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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

「희극의 파편」21. 윌리엄 셰익스피어 - 말괄량이 길들이기 中

by 재준

비앵카


케이트 언니, 날 이렇게 묶어서 하녀 취급하면서 모욕하고 언니 자신도 모독하는 짓은 제발 그만둬. 이런 짓은 정말 싫어. 손만 풀어 주면 이런 하잘것없는 장식들을 스스로 벗어던지겠어. 입고 있는 옷가지와 속치마까지 다 벗어던질게. 언니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 윗사람에게 해야 할 의무를 잘 알고 있으니까.



캐서리나


그럼 말해. 너에게 청혼하는 사내들 중 가장 좋은 사람이 누구지? 거짓말하면 알지?



비앵카


날 믿어줘, 언니. 살아 있는 남자들 가운데 특별히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캐서리나


앙큼한 계집, 거짓말하지 마. 호르텐시오 아니야?



비앵카


언니, 맹세할게. 언니가 그를 좋아한다면, 언니를 위해 설득해 볼게. 언니가 가져.



캐서리나


그럼 넌 부자를 좋아하는구나. 그레미오라는 늙은이를 남편 삼아 호사스럽게 살겠다는 거로구나.



비앵카


이렇게 질투하고 날 미워하는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이야? 아니 농담이겠지. 아, 이제 분명히 알겠어. 언니는 장난 삼아 내게 이러는 거야. 케이트 언니, 제발 내 손 좀 풀어줘.



캐서리나


이게 장난이면 다른 것도 다 장난이지. (비앵카를 때린다.)



뱁티스타(그녀들의 아버지) 등장



뱁티스타


아니, 어찌 된 일이냐? 왜 이렇게 무례한 짓을 하느냐? 비앵카, 저리 비켜라. 가련한 것, 울고 있구나. 가서 바느질이나 열심히 해라. 네 언니 일은 참견하지 말고... (캐서리나에게) 마귀처럼 천한 네가 부끄럽구나. 왜 동생을 못 살게 구는 거냐? 네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던 애가 아니냐? 동생이 한마디 언짢은 말이라도 한 적 있느냐?



캐서리나


말하지 않으니 더 약이 오르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비앵카에게 달려든다.)



뱁티스타


이것 봐라! 내 면전에서 어찌 이럴 수가? 비앵카, 안으로 들어가라. (비앵카 퇴장.)



캐서리나


뭐라고요! 참고 보지 못하신다는 거죠? 그래요 아버지. 이제 알았어요. 동생은 보물이니 남편을 꼭 구해주시겠죠. 난 동생 결혼식 날 맨발로 춤이나 춰야 하고... 아버진 그 애만 애지중지하시니, 난 원숭이나 끌고 지옥으로 가지요. 말하지 마세요. 내 방에 홀로 앉아 분풀이할 방도를 찾을 때까지 울기나 하지 제가 뭘 하겠어요. (퇴장)



뱁기스타


나처럼 이렇게 팔자 사나운 이가 있을까?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스물한 번째 작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입니다.


지난 번에 이어 오랜만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꺼내봤습니다.


간단한 인물 관계도는 이러합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그렇듯 인물들이 엮이고 엮여서 꽤 복잡한데요.


그런 복잡한 내용들은 차치하고 제목이 <말괄량이 길들이기>인 이유는 캐서리나와 페트루키오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캐서리나 성격이 좀 억세고 막말을 하고 폭력까지 일삼는 거친 성격의 여성입니다.


아빠 뱁기스타는 첫째 딸 캐서리나가 결혼 하기 전에는 비앵카의 결혼을 금지했는데, 실상 인기가 많은 것은 비앵카입니다. 비앵카의 청혼자들은 빨리 캐서리나를 결혼시킬 남자를 구하기로 합니다. 그 중 페트루키오가 나타나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페트루키오가 욕쟁이 캐서리나를 대하는 방식이 꽤 엽기적이고 대담합니다. 결혼 당일 날 거지 옷을 입고 나타나 깽판을 부리더니 결혼 후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하인에게 갑질을 하는 모습을 그녀 앞에서 보여주는가하면, 말끝마다 억지를 부리고 잠도 재우지 않고 먹을 걸 주지도 않습니다. 그녀를 극한까지 밀어붙히며 자신의 말에 복종하도록 만들어 그녀의 기를 죽여 말괄량이 성격을 개조하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말괄량이 길들이기>입니다.


5대 희극에 들어가는 작품이지만, 썩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는 내용처럼 보일 수 있다만..^^ 풍자극임을 감안해주세요. 인물 관계도를 보면 알겠지만 작품성은 정말 훌륭합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페트루키오가 캐서리나에게 청혼하는 장면입니다. 성격이 만만치 않은 캐서리나와 역시 지지 않는 페트루키오의 첫만남 장면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페트루키오


오기만 하면 맹열하게 구혼해야지. 그녀가 악담을 하면 난 태연하게 말해야지. 나이팅게일처럼 달콤하게 노래한다고... 인상을 찡그리면, 새벽이슬을 머금고 아침에 갓 피어난 장미처럼 신선하다고 해야지. 그녀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그녀의 달변을 칭찬하고, 그녀 말이 심금을 울리는 웅변이라고 해야지. 그녀가 짐을 싸서 나가라고 하면, 한 주일 동안 머물러 달라는 청을 받은 사람처럼 고맙다고 해야지. 그녀가 결혼을 거부하면, 결혼 예고를 할 날짜와 결혼할 날짜를 물어야지. 아, 그녀가 여기로 오는군. 자, 페트루키오, 이제 말을 걸어라. (캐서리나 등장.) 안녕하시오, 케이트. 이름이 케이트라고 들었소.



캐서리나


잘 듣긴 했는데 귀가 좀 먹었군. 사람들은 날 캐서리나라고 부르는데...



페트루키오


거짓말하지 마시오. 누구나 당신을 그냥 케이트라고 부르오. 모두들 유쾌한 케이트라고 부르고 때로는 고약한 케이트라고 부르지. 하지만 케이트는, 케이트는 기독교국에서 가장 어여쁜 케이트요. 여왕께서 여름이면 방문하시는 케이트 홀의 케이트이며, 정말 사랑스런 케이트요. 맛있는 과자를 모두 케이트라고 불러요.. (생략) 그래서 당신더러 내 아내가 되어 달라고 구애하기 위해 발을 옮겨 여기 온 거요.



캐서리나


발을 옮겨 왔다고? 좋아요. 그럼 여기로 옮겼던 발을 치우고 다시 발을 옮겨 꺼져요. 첫눈에 알아봤어요. 당신은 옮기기 쉬운 가구라는 걸...



페트루키오


아니, 옮기기 쉬운 가구가 뭐요?



캐서리나


접었다 폈다 하기 쉬운 의자요.



페트루키오


그래, 정곡을 찔렀소. 자, 의자에 앉듯이 내 위에 걸터앉아요.



캐서리나


당나귀는 짐을 지는 용도지요. 당신 또한 그렇죠.



페트루키오


여자는 짐을 지라고 생긴 거요. 당신 또한 그러하오.

(Women are made to bear, and so are you.; bear: 짐을 지다, 아이를 낳다. 중의적 표현)



캐서리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당신 같은 자를 태울 암말은 아니에요.



페트루키오


아이고! 나도 소중한 당신이 실을 짐은 되기 싫소. 케이트 당신이 아직 어리고 가볍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캐서리나


너무 가벼워서 당신 같은 촌뜨기에게 잡히지 않을 거예요. 나름대로 꽤 무게가 나간단 말이에요. (And yet as heavy as my weight should be.)



페트루키오


말이라고? 가벼운 말벌이라고? (Should be! should- buzz!)



캐서리나


잘 잡겠군. 말똥가리처럼...(Well ta'en, and like a buzzard.)



페트루키오


아, 굼뜨지만 남자에게 충실한 산비둘기여! 말똥가리 밥이 되지 않게 조심하시오.



캐서리나


천만에, 말똥가리가 산비둘기에게 잡아먹히는 세상인걸.



페트루키오


저런, 저런, 말벌처럼 쏘아붙이는군. 아가씨, 정말 화가 난 거요?



캐서리나


이런, 이런, 날 말벌이라고 하는데, 그럼 내 침을 조심하는 게 상책일 거예요.



페트루키오


그럼 그걸 뽑아 버리는 게 내 처방이오.



캐서리나


그렇겠지. 멍청한 당신이 그 침이 어디 있는지를 안다면...



페트루키오


침이 어디 있는지 모를 사람이 어디 있소? 말벌의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데...



캐서리나


아니, 혓바닥이에요.



페트루키오


누구 혓바닥에?



캐서리나


그야 당신 혓바닥이지. 남의 말꼬리나 잡으려고 하니까... 이제 썩 꺼져 버려요.



페트루키오


뭐라고! 내 혓바닥으로 당신 꽁지를 어쩐다고? 아니, 잠깐만. 선량한 케이트, 난 신사요.



캐서리나


그럼 어디 한번 시험해봅시다. (그를 갈긴다)



(생략)



캐서리나


시끄럽게 울어대는 모습이 겁쟁이 수탉 같아 보이는데, 내게 그런 수탁은 필요 없어요.

(you crow too like a craven)



페트루키오


자, 그러지 말고 이리 와요, 케이트. 그렇게 험상궂게 찡그린 표정을 하지 말아요.



캐서리나


난 게를 보면 인상 찡그려요. (It is my fashion, when I see a crab.)



페트루키오


여기 게는 없잖아. 그러니까 찡그리지 마요.



캐서리나


있어요.



페트루키오


어디? 보여줘봐요.



캐서리나


거울만 있었어도 보여줬죠.


어떤가요? 셰익스피어는 확실히 말장난의 대가이긴 합니다.ㅎㅎ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이런 장면은 극 전개에 크게 의미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2. 여기까지 본 독자들이 있다면.. 왜 이 글을 끝까지 보게 됐나요?


3. 왜 글을 쓰나요?


4. 왜 하고 싶나요?


5. 글로 돈을 버나요? 그렇지 않다면 무엇으로 충당하나요? 그것은 글을 쓰는 내용적인 부분엔 별로 신경 안 써도 되는 부분인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시인은 자신이 꾼 꿈의 내용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듯이 시적 감수성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


-앙드레 브르통



오늘의 속담입니다.



반드럽기는 삼 년 묵은 물박달나무 방망이

반들반들하여 쥐면 미끄러져 나갈 것 같이 요리조리 피하는 약삭 빠른 사람.



그들의 말장난, 나의 글장난, 능청스러운 셰익스피어, 교활한 현실, 어느덧 화요일, 박달나무는 반드럽고 내 글은 헛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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