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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맞대는 그 따듯함이란..

「희극의 파편」24. 플로베르 - 순박한 마음 中

by 재준

어느 가을날 저녁 그들은 목장을 지나서 돌아왔다. 하늘엔 반달이 빛을 내고 있고 꼬불꼬불한 독크 강에는 안개가 베일처럼 덮여 있었다. 소는 잔디 위에 누워 지나가는 네 사람(오벵 부인, 그녀의 아들 폴, 그녀의 딸 빌지니, 하인 펠리시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 번째 목장 앞을 지나가는데 몇 마리의 소가 길가에 둥글게 모여 서 있었다.



"무서워할 것 없다, 얘야."



펠리시테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슬픈 듯한 노래를 중얼대며 가까이 있는 소 잔등을 쓰다듬었다. 소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으며 다른 소들도 똑같이 했다. 그러나 다음 목장을 지나갈 때 무섭게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은 한 마리의 황소였다. 소는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오벵 부인은 뛰려고 하였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천천히 걸으세요."



그럴수록 두 사람은 빨리 걸었다. 뒤에서는 소의 헐떡이는 소리가 들리며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이었다. 그 발굽은 목장 풀 위에 마치 망치를 때리는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어이쿠, 달리는구나."



펠리시테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두 손으로 흙을 한 움큼 쥐어 소의 눈에다 뿌렸다. 황소는 머리를 숙이고 뿔을휘두르며 무섭게 울어대며 성을 냈다. 오벵 부인은 두 아이와 목장 끝까지 달아나 어떻게 해서라도 그 높은 둑을 넘으려고 애를 썼다. 펠리시테는 황소 앞에서 뒷걸음질치면서 계속 진흙을 눈에 던지며 틈을 내서 외쳤다.



"빨리 올라가세요, 빨리."



오벵 부인은 도랑으로 내려가 빌지니를 둑 위로 밀어올렸다. 그런 다음에 폴을 올려 주고 자기도 오르려다 여러 번 굴러떨어지더니 마침내 올라갔다.


소는 펠리시테를 둑 구석으로 몰았다. 소의 끈끈한 침이 그녀의 얼굴에 묻고 잘못하면 뿔에 받쳐 배가 찢어질 뻔하였다. 그녀는 간신히 나무 울타리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자 몸집이 큰 짐승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멈췄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스물네 번째 작품은 플로베르의 '순박한 마음'입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실주의(realism) 소설가입니다. 대표작으론 '보바리 부인'이 있습니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엄밀한 관찰력과 판단력으로 사물의 진상을 파악하는 과학적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노르만(감성적이고 고독한 풍경을 지닌 환경)인의 피를 이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몽상적이고 낭만적 기질 또한 매우 강한 것이 그의 작품 특징입니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재주는 없지만 충성스럽고 애정이 깊은 한 하녀 '펠리시테'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죽고 자매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러다 한 농부가 그녀를 데려가면서부터 하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돈 많은 과부 때문에 버림받게 된 이후 오벵 부인(과부) 집의 고용인이 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오벵 부인의 딸과 아들을 자기 자식처럼 귀여워하면서 그곳의 앵무새 또한 사랑합니다. 앵무새가 죽자 그것을 박제시키기도 합니다. 오벵 부인이 죽자 마치 할 일을 다 끝낸 듯이 급격히 병세가 심각해지고, 어느 성체 축일 날 그녀는 박제된 앵무새를 길가의 제단에다가 넘기며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녀의 입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샘물이 말라가듯, 골짜기에서 메아리가 사라지듯 심장의 고동이 점점 약해졌다.
그리하여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녀는 반쯤 열린 창문으로 한 마리의 커다란 앵무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는 듯하였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정성을 다해서 키운 앵무새가 갑자기 죽어있는 모습을 본 펠리시테에 관한 내용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그러던 어느 날, 루루(앵무새 이름)가 병이 들어 말도 하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혓바닥 밑이 붓는 병이었고, 펠리시테는 손톱으로 그 엷은 껍질을 긁어내어 병을 고쳐 주었다. 어느 날 폴이 심술궂게도 앵무새의 콧구멍 속에다 담배 연기를 뿜었다. 또 어느 날은 로루모 부인이 양산의 쇠끝으로 꾹꾹 찌르며 못 살게 굴기도 하였다. 결국 루루는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신선한 바깥 공기를 좀 쏘여주고 싶어서 풀 위에 놓아 두고 잠깐 어디 좀 갔다가 왔더니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우선 덩굴 속을 찾아 헤매다가 다시 강으로 내려가 보고 지붕 위까지도 찾아보았다.

"미친년처럼 뭐 그렇게 야단이야." 하고 소리치는 마님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퐁 레벡의 정원이란 정원은 모두 찾아다녔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였다.

"어디서 내 앵무새 못 봤수?" 하며 앵무새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모양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갑자기 언덕 모퉁이에 있는 방앗간 저쪽으로 무엇인지 새파란 것이 날아간 듯하였다. 그러나 언덕에 올라가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생략) 할 수 없이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할 대로 피곤해졌고 신은 다 해져서 살고 싶은 욕망조차 없었다. 마님 옆 의자에 앉아 새를 찾아다니던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무엇인지 솜털 같은 것이 어깨 위로 푸드득 날아왔다. 루루였다.


"너 뭘 하고 있었니? 아까 이 앞을 왔다갔다하고 있었지?"


루루는 돌아왔지만 그녀의 기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회복되지 않았다. 추위가 점점 다가옴에 따라서 그녀는 인후염에 걸렸고, 그후 귀를 앓았다. 3년 후에는 귀가 멀기 시작하여 교회에서도 큰소리로 얘기를 해야만 했다. 그녀가 고해하는 죄는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리 큰 수치가 아니고 남이 안다 해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설사 그녀가 하는 말이 교구의 구석구석까지 퍼지더라도 상관없을 정도이지만 사제는 펠리시테의 고백만은 성기소(여러 전례 도구와 복장을 보관·정리·준비하는 공간)에서 듣기로 정하였다.


허망하게 윙윙거리는 귀 때문에 그녀는 정신이 나가버렸다. 주인 마님이 가끔, "왜 이렇게 둔해." 하고 말하면, "네, 마님."하고 굽실거리며 무엇인가를 찾곤 하였다.


사고력이 좁은 그녀의 세계는 더욱 좁아졌고, 교회의 종소리나 소가 울부짖은 소리까지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모든 것이 환영처럼 침묵 속에서 움직였다.


(생략) 1837년 무섭게도 추운 어느 겨울날, 그녀가 앵무새를 난로 앞에 놓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새는 새장 속에서 머리를 거꾸로 박고 발톱을 올가미 줄에 건 채 죽어 있었다. 아마 충혈로 인하여 죽은 것이 아닐까?


(생략) 그녀가 너무 슬퍼하였으므로 오벵 부인은, "박제라도 해두려무나."하고 말하였다.


그녀는 언제나 앵무새를 귀여워해 주었던 동네 약제사에게 가서 의논을 하였다. 그는 르아브르에 편지를 하였다. 파류셰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분이 그 일을 맡아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편마차 편에 부탁을 하면 이따금 짐을 잃어버리는 수도 있기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 옹후렐까지 걸어가기로 작정하였다.


잎이 모두 떨어진 사과나무가 길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웅덩이의 물은 얼어 있었다. 농가 근처에서 개가 짖어댔다. 두 손은 목도리 속에 오그려 처박고 검은 나막신을 신고 바구니를 든 채 그녀는 길 가운데를 힘차게 걸어갔다.


숲을 빠져나와 참나무 마을을 지나, 마침내 성가시엥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우편마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비탈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길을 비키려고 하지 않는 그녀를 보고 마부가 포장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소리를 질렀으나 네 마리의 말은 잡아당기는 고삐에 발을 멈추기는커녕 더욱더 빨리 달려가 버렸다. 앞에 가던 두 마리의 말이 그녀의 몸을 스쳐갔다. 마부는 고삐를 힘차게 잡아당겨 말을 길가로 몰았다. 화가 난 마부는 그녀를 스쳐갈 때 회초리로 힘껏 쳤으므로 그녀는 모로 자빠져 버렸다.


정신이 들자, 그녀는 먼저 바구니 속부터 열어 보았다. 다행히도 루루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오른쪽 뺨이 좀 당겼기 때문에 손을 대어 보니 붉은 것이 묻었다. 피가 흐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갈 위에 앉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런 다음 바구니 속에 넣어 가지고 왔던 빵 껍질을 꺼내 먹으면서 앵무새를 바라보고 자기의 상처를 위로하였다.


(생략,)


시몽 할멈이 루루를 가져와 그녀 얼굴에 가까이 대고,

"자, 앵무새하고도 작별을 해야지요."

하고 말했다.


앵무새는 썩은 냄새가 나는 송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벌레가 몽땅 파먹어 버렸다. 날개의 한쪽이 찢어지고 뱃속에 채운 물건이 삐어져 나왔다. 하지만 눈이 어두워진 그녀는 앵무새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자기 뺨에다 대었다.


어떤가요?


웬만하면 고전들을 재밌게 읽는데, 이 작품은 뭔가... 간만에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 억지로 이 작품을 읽었는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읽을 때 조금 주의하면서 읽는 것이,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제 나름 최대한 객관적이면서도 중도를 유지하려고는 하는데요.. 이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거의 5-6년만에 텍스트를 보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습니다, 저는... 꼭 이 작품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나에게도 애착의 대상이 있나요?


2.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들에 대한 뚜렷한 관념이 있나요? 회피하고 있나요?


3. 내가 마지막으로 뺨을 맞댈 만한 존재는 누구인가요?


4. 그 대상은 그때까지 살아 있는가요, 죽었는가요, 아니면 착각인가요?


5. '펠리시테'처럼 앵무새같이 사소한 것에서 거룩함을 찾아낸 적이 있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찰스 M. 슐츠 (스누피 작가)


오늘의 속담입니다.


햇빛 감옥에 갇힌 우리 금동이..


개팔자가 상팔자

한가하게 놀고 있는 개의 팔자가 분주하고 고생스런 사람 팔자보다 더 낫다


결국에는 눈을 감고 자는, 햇빛과 맞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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