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귀여운 새들의 세상

「희극의 파편」18. 아리스토파네스 - 새 中

by 재준

(에우엘피데스와 피테타이로스, 각기 손에 새를 안고 등장)



에우엘피데스


(손에 든 언치새를 보고) 저기 저 나무를 향해 곧바로 가라고?



피테타이로스


(손에 든 까마귀를 보고) 이 빌어먹을 새가 어쩌라는 거야? 되돌아가라는 거야?



에우엘피데스


요것아, 되는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라니 지치기만 하고 돌아오는 곳은 같은 데가 아니야, 시간 낭비이다!



피테타이로스


이놈의 까마귀를 믿다니 내 꼴이 뭔가, 일천 펄롱(1000 펄롱 ≈ 201km)이나 쏘다니게 만들고.



에우엘피데스


나도 그렇지, 이 언치새 말대로 발톱이 닳아빠지도록 걸어 다녔으니.



피테타이로스


나도 그렇지, 이 언치새 말대로 발톱이 닳아빠지도록 걸어 다녔으니.



피테타이로스


그런데 도대체 여기가 어딜까?



에우엘피데스


자넨 여기서부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피테타이로스


아아니 절대로. 엑세케스티데스라도 길을 못 찾을 걸.



에우엘피데스


(생략) 아이고, 이 신세야! 새들을 찾아가려고 별 짓을 다해도 길을 못 찾다니! 그렇습니다, 관객 여러분. 우리의 염원은 사카인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는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쨌든 시민이 되어 보려고 했지만, 우린 반대로 떳떳한 씨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른 시민들과 함께 여태 살다가 고향의 도시에서 도망쳐 나온 거니까요. 그야 뭐 우리가 우리의 도시를 미워하는 건 아닙니다. 위대하고 부유한데다, 세금 무느라고 파산한댔자 그야 각자의 자유지요. 그렇지만 제아무리 시끄러운 매미도 나뭇가지에서 떠들어 대는 건 고작 한두 달인데 아테네 시민들은 법정에서 평생 동안 송사를 노래 부르듯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린 바구니와 냄비와 도금양의 가지를 들고 안주할 조용한 나라를 찾아서 온 겁니다. 이제 새의 왕 테레우스를 찾아가서 그가 하늘을 나는 동안 어디 좋은 마을을 본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려는 거죠. (생략)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피테타이로스


그게 무슨 소리야! 새들의 임금을 부르는데 이리 오너라 하면 돼? '대장'하고 불러봐!



에우엘피데스


그럼 대장! 또 한 번 두드려야 하나? 대장!



트로킬로스


(잡목 숲에서 달려 나온다.) 누구요? 누가 우리 임금님을 부르쇼?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열여덟 번째 작품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새'입니다.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최고의 희극 작가로, 기원전 5세기 말에서 기원전 4세기 초 사이에 활약했습니다. 고대 희극(Old Comedy)의 대표자이며, 정치 풍자와 시적 재치, 외설적 유머를 자유롭게 구사한 인물입니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피테타이로스와 에우엘피데스는 인간 세상(세속적인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먹고 자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새들의 세계를 찾아갑니다. 그들은 먼저 새들의 대장 '오디새'를 만나 자신들의 계획에 대해 설명합니다.


공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델포이로 가려면 보이오티아 인에게 통행 허가를 맡아야 하는 것처럼 인간이 신들에게 제물을 바칠 때, 통행세를 내지 않으면 모든 나라가 외국에 행사하는 권리로 이 천공의 도시를 제물의 구수한 연기가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오디새는 그의 말에 솔깃하여 모든 새를 총동원하여(까치, 호도애, 제비, 뿔난 올빼미, 말똥가리, 꿩, 매, 산비둘기, 뻐꾹새, 홍속조, 홍두조, 자관조, 황조롱이, 아비 티티새, 물수리, 딱따구리 등등, '피테타이로스의 왈; 원 많기도 하다!') 하늘과 땅 중간에 벽돌로 담을 쌓기로 계획합니다. 인간을 이겨먹는 새 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좀 웃깁니다. 마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 사기꾼들이 붙듯이, 사제가 갑자기 나타나 온갖 잡새들의 종류를 거론하며 기도하는 모습에 피테타이로스를 지치게 만드는 가하면, 시인이 나타나 나라의 창설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시를 지어주고 외투를 받아갑니다. (예술가들은 춥고 배고프다는 설정...) 점쟁이가 나타나 이상한 점괘를 알려주는가하면, 측량 기구를 들고와 토지를 측량하고 대지를 구분하는 업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검찰관이 나타나 그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법령을 파는 장수가 등장해 법률 장사를 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어찌저찌 피테타이로스는 새의 제국을 건설하고 신(포세이돈, 헤라클레스, 트리발로스)를 상대로 거래에 승리하여 새들에게 주권을 반환하고 제우스의 딸 (바실레이아)를 색시로 삼기에 성공합니다. 그렇게 끝이 납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지구에서 소식을 듣고 인간들이 새들의 세계에 몰려와 날개와 갈구르 발톱을 구하려는 장면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불효자


아아

하늘을 나는

수리가 되고파!

아아!

망망한 바다 푸른 물결 위를 날고파!



피테타이로스


하! 아까 들은 소식이 사실인 모양이군. 누가 날개가 어떻고 하면서 오는데.



불효자


날아다니는 일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어요. 난 새에 미쳐서 이렇게 당신들과 살고 당신들의 법을 지키려고 날아왔습니다.



피테타이로스


무슨 법 말인가? 새들도 여러가지 법이 있어.



불효자


전부 말입니다. 하지만 내 맘에 드는 건, 새들은 아버지를 쪼고 목을 졸라 죽이는 것도 훌륭한 일이라고 하는 바로 그겁니다.



피테타이로스


그렇고말고, 우리 법에 따르면 병아리 때에 아버지를 치는 놈은 용감한 놈이지.



불효자


그러니까 여기서 살고 싶단 말입니다. 난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이고 그 재산을 물려받고 싶거든요.



피테타이로스


그러나 말이야. 황새의 법전에는 태곳적부터 이런 조문이 있어. '황새 어버이가 새끼를 키워 나가는 법을 가르친 다음에는 새끼가 어버이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불효자


(화가 발끈 나서) 이 먼 길을 일부러 왔는데 겨우 아버지를 봉양해야 한다고!



피테타이로스


아니야, 젊은이. 자네가 자진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내 자네에게 상제 같은 검은 날개를 달아 주지. 또 덤으로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좋은 충고의 말도 보태 주고. 아버지를 때리지 말고, 한 손에 이 날개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발톱을 들고 머리 위에는 볏이 얹혔다고 생각하고, 나가서 보초도 서고 싸움도 하게나. 봉급 받고 살아가며 아버질랑 공경해야지. 자넨 좋은 친구야, 그럼 됐지! 자 트라키아로 날아가서 싸우게.



불효자


바코스를 걸어서(디오니소스 신) 옳은 말씀, 그렇게 하지요.



피테타이로스


아암, 그래야지.



(생략. 밀고자, 등장)


밀고자


솜털 같은 날개를 달고 꼴이 말이 아닌 저 새들은 뭘까? 얼룩진 긴 날개의 제비야, 좀 가르쳐 다오.



피테타이로스


만만치 않은 침략이 시작되는 모양이군. 여기 또 한 놈이 흥얼거리면서 오는데.



밀고자


얼룩진 긴 날개의 제비야, 다시 한 번 와 다오. 어디 계시오, 여기 오면 날개를 달아준다는 양반은?



피테타이로스


나요. 하지만 무슨 목적에 날개가 필요한지 말해보게.



밀고자


이유는 묻지 마시오. 날개가 필요해. 날개가 있어야겠다니까. 난 섬의 소환인 즉 밀고자란 말이요.



피테타이로스


참으로 훌륭한 직업이군!



밀고자


소송거리의 산파역이지. 그러니까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며 법정에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다는 말이오.



피테타이로스


날개가 있으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거지? 여보게, 앞길이 창창한 젊은 사람이 그래 남을 고발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나?



밀고자


그것이 어떻다는 거요? 그렇다고 땅도 팔 줄 모르고.



피테타이로스


아이고, 제우스! 그렇더라도 그 젊은 나이에 그렇게 창피한 꾀를 부리지 않아도 떳떳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지 않나?



밀고자


하지만 난 싫어요. (생략) 난 혈통을 배반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밀고를 생계 삼아 살아왔거든요. 그러니까 어서 빨리 가볍고 날샌 황조롱이나 매의 날개를 달라니까요. 그래야지 섬 사람들을 법정에 소환해서 재판을 제기해 놓고 저쪽에 날아갈 수가 있지 않아요.



피테타이로스


알았네. 그렇게 해야 그 사람이 나타나기도 전에 재판을 끝낼 수가 있단 말이지? 그리고 그 사람이 배 타고 오는 동안에 자넨 섬으로 날아가서 그의 재산을 먹어 버리잔 말인가?



밀고자


네, 꼭 들어맞았습니다. 팽이처럼 이리 돌고 저리 돌아야 한대두요.



피테타이로스


알겠네. 잠깐, 여기 코르키라제 날개가 있어. 이거면 어떻겠나?



밀고자


아이고, 맙소사! 그건 회초리가 아니에요!



피테타이로스


아니 천만에. 날개야, 팽이를 돌게 하는.



밀고자


(피테타이로스에게 맞으면서) 아야, 아야!



피테타이로스


나가 꺼져. 이 개같은 녀석! 남을 걸고 넘어가고,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여줄까? (밀고자 도망친다. 노예들에게) 자, 날개들을 걷어 가지고 들어가자.


노예들, 날개 바구니를 가지고 퇴장.


어떤가요? 인간 세상이 싫어 도망쳐 온 피테타이로스입니다만 어쩌다보니 그가 세속적인 인간을 살피고 조언을 주고, 도움을 주는 인물처럼 묘사가 되네요. 역설적인 장면이네요.ㅎㅎ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나는 현실을 회피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2. 현실을 도피한 피테타이로스가 다시 세계를 구축하고 질서를 만드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3. 그것은 정말 현실을 피하는 일이었던 걸까요, 혹은 현실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는 자의 조용한 실천이었을까요?


4. 아는 것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드나요, 무지가 더 삶을 허무하게 하나요?


5. 새로운 글을 쓰는 행위는 타락인가요, 수행인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I'm still an atheist, thank God.

atheist; 무신론자


-루이스 부뉴엘-


오늘의 음악입니다.



PEGGY GOU - STARRY NIGHT

(출처: Luca Dea 채널)


세계적인 DJ 페기구(1991, 인천)



이제 알 것 같아, 다 알 필요 없다는 걸.


-영상 속 03:2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저 장난으로 당신을 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