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쾌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문제가 되는 관청을 우리는 '어느 관청'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런즉 '어느 관청'에 '어느 관리'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 관리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바, 작은 키에 약간 얽은 얼굴, 불그스름한 머리카락, 그리고 심지어 눈에 띄는 근시에다가 앞머리는 조금 벗겨지고 양 볼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며 치질 걸린 사람의 낫빛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였다. 독자에게는 이 이름이 다소 이상하고 생경할 수도 있으나 굳이 그런 이름을 찾아서 지은 것이 아니라 도무지 다른 이름을 줄 수 없는 사정이 생겼던 터라 이런 일이 일어났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기억이 맞다면 3월 23일 저녁 늦게 태어났다. 고인이 된 그의 어머니는 관리의 아내로서 매우 착한 여자였고 으레 그렇듯 아기가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들은 산모에게 세 이름들 중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르라고 제안했다. 즉, 목키 혹은 솟시 또는 순교자의 이름을 따서 호즈다자트라고 부르라는 것이었다.
"싫어요." 고인이 된 산모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무슨 이름이 그래요?"라고 말했다. 산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달력의 다른 곳을 폈다. 다시 세 이름이 나왔으니 트리필리, 둘라 그리고 바라하시였다.
"벌 받은 거로군." 노파가 말했다. "이름들이 다 왜 이 모양이야. 이런 이름들은 진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바르다트나 바루흐도 안 좋은 마당에 트리필리와 바라하시라니." 다시 한 장을 넘기니 파브시카히와 바흐티시가 나왔다.
"아. 이제 알겠어." 노파가 말했다. "아이의 운명이 그런 거야. 만약 그렇다면 아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르는 게 더 낫겠어. 아버지가 아카키였으니 아이도 아카키로 하자." 이렇게 해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나왔다. 아이는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을 때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마치 자신이 9등 문관이 될 것을 예감하듯 얼굴을 찡그렸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스물세 번째 작품은 고골리의 '외투'입니다.
「희극의 파편」시리즈에 어울릴 치트키 작가 한 명을 드디어 써보겠습니다.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1809–1852)은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문학의 대표 작가로 속물적 인물에 대한 유머나 풍자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 수준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살아생전 대단히 그로테스크하고 미스테리하고 엉뚱한 면모를 보여준 작가이기도 합니다.ㅎㅎ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하급 관리로, 문서를 정서(필사)하는 일을 주요 직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런 일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는 즐거운 일입니다. 그에겐 그냥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문서를 정서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머리는 벗겨지고 허리와 어깨는 굽었고, 아무도 그를 신경쓰는 동료들은 없습니다. 그의 제복에는 항상 무엇인가 먼지 같은 것이 달라붙어 있고, 그가 길을 걷다보면 마침 창문에서 온갖 쓰레기를 내던지는 바로 그 순간 창문 아래를 지나가기 때문에 모자 위로 항상 수박이나 참외 껍질, 그와 비슷한 찌꺼기들을 지고 다닙니다. 네, 그런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갑자기 늘 입고 다니는 낡은 외투가 더는 수선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 외투를 맞추게 됩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돈을 모으고 모아서, 처음으로 물건(옷)이라는 것을 샀지만... 바로 길거리 깡패들에게 도둑맞게 됩니다. 이후 분함에 못 이긴 그는 병들어 죽게 되고, 유령이 되어 외투를 찾아 떠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되게 웃긴 소설입니다. 꼭 직접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ㅎㅎ
제가 선별한 장면은 외투를 도둑맞은 뒤 급하게 경찰서장과 '중요인사'라는 사람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어설픈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이른 아침 그는 경찰서장에게로 갔다. 그러나 자고 있다고 했다. 10시에 갔는데 자고 있다고 재차 말했다. 11시에가니 경찰서장이 집에 없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갔으나 서기들이 현관에서 그를 들여보내려 하지 않으면서 무슨 일로, 무슨 필요에 의해 왔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끊임없이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결국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난생처음 성깔을 보여주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경찰서장을 볼 필요가 있다고, 그들이 감히 자신을 들여보내주지 않고 있는데 자신은 공적인 일로 부서에서 왔기에 그들을 고발할 테니 두고 보자고 단호히 말했다. 이 말에 서기들은 찍소리도 하지 않았고 그들 중 하나가 경찰서장을 부르러 갔다.
경찰서장은 외투 강탈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기이하게 받아들였다. 일의 요점을 주목하는 대신 그는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그리 늦게 귀가했느냐, 어떤 점잖지 못한 곳에 들르거나 머무른 게 아니냐는 질문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완전히 당황해서 외투 사건이 적합한 절차를 밟게 될지 여부도 알지 못하고 그곳을 나오고 말했다. 이날 온종일 그는 관청(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일생에 처음 있는 경우다.) 다음 날 몹시도 창백해진 그는 더욱 애처롭게 보이는 자신의 가운 같은 오래된 외투를 입고 나타났다. 외투를 강탈당했다는 이야기는, 비록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비웃는 관리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의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그를 위해 추렴하기로 결정했지만 보잘것없는 금액을 모았다.
(생략)
어쩔 수 없이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중요 인사'에게 가기로 결정했다. '중요 인사'의 지위가 무엇인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중요 인사'가 중요 인사가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그의 자리는 다른 더 중요한 자리들과 비교해볼 때 중요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다고 보는 그런 부류는 항상 있을 것이다. 그는 다른 많은 수단들을 동원하여 중요도를 높이려 노력했다...(생략)
'주요 인사'의 절차와 방식은 권위적이고 위풍당당했지만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의 체계를 지탱하는 토대는 엄격함이었다.
"엄격, 엄격, 또 엄격"이라고 그는 일상적으로 말하곤 했고, 마지막 단어를 말할 때에는 자신이 말하는 상대의 얼굴을 아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사실 그렇게 할 만한 별다른 이유는 없었는데, 왜냐면 부서라는 정부 조직을 구성하는 십여 명의 관리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제대로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멀리서 오는 걸 보면 하던 일을 이미 멈추고 차렷 자세로 일어서서 상관이 사무실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와 말단 관리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는 엄격한 느낌을 주었고,
"당신 어떻게 감히 그럴 수가 있소?"
"당신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오?"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는 있소?"
이렇게 거의 세 문장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그는 마음씨가 착했고, 동료들에게 잘 대해주었으며 친절했다. 그러나 장군이라는 지위가 그를 완전히 혼란에 빠뜨렸다. 장군의 지위를 얻은 후 그는 이상하게도 왠지 모르게 혼란스러워졌고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는 응당 그러하듯 매우 고상한 사람이었고, 다른 많은 관계에서도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보다 관등이 하나라도 낮은 사람들 무리에 있게 되면 그야말로 아주 형편없게 처신했다. 그는 침묵을 지켰고 그의 상황은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스스로도 훨씬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거라고 느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가끔 그의 눈에서는 무엇이든 재미있는 대화나 무리에 합류하고픈 강한 열망이 보였으나 이것이 너무 과하지는 않을까, 허물없어 보이는 건 아닐까,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 열망은 사그라졌다. 이런 판단의 결과 그는 단음절로 된 말들만 가끔 내뱉으며 항상 침묵을 고수했고 그래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생략)
이런 와중에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고 그에게 보고한 것이다. "누구라고?" 그의 딱딱한 물음에, "어떤 관리랍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온순한 모습과 낡은 제복을 본 중요 인사는 돌연 그를 향해 몸을 돌려 말했다.
"뭐가 필요해서 온 것이오?"
무뚝뚝하고 단호한 그의 목소리는 현재의 지위와 장군 지위를 받기 일주일 전에 자신의 서재에서 홀로 거울을 보면서 사전에 일부러 익힌 것이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다소 당황했다. 그의 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한 다른 때보다도 소사 "그러니까"를 더 자주 써가면서 외투가 완전 새것이었는데 잔인무도한 방식으로 강탈당해서 그에게 오게 되었다고, 그가 경찰국장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탄원서를 써줘서 외투를 찾을 수 있으면 한다고 털어놓았다. 장군에겐 왠지 모르게 이런 태도가 매우 허물없이 보였다.
"귀하, 도대체 당신은. 절차를 모르는 것이오? 어디에 찾아온 것이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오? 그것에 대해 당신은 먼저 관청에 청원서를 제출해야 하오. 그 청원서가 계장에게 가고, 그다음 부장에게 가고, 그다음 비서에게 전단되고 그러고 나서 이제 내게..."
"하지만 각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정신을 한 줌이라도 끌어모으려 애쓰면서, 동시에 땀이 엄청나게 흐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제가 감히 각하에게 폐를 끼치는 이유는, 비서들이란 그러니까... 믿을 만한 사람들이 못 되고...:
"뭐, 뭐, 뭐라고?" 중요 인사가 말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이오?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것이오? 상관과 윗사람들에 맞서는 이런 횡포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렇게나 퍼져 있다니! 당신이 지금 누구에게나 말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오?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해는 하는 거요? 당신 이걸 이해하기는, 알고는 있는 거요? 내가 지금 묻지 않소?"
중요인사는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나이가 이미 오십이 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만약 그가 젊은이라고 불릴 수 있다면 이미 칠십이 된 사람과 비교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이때 중요 인사는 발을 쾅쾅 굴렀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도 커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무서워할 정도였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역시 실신할 지경이었고, 온몸을 떨면서 비틀거리는 바람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만약 이때 경비가 뛰어와 그를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바닥에 털썩 쓰러졌을 것이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를 사람들이 데리고 나왔다. 한편 중요 인사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효과가 난 것에 만족했다. 자신의 말이 사람의 정신을 잃게 할 정도였다는 생각에 완전히 도취되어 친구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기 위해 힐끗 곁눈질을 했고, 그가 굉장히 얼떨떨한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공포를 느낀 걸 보고는 만족스러워했다.
어떤가요? 너무 웃기고 불쌍하고... 마치 선생님한테 혼나는 그 기분...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중요 인사'가 굳이 위엄있는 척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중요 인사'가 아카키를 꾸짖은 행위는 체계적으로 봤을 때 꽤 정당한가요? 그럼 아카키의 잘못인가요?
3. '중요 인사'가 아카키를 꾸짖고 잠시 곁눈질로 그의 반응을 눈치본 것은, 무슨 심리였을까요? 그는 나름 반성하는 인물일까요? 변하지 않는 반성은 반성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인가요?
4. 남에게 피해를 줄 생각이 없었는데 자기 욕망을 따르다보니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었나요?
5. 바보와 악인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악인은 바보가 아니라 더 여우 같은 똑똑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
-조지 오웰
오늘의 건축입니다.
Panopticon (Jeremy Bentham in 1791)
판옵티콘
감시자가 중간에 위치한 원형의 감옥 구조,
감시자는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막 혼내고, 아무도 없어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중요 인사',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