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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밤늦게 친구를 데려왔을 때..

「희극의 파편」1. 안톤 체홉 - 세상에 보이지 않는 눈물 中

by 재준


남편


마셴카! (아내의 어깨를 흔들며) 잠깐 일어나봐, 마샤!



아내


(잠에서 깨며) 누구예요? 당신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남편


(상냥하게) 나야, 마셴카. 저기 비교적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열쇠 좀 줘, 여보, 걱정 말라고... (상냥하게) 당신은 그냥 자, 내가 준비할 테니... 그들에게 오이만 좀 먹이는 거니깐 다른 지출은 없을 거야. 신이 나를 꾸중하실지도 모르지. 알겠지만 내 친구들은 훌륭한 사람들이야. 사회에서 존경도 받고...



아내


당신 어디서 그렇게 취하도록 마셨어요?



남편


이봐, 이봐. 당신 벌써 화를 내고 있군... 정말 당신은 올바른 사람이야. 그들에게 오이만 좀 먹일게. 그게 다라고. 그러고 나면 갈 거야. 내가 직접 정리할 테니 당신은 아무런 염려 말라고. 어서 누워, 여보. 그래, 건강은 어때? 나도 없는데 의사는 다녀갔어? 손에다 키스하고 싶어. (손을 내밀지만 아내는 뿌리쳐버린다.) 손님들은 모두 당신을 존경하고 있어.



아내


거짓말 마세요! 다 실없는 소리라고요! 클럽에서는 어중이떠중이들과 모여 술이나 퍼마시고, 밤에는 내내 거리를 휩쓸고 다니니! 당신 정말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래가지고 아이를 가질 수 있겠어요! (남편에게서 등을 돌린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첫 글로 인사드립니다 ^^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오늘 「희극의 파편」 첫 번째 작품은 안톤 체홉의 '세상의 보이지 않는 눈물'입니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출생 작가로 여러 단편 소설, 희곡을 썼어요.


이 작품은 한국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희곡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남편은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호기롭게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러나 우울하게 홀로 자고 있던 아내는 갑작스러운 손님들의 방문이 부담스럽기만 하겠죠... 결국 남편의 뺨을 때리며 화를 내버립니다.




아내


이건 벌 받는 거나 다름없어요! 당신, 정말 바보예요? 저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요? 이 한밤에 남의 집에 쳐들어오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요! 도대체 이런 야심한 밤에 손님이 찾아오는 걸 어디서 본 적이나 있던가요? 저기 있는 건 선술집이 아니고 뭐예요? 오늘 열쇠를 내어주면 마구 퍼마실테죠. 그러고는 자고 일어나 내일 다시 쳐들어오겠죠.




이런 말을 들은 남편은 어떨까요?



남편


음...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 앞에서 존경이란 필요 없는 말이군. 말하자면 , 이런 결론이 나오는군. 당신은 내 인생의 반려자도 아니고, 남편을 위로해주는 여자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무례한 표현이긴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 바짝 다가서며) 뱀이 분명해, 당신은. 뱀...




여기서 아내의 행동을 살펴볼까요?



아내


(일어서며) 아아, 이제는 독설가처럼 험담까지 하세요?



남편


(뺨을 문지르며) 미안해, 미안해... 자, 하나밖에 없는 남편을 때리라고! (아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 부탁해, 마셴카! 나를 용서해줘! 제발 열쇠 좀 줘! 마셴카! 나의 천사! 잔인한 사람. 사람들 앞에서 나를 욕보이지 말라고. 부탁이야! 이게 마지막이야.


아내


휴! (그에게 열쇠를 던진다.) 나의 고통에 끝이란 보이지 않군요! 의자 위에 내 블라우스 좀 가져다줘요!



(생략)



친구1


당신 뺨이 왜 그래요? 신사 양반, 당신 눈 아래 푸른 점이 생겼다고요! 당신 어디서 한 대 맞고 온 거요?



남편


(당황하며) 뺨이요? 뺨 어디에? 아, 네! 방금 마샤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놀래켜주려고 그런 겁니다. 어둠 속에서 침대에 부딪힌 것처럼 보이려고 말이죠, 하하...



아내가 들어온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으나 생기 넘치고 흥겹게 등장한다.



남편


이 사람이 바로 마셴카입니다. 여보, 머리가 왜 이렇게 헝클어져 있어!



아내


(친구들에게) 이리도 사랑스러운 분들이 오셨군요! 낮에는 오시지 않고선, 이런 밤에 남편이 끌어내지 않은 걸 감사해야겠네요. 누워서 자다가 목소리를 들었지요. 누굴까 하고 생각했어요. 남편은 내게 나오지 말고 계속 자라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나왔답니다!



아내는 사랑스럽게 미소 지으며 피아노에 앉아 연주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지갑에서 5코페이카짜리를 꺼내 멍든 자국에다 붙인다.



친구


(넋두리하듯) 맙소사, 어떻게 저렇게 잘 살지! 저 부부를 보고 있자니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나오려고 해. 단지 나 한 사람만 불행한 것 같아서. 내 아내는 세상에, 독기만 가지고 태어났나봐! 단지 아는 거라곤 내게 욕하는 것뿐이지! (흉내를 내며) ‘장화발로 차지 말라고, 이 맷돌 같은 양반아! 클럽에서 술 처먹고 들어와 소란만 피우고! 이런 추한 양반아!’







허무하게도 이렇게 희곡은 끝이 납니다.


어떤가요? 희극적인가요? 재미있나요?

아니면 그냥 그저 그런 보통 부부싸움 글처럼 보이시나요?

간추린 내용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결론이 뭔데?'

'결론이 없는 게 결론이야. 원래 문학이 그래.'


이런 생각을 하셨나요?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제가 떠올린 적용 질문입니다.




1. 마지막으로 대사를 쳤던 친구의 인생은 어떨까요?


2. 과연 남편과 부인보다 불행할까요?

3. 친구의 아내와 작품 속 부인은 아예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일까요?


4. 남편은 불행할까요? 부인은 매순간 우울할까요? 우울한 여자는 아름다울까요?


5. 부인은 과연 외모를 치장하는 사람일까요?


6. 왜 애를 가지고 싶어 할까요?


7. 둘은 정말 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인가요?


8. 남편은 왜 술을 좋아하나요?


9. 술을 좋아하면 나쁜 사람인가요? 어리석은 사람인가요?


10. 아니라면 그럼 남편은 똑똑한가요?


11. 아내가 똑똑한가요, 남편이 더 똑똑하나요?


12. 남편은 잘생겼을까요? 술냄새가 날까요?


13. 잘생겼는데 입에서 술냄새가 나면 아내는 어떤 기분일까요?


14. 친구의 걱정거리는 뭘까요?

15. 아내의 고민거리는 뭘까요? 애를 잘 낳는 걸까요?


16. 그럼 애를 낳으면 아내의 고민은 해결될까요?


17. 결혼이 문제일까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까요?


18.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직면했을 때 어떻게 살아가시나요?


19. 언어의 기표로 내 결핍이 해결되지 않을 때 그 공백을 어떻게 견디시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행복해지는 일은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는 일이다. -알베르 카뮈-




오늘의 속담입니다.


'바다에 가서 토끼 찾기.'


불가능한 일을 해내려고 애쓰는 마음 혹은 엉뚱한 곳에 가서 찾는 상황



예문) 이 부부가 행복해지는 일은 아마 바다에 가서 토끼를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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