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가 핸드폰을 들고 옥상에 나타난다.
장씨
그래, 잤다. 너 또 술 먹었지? 애비라고 부르지도 마. (사이) 나 그런 더러운 돈으로 살기 싫어. 그래, 더러운 돈. 넌 니 자식들 부끄럽지도 않어? 여자들 팔아서. (사이) 나 신경 쓰지 마. 너보다 훨씬 건강하게 사니까.
장씨, 핸드폰을 끊고 착잡한지 담배를 하나 꺼내려다 집 밖 동교를 발견한다.
장씨
이봐, 이봐 학생, 뭐야?
동교
(일어나) 동교예요. 한동교.
장씨
그런데 왜 여깄어? 잘 데가 없어?
동교
아니요, 아.
동교,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보인다.
동교
이거요.
장씨
그게 뭔데.
동교
등기부요. (생략) 한치곤이 제 할아버지예요.
장씨
한치곤? 아.
동교
아버지는 한석만...
장씨
한석만... 소유주 이전... 한동교... 한동교?
동교
저요.
장씨
그래서?
동교
예. 여기가 제 집이에요.
장씨
응?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습니다. 대학병원 이슈가 있었습니다.ㅎ
오늘 「희극의 파편」열세 번째 작품은 장우재(1971-)의 '여기가 집이다'입니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장소는 고시원입니다. 그곳에는 장씨, 양씨, 영민, 최씨, 신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주인 할아버지가 아들을 보러 미국에 갔다가 사망하게 되고, 20살의 손자 '동교'라는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게 됩니다. 당연히 법적으로 고시원 건물의 소유주는 '동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교' 하는 말이 조금 수상합니다.
그래서... 그 월세 내는 거 안 받음 안 돼요? 식구들끼리 무슨 돈을 내요. 예, 집은 그냥 가장이 책임지는 거죠. 제가요. 제가 이 집 주인이니까.
제가 선별한 장면은 '동교'가 이곳에서 새로운 룰을 정하는 장면입니다. 그 방식은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치기 어린 행동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듣기는 좋습니다.ㅎㅎ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양씨
세금, 전기세, 수도세, 오물세... 유지비. 보통 집이야 가장이 돈을 벌어서 내지만 넌 아직 돈을 못 벌잖아. 학생이라며?
동교
아... 그러네... 그럼 제가 돈을 벌 때까지만 세금 그건 좀 걷어야 되겠네요.
동교, 밖에 쓰레기통이 버려진 락앤락 통을 가져다 자기 돈을 넣는다. 그리고 가방 속 펜을 꺼내 '세금'이라고 쓴다.
동교
여기요. 여기... 넣으면 돼요.
중앙에 락앤락 통을 놓는다. 모두들 웃는다.
(생략, 고시원 금고의 돈을 도둑맞고)
동교
금고 얘기는 왜 안 하셨어요?
장씨
돈이 있으면 그걸 보관하는 게 있지.
동교
아니죠. 보관하는 게 있으니까 들고 가는 사람이 있죠.
장씨
뭔 소리냐?
동교
갖고 싶은 게 있으니까 가져가는 거죠. 훔쳐갈 소지를 제공하는 것도 나쁜 겁니다.
장씨
그래서?
동교, 담배를 꺼내문다.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재떨이를 가져다 놓고 창문을 연다.
장씨
아가야, 세상은 어두운 곳이다.
동교
가만 있어봐요, 집중 좀 하게. (사이) 그러니까 요는 돈이... 아직 돈이 문제라 이거죠?
양시
그래서? (생략) 넌 아직 세상을 몰라.
동교
오케이!
장씨
뭐?
동교, 가방에서 통장을 꺼내 내민다.
동교
이거요.
장시
이게 뭔데?
동교
돈이요. 이거 우리 엄마아빠가 생활비로 보내준 거 모아둔 건데 나는 따로 알바하고 있으니까 필요 없으니까 이거 우리 나눠 써요. (다른 사람들을 보고) 대신 여기 일하고. 장씨 아저씨 하는 일 그런 거. (장씨) 아저씨가 이거 관리해주면 되겠다.
양씨
(통장 확인하며)... 일, 십, 백, 천, 억. (놀란다.)
동교
(생략)그럼요. 어딜 가나 돈이 문제예요. 그놈의 돈. 돈. 돈.
장씨
너 왜 이러냐 우리한테?
동교
여기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여러분 다 사랑해요.
어떤가요? 세입자 입장에선 너무 행복한 장면이네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결국엔 돈, 돈, 돈인 것 같네요. 뭐든지, 아니라고 할수록 더, 더, 더... 그것이 부족할수록 더, 더, 더 돈돈돈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나는 살면서 어떤 장면을 행복하다고 상상하나요?
2. 나의 글쓰기는 상처를 드러내나요, 혹은 덮어주나요, 혹은 재구성하나요?
3. 나의 글쓰기와 상상으로 하는 '행복한 장면'은 현실을 도피하게 하나요, 돌아보게 하나요?
4. 나는 영화나 드라마 속 행복한 장면에서 불행의 징후를 미리 생각하고 있나요? 왜 그런가요?
5. 나의 희망을 정말 믿나요, 혹은 그저 모방하는 마음인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상상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현실이다.
-파블로 피카소-
오늘의 속담입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일이 몹시 급하여 근본적인 해결 없이 이리저리 둘러맞추어 일함
현실을 지탱하는 건 언제나 임시방편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