐데,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너무 정중하시군요... 자... (안락의자에 앉으며) 우리가 한 달에 30루블로 계약을 했었죠.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수줍어하며 정정한다.) 저... 40에...
주인
아니요, 30씩 하기로 했죠... (책상에서 수첩을 꺼내, 페이지를 넘기며 필요한 부분을 찾는다.) 내 수첩에 쓰여 있길... 나는 항상 선생님께 30루블씩 지불한 것으로 되어 있네요... 그리고 두 달간 근무하셨으니...
율리아 바실리예브나는 침묵하며 머리를 떨어뜨린다.
율리아 바실리예브나
(소심하게) 두 달 반 동안인데요...
주인
정확히 두 달입니다. (다시 수첩을 본다.) 그렇게 쓰여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곧 60루블을... (계산서를 옆에 놓는다.) 일요일을 아홉 번 제해야 하고... 콜랴('콜랴(니콜라이)'세례명을 가진 사람들이, 해당 이름의 성인(聖人)을 기념하는 날)와 일요일에는 수업을 안 하셨으니까요. 산책만 하시고... 그리고 휴일이 세 번...
율리야 바실리예브나는 얼굴을 붉히며 신경질적으로 옷에 붙은 보풀을 잡아꼬기 시작한다. 주인은 그녀가 항변하길 기다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는 침묵한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열두 번째 작품은 안톤 체홉의 '우유부단한 사람'입니다.
약속의 안톤 체홉의 작품이 돌아왔습니다.ㅎㅎ
작품 <우유부단한 사람>은 촌극 수준 분량의 아주 짧은 단편 희곡입니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인은 가정교사 '율링 바실리예브나'를 시험해보려고 합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일부러 월급을 깎는 척을 해보는 것인데요. 가정교사의 대응은 어떨까요?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주인
휴일이 세 번... 지우고 나면, 자, 12루블. (계산서에서 지운다.) 그리고 나흘 동안 콜랴가 아파서 수업이 없었으니... 바랴와만 수업을 하셨죠. 그리고 사흘간 이가 아프다 하셔서 아내가 점심 이후에는 수업을 하지 마시라 했으니... 12루블하고 7루블, 더하면 19루블이네요. 그러면 제하고 남은 돈이... 음... (계산에서 깎는다.) 모두 41루블. 맞죠?
율리야 바실리예브나는 낮게 머리를 숙이며, 신경질적으로 손수건을 구긴다. 그러고 나서 코를 푼다.
주인
신년 노브이 고드 기간(러시아의 새해맞이 휴일.) 동안에는 차받침과 찻잔을 깨뜨리셨고요. 자, 2루블 까고. (계산에서 제한다. 일어나서 방을 거닌다.) 찻잔은 이보다 더 비싸지만, 유명제품이거든요, 그래도... 맙소사! 어디 남아나는 것이 있는 줄 아십니까! 그리고 선생님이 부주의하신 관계로 콜랴가 나무에 기어오르다가 프록코트를 찢어먹었죠... 10루블 까고. 또 선생님의 부주의로 하인이 바랴의 구두를 훔쳐갔죠. 항상 주의해서 모든 걸 살피셔야 된다고요. 유감스럽지만요. 그래서인즉, 5루블 까고... 1월 10일 제게 10루블을 빌려 가셨으니까...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절망적으로, 속삭이며) 안 빌렸는데요!
주인
(수첩을 보며)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눈물을 글썽이며) 네, 알겠습니다... 좋아요.
주인
(계산서를 보며) 41루블에서 27루블을 제하면...(제한다.) 14루블이 남는군요...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떨리는 목소리로) 전 딱 한 번밖에 빌리지 않았어요. 부인께 3루블 빌렸어요... 더 빌린 적은 결코 없어요...
주인
예? (수첩을 넘긴다.) 이런, 적어놓지 않았군요! 14루블에서 제하면... (제한다.) 11루블이 남는군요... 자, 여기 당신 돈입니다. 선생님, 받으시죠. (돈을 센다.) 셋... 셋... 셋... 하나 그리고 하나... 받으시구려!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메르시.
주인
(악의에 차) 뭐가 감사하다는 겁니까?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고개를 들며) 돈을 주셔서...
주인
(소리치며) 내가 당신 돈을 빼앗았는데 그래도 괜찮다는 거요? 제기랄, 내가 당신 돈을 강탈했다고요! 당신 돈을 훔쳤단 말입니다! 근데 뭐가 고맙다는 거요?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다른 곳에서는 다들 한 푼은커녕 정말이지 아무것도 주지 않았거든요...
주인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요? 당연하죠. 그렇게 행동하시니까요. 난 그저 농담을 했을 뿐이에요... 당신에게 100루블 전액을 주겠어요. (돈이 든 봉투를 꺼내 나머지 금액을 계산하며) 자, 여기 봉투 안에 당신을 위해 준비한 금액이 들어있습니다. (돈을 건넨다.)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메르시!
주인
뭐가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이 다 있담? 왜 대항하지 않는 거요? 왜 침묵하시냐고요? 정말 세상에 이렇게도 입이 무거운 사람이 다 있나? 빵을 위한 투쟁은 필요하다, 난 이렇게 생각하오. 그러니... 만약 당신을 화나게 하면 맞서세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요!
율리야 바실리예브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난다.
주인
너무 심하게 대해서 죄송하군요. 주제넘게 가르치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우유부단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율리야 바실리예브나
메르시. (문으로 다가가며) 메르시. (나간다.)
주인
그렇군. 이 세상에는 약한 것이 강한 거로군!
막.
어떤가요?
왜 제목이 <우유부단한 사람>인지 아시겠나요? 짧지만 무언가 툭툭 건드리는 게 있지 않나요?^^ 이게 체홉 작품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율리야 바실리예브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요?
2. 내가 하는 일 중에서 너무 잘하려는 부분이 있을까요?
3. 내가 하는 일 중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계산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4. 내가 하는 일 중에서 능숙함을 보여주기 위해 표현을 과장시키거나 이것저것 장식이 붙은 적이 있나요? 그것은 꼭 나쁜 건가요? 어느정도는 필요한 것인가요?
5. 어설픈 사람이 좋나요, 능숙한 사람이 좋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대변약눌(大辯若訥)
말을 잘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듬는 것처럼 보인다.
-노자-
오늘의 작품입니다.
김환기 화백(1913-1974), 1963, untitled 김환기 화백(1913-1974) <Untitled>
시간을 갖고 싶다. 그래야 되든 안되는 판가름이 날 것이 아닌가
-김환기-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깊고 큰 솜씨를, 자유로운 시간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