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엘리트..을려먹었다..

「희극의 파편」22. 안톤 체홉 - 방탕한 자들 中

by 재준

친구(변호사)


(늦은밤, 길거리. 술에 취해 어렵게 숨을 몰아쉬며) 이봐, 페쨔. 난 더는 못 가겠어! 만약 5분 뒤에 침대에 눕지 못한다면, 나는 아마 죽어버릴 거야...



표트르 코자프킨(변호사)


(활기차게) 침-대-로! 농담은 그만둬, 친구! 우린 먼저 뭘 좀 먹고 마셔야 한다고. 그러고 침대에 들자고. 베로츠카(아내)와 난 자네가 바로 잠자리에 드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걸세. (밝게 미소 지으며) 그래, 좋았어, 친구. 자네도 결혼하게나!


친구는 휘청거리다가 거의 넘어질 뻔한다. 코자프킨이 그를 겨우 잡아 세운다.



표트르 코자프킨


자네는 이해할 수 없을 걸세, 냉담한 영혼 같으니라고! 내가 지금 집에 들어가면, 이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그러면 내 사랑스런 아내는 차도 끓여주고 먹을 것도 만들어주고, 아, 그리고 나의 노동과 사랑에 감사해하며 나를 검은 눈동자로 사랑스럽고 상냥하게 바라보지... 그러면 난, 친구, 피곤과 주택침입 강도와 법원과 공소실도 모두 잊어버린다네... 정말이지 좋아! 훌륭해!



친구


(희망 없이) 그래 좋은데... 지금 내 다리는 너무 피곤에 지쳐서 말이지... 간신히 걸어가고 있다고. 미치도록 갈증도 나고.



표트르 코자프킨


(주변을 둘러보며) 자, 여기 우리 집에 다 왔네. (친구를 벤치에 앉힌다.) 훌륭한 별장이지. 내일이면 여기 풍경이 어떤지 잘 알게 될 거라고. 창문으로는 어두워 잘 안 보일 걸세. 아마도 베로츠카는 이미 잠들었겠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을 거야. 누워서는 아직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걱정하고 있겠지. (지팡이로 열려 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창문도 잠그지 않고 잠드는 것 말이야. (생략)


후, 베로츠카(아내)? 악시나에게 쪽문을 열라고 말해줘! 베로츠카! 미적거리지 말고 어서 일어나라고! (돌에 올라가 창을 바라본다.) 베로츠카, 내 사랑스런 베로츠카... 나의 아내, 작은 천사. 어서 일어나 악시나에게 문을 열라고 말해줘. 당신 안 자는 거지? 여보, 우린 정말 피곤해. 농담할 힘도 없어. 진짜 간이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당신 듣는 거야, 마는 거야? 제기랄!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려다 떨어진다.) 아마도 손님은 이런 장난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당신, 내가 보고 있다고. 아이 같은 장난은 그만해.



친구는 힘겹게 벤치에 일어나 코자프킨에게 다가간다. 그는 헐떡이며 코자프킨을 들어 올린다. 그러고는 창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친구는 다시 벤치에 앉는다. 코자프킨의 목소리가 들린다. "베라! 어디 있어? 젠장... 퉤! 뭐를 짚었는지 손이 더러워졌어, 켁!"

창문 너머에서 절규하는 듯한 암탉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코자프킨의 목소리.

"이것 봐, 베라. 어디서 닭들은 가져온 거야? 젠장, 더럽게 많군! 칠면조가 담긴 바구니는... 빌어먹을 놈이 주둥이로 쪼는군!" 창가로 깃털이 솟아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스물두 번째 작품은 안톤 체홉의 '방탕한 자들'입니다.


체홉 작품 모음 1 , 2 , 3 , 4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두운 밤, 변호사 두 친구가 술을 거하게 마시고 간이역에서 코자프킨의 별장까지 5 베르스타 (= 약 5km)를 걸어왔습니다. 둘은 목도 마르고 어지러워 죽을 지경입니다. 코자프킨은 자신의 별장에서 친구와 함께 2차를 즐길 계획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코자프킨이 먼저 창문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왠지 그곳은 자기 별장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 듭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표트르 코자프킨


(닭의 목을 쥔 채 창가에 등장하여) 친구, 우리가 잘못 온 것 같아. 이런 닭들은... 아마도 내가 착각한 모양이야. 제기랄, 여기저기서 날뛰는군, 이 저주스런 놈들! (모자를 벗어 날뛰는 닭들을 쫓는다.)



친구


(가여운 눈으로) 자네 빨리 나오는 게 좋겠어! 알아들었어? 목말라 죽겠다고!



표트르 코자프킨


잠깐... 망토와 서류 가방 좀 찾고...



친구


성냥에 불을 붙여봐!



표트르 코자프킨


성냥이 망토에 있어... 뭐가 나를 이곳으로 기어 들어오도록 부추긴 거야! 모든 별장이 다 똑같이 생겼으니 이런 야심한 밤에는 악마라도 분간하지 못할 거야. (몸을 숨겼다가 잠시 후 다시 창가에 나타난다. 뺨을 만지며) 이런, 칠면조가 뺨을 쪼았어. 이 빌어먹을...



친구


(깜짝 놀라 벤치에서 일어나 뒷걸음치며) 어서 빨리 나오라고. 아니면 우리가 닭을 훔치러 왔다고 생각할 거야. (생략) 아니, 자기 별장을 못 찾는다는 게 말이나 돼?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술 취한 낯짝하고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자네랑 같이 오지 않았을 걸세. 집에 있었다면 지금쯤 한참 자고 있을 텐데, 여기서 이렇게 시달리고 있으니... 정말 참기 힘들어. (소리친다.) 목말라 죽겠어! 머리까지 어지러워!



코자프킨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 자, 지금 간다고 ... 죽지마..."

또다시 암탉 울음소리가 들린다.

생략, 친구는 기력이 쇠진해 벤치에 누워 잠이 든다. 사이. 잠시 후 다투는 소리와 소음. 개 짖는 소리. 집의 한쪽 모퉁이에서 코자프킨과 소매를 걷어붙인 긴 셔츠 차림의 별장 주인이 나온다.



표트르 코자프킨


(흥분하여) 당신은 이 점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소! 난 변호사이고, 법학 박사인 코자프킨이오. 여기 내 명함이 있소!



별장 주인


(목이 쉰 저음으로) 내게 당신 명함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당신이 내 닭들을 모두 쫓아버렸고, 계란도 다 깨뜨려놓았소! 오늘내일 칠면조가 부화할 예정이었는데 당신이 모두 망쳐버렸단 말이오. 그래, 고상한 나리, 이 판국에 당신의 명함 따위가 내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표트르 코자프킨


당신에게 나를 붙잡아놓을 권리가 없어! 봐! 내가 허락하지 않겠다고! 내가 바로 코자프킨이다. 이건 내 별장이고, 여기선 모두가 나를 안다고! (흥분하여 손을 흔들며) 난 벌서 5년 동안이나 이곳 그늘르예브이셀키에 살았단 말이오.



별장 주인


와우! 여기가 브이셀키인 줄 아시오? 여기는 힐로보요. 그닐르예브이셀키는 오른쪽으로 더 가야 되오. 저기 성냥 공장 너머로 말이지. 여기서 한 4베르스타는 가야 될 거요.



표트르 코자프킨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본다.) 이런, 빌어먹을! 말하자면 , 내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거로군!



별장 주인


마침 저기 경찰이 오는군.



표트르 코자프킨


(소리친다) 아니, 아니오. 그럴 필요가 없소! 내가 다 변상하겠소! (무대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곧 알게 될 거요. (나간다.)



별장 주인은 친구의 목덜미를 거머쥐고는 벤치에서 일으켜 코자프킨의 뒤를 따라 끌고 간다.



친구


(저항 없이) 물 마시고 싶어...



막.



어떤가요? 인텔리들의 속물성을 보여주면서도, 일이 꼬일대로 꼬이는 두 변호사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이 가기도 하네요.ㅎㅎ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커리어를 쌓으며 일종의 엘리트적 지위를 얻은 사람의 위상은 성취 이후에 드러나는 것일까요, 혹은 성취 그 자체만에서 오는 것일까요?


2. 즐거움을 향유하는 데 있어서,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과의 은근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믿으시나요?


3. 나는 무엇으로 다른 사람과 차별화를 하고 있나요? 그 범주로 봤을 때 나는 배운 사람인가요? 내 마음 속으로 엘리트 정신을 품은 적 있으신가요, 없으신가요?


4. 한편으론 엘리트들에게 마음이 끌린 적이 있으신가요? 그들을 미워해야 하나요, 연민해야 하나요?


5. 나는 꽤 똑똑한 사람인가요? 무엇이 남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어이하여 나는 새가 되지 못했나,

어이하여 사나운 새가 되지 못했나!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中



오늘의 음악입니다.




송소희 - 사슴신

(출처: 송소희 채널)


그녀가 했던 기억나는 말

'저는 좀 많이 언행을 더 조심하는 편이에요. 저는 막 살면 안 돼요.'



의도적으로 집시 옷을 입은 사람, 깃털 없는 새, 불쌍하고, 웃긴 변호사들, 깃털 없는 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장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