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 사이에서 아를레킨이 지휘자처럼 앞으로 걸어 나온다.
아를레킨
눈 내리는 거리, 잠에 겨운 거리를 따라
나는 멍청한 녀석을 끌고 다녔지!
열정에 찬 내 눈앞에 세상이 열렸고,
눈보라는 내 위에서 노래를 불렀지!
아, 얼마나 원했던가!
(생략)
이곳에선 아무도 사랑할 줄 모르고,
이곳에선 모두 서글픈 꿈속에서 살아가지!
안녕하신가, 세상이여! 그대는 다시금 나와 함께 있구나!
오래전부터 그대의 영혼은 내게 친근했나니!
그대의 봄을 마시러 가네.
그대의 금빛 창을 향해!
창문을 향해 뛰어든다. 그러나 창문을 통해 보이던 저 먼 곳은 종이에 그려진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종이는 찢겨 나가고, 아를레킨은 꼬꾸라지며 허공으로 떨어진다. 찢긴 종이 사이로 서서히 밝아 오는 하늘이 보인다. 밤이 물러가고 아침이 다가온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열한 번째 작품은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발라간칙'입니다.
알렉산드르 블로크(Александр Блок, 1880–1921)는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그는 러시아 초기 상징주의의 퇴폐주의, 유미주의를 극복하고자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통해 예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탐구하며 그것들의 합입을 꿈꿨던 작가입니다.
그 중 <발라간칙>은 그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희곡으로, 러시아 상징주의 극문학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발라간칙'은 러시아어 '발라간'의 지소형 명사(원래의 뜻보다 더 작은 개념이나 친애의 뜻을 나타내는 형태)로 원래는 '가건물'을 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점점 도시 장터 공연 문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며 장터의 간이 건물에서 열리는 공연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유랑극장', '광대극', '서커스식 간이 무대' 정도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내용은 정말 간단합니다.
'피에로'라는 전형적인 유랑극 캐릭터가 나옵니다. 그는 '콜롬비나'라는 사랑하는 여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를레킨'을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의 방해와 의미를 알 수 없는 환상의 장애물로 인해 그 시도는 자꾸만 가로막힙니다. 극 중 '작가'가 등장해 이 모든 허무한 상징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그 둘을 연인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이내 무대 전체가 혼란스럽게 흔들리며 그 시도 또한 무산되며 끝이 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직접적인 설명을 배제하고 내면 세계를 탐고하고자 하는' 상징주의를 꽤 풍자하면서도, 그 한계를 뚜렷이 직관하고 있는 인물의 비극과 슬픔 또한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극 중 '작가'가 의도한대로 극이 전혀 흘러가지 않아 중간에 나와서 관객들 앞에서 해명하는 장면들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급격하게 분위기가 바뀐다. 모두 생명이 없는 듯 축 처져 의자 위에 늘어진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손이 없었던 것처럼 프록코트 소매가 길게 늘어져 손을 가리고, 머리는 세워진 옷깃 속으로 숨어들어, 의자 위에 텅 빈 프록코트들만 걸려 있는 듯하다. 갑자기 피에로가 벌떡 일어나 달려나간다. 막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머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진 작가가 흥분해서 막 앞의 무대 전면으로 뛰어나온다.
작가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 극에 관해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습니다! 이자들은 나를 비웃고 있습니다! 저는 가장 사실적인 희곡을 썼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간략하게라도 그 요지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 희곡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젊은 연인에 관한 것입니다! 제3의 인물이 나타나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지만, 마침내는 장애물이 사라지고, 연인들은 법적인 결혼으로 영원히 맺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주인공들에게 광대 옷을 입힌 일이 없어요! 이자들은 나도 모르게 무슨 낡은 전설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설도, 신화도, 그 밖의 모든 저속한 것들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알레고리적인 말장난은 더더욱 참을 수가 없습니다! 여자의 땋은 머리를 죽음의 낫으로 부르는 건 정말이지 저속합니다. (TMI : 러시아어 단어 '코사'는 '땋아 내린 머리채'라는 뜻과 '낫'이라는 뜻을 모두 지닙니다. 상징주의자들은 그녀의 머리채 뒤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낫을 봅니다.) 여성 계층을 농락하는 짓입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막 뒤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작가의 목덜미를 움켜쥔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다...
(생략, 작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듯하다.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은 사라지고 창백했던 그녀의 모습도 살아나기 시작한다.)
피에로가 다가가 손으로 그녀의 손을 건드리려는 순간, 피에로와 그녀(콜롬비나) 사이를 비집고 승리의 기쁨에 겨운 작가의 머리가 튀어나온다.
작가
존경하는 관객 여러분! 제 구상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제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장애물이 사라졌어요! 그 신사(아를레킨)는 창밖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오랜 이별 끝에 만나게 된 두 연인의 행복한 조우에 증인이 되시기만 하면 됩니다!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만큼, 이제 이들은 영원히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콜롬비나와 피에로의 손을 마주 잡게 해 주고자 한다. 그때 갑자기 무대장치 전체가 흔들리며 위로 올라간다. 가면들은 혼비백산한다. 작가의 앞에는 빨간 단추가 달린 하얀 피에로 복장을 하고 텅 빈 무대 위에 죽은 듯 누워 있는 피에로만이 남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황급히 도망친다.
피에로
(천천히 일어나 몽상에 잠긴 듯 구슬프게 말한다.)
그대는 나를 어디로 이끈 거요? 그걸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대는 간교한 운명에 나를 팔아넘겼소.
불쌍한 피에로, 이제 그만 일어나자.
가서 신부를 찾아야지.
(잠시 침묵)
아, 떠나 버린 그녀는 얼마나 빛났던가?
(생략)
그녀는 쓰러졌고...
나는 그녀를 비웃기 위해 왔네.
그리고 창백한 얼굴을 한 나는 여기 이렇게 서 있네.
하지만 당신들이 나를 비웃는다면 그건 죄요.
어쩌겠어! 그녀가 쓰러지고 말았는 걸...
나는 이토록 슬픈데 당신들은 즐거운가?
생각에 잠긴 피에로는 주머니에서 피리를 꺼내 자신의 창백한 얼굴과, 힘겨운 삶, 그리고 신부 콜롬비나에 관해 피리를 분다.
막.
어떤가요? 짧은 1막 형식의 희곡입니다. 짧지만 강렬합니다. 사랑의 본능과 필연적 실패와 좌절감을 보여주면서도, 극중 '작가'는 그러한 이분법적인 상징성을 거부하면서 극사실주의적인 희곡을 쓰겠노라 선언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극 안에서의 '피에로'는 그런 사유 방식을 잠시 벗어나서 예술과 현실이 어긋나는 그 불가능성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고뇌합니다... 자신은 이 희곡의 등장인물밖에 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말입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사랑의 실패는 구조적인 문제일까요, 개인적인 문제일까요?
2. 흑백 논리에 빠진 적이 있나요? 그럼 그것을 빠져나오게 하는 사유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3. 글을 쓸 때 어떤 나만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그 기준은 무언가를 따르는 방식인가요, 무언가를 거부하는 방식인가요?
4. 두 개의 생각이 대립될 때 그것의 해결방식은 희극적인가요, 비극적인가요? 희극적이라면 그것은 치유인가요, 아니면 회피인가요? 비극적이라면 그것은 치유인가요, 아니면 회피인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파블로 피카소-
오늘의 속담입니다.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서로에게 아무런 관심 없이 무심하게 보는 일
피에로의 그 멜랑콜리함을 지켜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