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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가 이제 일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희극의 파편」2. 몰리에르 - 강제 결혼 中

by 재준

스가나렐


내가 상의 말씀드리자는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내가 장가를 갔으면 어떨까 하는 일이랍니다.



제로니모


아니 누가요? 바로 영감이?



스가나렐


네, 바로 이 내가 말입니다. 어떨는지요, 영감의 생각은?


(생략)



제로니모


내 셈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자, 그러면 조금 전에 굳게 약속한 대로 솔직하고 정직하게, 또 영감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말씀드리죠. 결혼 같은 것은, 영감이 하실 만한 짓이 못 됩니다. 그런 일은 젊은 사람들이나 신경을 쓸 일이죠. 그네들도 신중하게 생각해서 처리할 문제죠. 내일 모레면 영감 나이 60인데, 지금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그건 아예 단념하시는 쪽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보짓 가운데서도, 마누라를 얻는 것 같이 어리석은 장난은 없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영감이나 나나 세상 물정을 조금 안다고 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런 모험을 한대서야 이거 어디 될 말입니까. 그건 이치에 안 닿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생각하는 바를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면 이런 거죠. 결혼은 아예 단념하시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구요. 영감은 오늘날까지 누구보다도 자유스럽게 살아 오셨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쇠사슬로 스스로 몸을 동여매려고 하시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시 한 번 영감을 쳐다보고 싶군요. 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스가나렐


그렇지만 나는 혼인식을 올리기로 결심을 했는데요. 영감, 내 마음에 꼭 드는 색시감을 마누라로 삼기로서니, 뭐 그리 이상할 게 있나요.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두 번째 작품은 몰리에르의 '강제 결혼'입니다.

배우이자 극작가이자 지식인이자 멋쟁이었던 희극의 대가 몰리에르(Molière, 본명: 장-바티스트 포클랭 Jean-Baptiste Poquelin, 1622년 1월 15일 ~ 1673년 2월 17일)는 프랑스 출생 작가입니다.


다소 거친 언어로 표현되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위선과 어리석음,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장면은 간단합니다. '스가나렐'이라는 50대 초반의 남성이 젊고 아름다운 여인 '도리메느'와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결혼 몇 시간 전, 그는 '제로니모'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제로니모'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죠.


'스가나렐'은 '제로니모'의 말을 무심코 넘겨버립니다. 자기가 좋으면 장땡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스가나렐


(홀로) 이번 내 혼인이야말로 멋진 결합이 될 거야. 행복한 가정을 꾸미게 되겠지. 모두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을 크게 뜨고 즐거워들 하니, 이런 천생연분이 또 있을라구. 자, 나도 이쯤 되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뽐낼 만도 하지 않은가?



도리메느


(무대 뒤에서, 뒤따라오는 사동에게) 꼬마야, 내 치맛자락을 잘 잡고 따라오는 거다. 장난에 미쳐서 한눈만 팔지 말고.



스가나렐


(도리메느가 오는 것을 보고 혼잣말로) 아, 저기 드디어 나타나셨군! 저 우아스러운 모습! 저 날씬한 몸매! 저런 미인을 두고 결혼을 마다할 남자가 어디에 있을라구.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도리메느에게) 오늘은 또 그 멋진 옷차림을 하고 어디를 가는 길인가, 몇 시간 후에는 남편 될 사람의 귀여운 신부가 될 도리메느?



도리메느


저 뭣 좀 살까 해서 나온 길이에요.



대사가 좀 길다는 점을 유의해주세요. (그게 웃음 포인트입니다!)


스가나렐


그래? 이제부터 우리는 서로 행복한 몸이 되는 거야. 앞으로 아가씨는 완전히 내 것이 되고 마는 거라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거리낄 것이 없을 뿐더러, 또 그것을 보고 옆에서 뒷담화할 사람도 없어졌다 그런 말이 되는 거지. 이제 당신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것이 되는 거야. 지금부터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건 완전히 내 자유지. 그 귀엽게 생긴 또릿또릿한 눈이며, 고 깜찍스럽게도 솟아나온 코며, 그 부드럽게 생긴 입술이며, 또 그 상냥스럽게 생긴 턱이며, 또 분홍 우유빛으로 감싸여 있는 젖가슴이며, 또 그리고.....말하자면 아가씨의 모두가 그대로 송두리째 내 마음먹은대로 되는 거란 말야. 그러니 내 마음대로 아가씨의 그 부드러운 살결을 마음껏 만져 보아도 아무런 죄가 안 되는 거지. 이 내 가슴으로부터 사랑하는 인형같이 아름다운 도리메느! 나와의 결혼이 기쁘지도 않은가? 어떻게 생각하오?



도리메느


정말로 저는 기뻐요. 왜냐구요? 그건 잘 아시다시피 우리 아버지는 아주 완고하기 짝이 없는 분이죠, 그래서 저는 언제나 기를 못 펴고 부자유 속에서 자라났어요. 이제는 저도 그런 생활을 더 참을 수가 없게 됐거든요. 생각만 해도 골치가 쑤신답니다. 그래서 한시 바삐 저를 시집 보내주었으면 하고 매일같이 빌어 왔죠.

남자를 얻으면 갖은 학대와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 저는 무슨 일이든 마음놓고 할 수 있게 되니까요, 얼마나 기쁜 일예요?


저는 그렇게 되는 나를 상상만 해도 미칠 것만 같답니다. 훨훨 날것만 같아요. 그런데 때마침 하나님께 기도드린 보람이 있어, 당신이 저를 데려가시게 된 거죠. 정말 우리의 혼인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인가 봐요.


전 이제부터는 마음놓고 놀러 다닐 작정이랍니다. 지금까지 못했던 일들을 앞으로는 한번씩 다 해볼 생각이에요. 그래서 지금 까지 헛되이 보내 그 귀중한 세월을 하루속히 만회해야 되지 않겠어요? 보기에 당신은 아주 친절하시고, 세상이치를 잘 아시는 것 같아서 저는 마음이 아주 든든하답니다. 앞으로 우리는 멋진 부부생활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당신은 자기 아내를 맞이해서, 또 사람들과 같이 외출도 못하게 하고 집구석에 가둬 놓고, 옆에 붙어 앉아서 감시의 그 올빼미 눈으로 저를 노려보는 그런 옹졸하고 야박한 남편은 설마 아니겠죠. 전 그런 생활이라면 잠시도 못 참아요. 전 방구석에 틀어박혀 살게는 만들어져 있지 않아요. 전 친구들과 한 자리에 모여서 즐겁게 놀고, 또 방문도 열심히 하고 모임에는 빼놓지 않고 참석해야겠어요. 또 선물 주는 것, 산책, 이런 일들을 좋아하죠. 아마 당신도 저와 같은 유쾌하고 명랑한 기질의 소유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 후회가 없으실 것으로 믿어요.


앞으로는 우리 서로 말다툼이나 싸움 같은 것은 일체 않기로 해요. 저는 당신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 않기로 마음 먹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당신 쪽에서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일이든간에 눈을 감고 계셔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완전한 부부라는 것은 서로 돕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싸움질을 하기 위해서 결혼한 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결혼을 하더라도 쌍방이 다 같이 상대방을 존경하는 그런 점잖은 생활을 해 나간다는 약속이 있어야 되겠어요. 질투심 같은 것, 의처증 같은 것, 그런 것으로 고민하실 필요는 조금도 없어요. 내가 당신의 품행을 절대적으로 믿듯이, 당신도 저를 믿어 주셔야 해요. 그 믿음을 전제로 우리는그야말로 순수한 관계가 영원히 유지되는 거예요.


아니, 갑자기 왜 그러시죠? 안색이 좋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스가나렐


아니, 골치가 좀 아파서, 두통이...




어떤가요? 너무 웃기죠? ^^

1664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놀랍도록 현재까지 유의미한 대화가 아닌가 싶어요.


스가나렐은 왜 갑자기 골치가 아파졌을까요?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이상형을 말하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말하실 건가요?


2. 그것이 나의 결핍과 관련됐을까요? 본인의 컴플렉스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3. 도리메느의 장점과 단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단점이 장점을 상쇄시키나요? 아니면 장점이 단점을 상쇄시키나요?


4. 제로니모는 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요?


5. 도리메느와 비슷한 사람이 주변에 있나요?


6. 말이 많은 건 좋은 건가요?


7. 도리메느의 아버지는 엄격한 사람일까요? 그럼 결혼 후 스가나렐과 도리메느의 아버지는 어떤 관계를 유지할까요? 참고로 스가나렐은 52세~53세로 추정됩니다.


8. 결혼 후 도리메느가 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그녀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9. 직업이 없는 삶은 행복한 건가요? 그럼 일을 한다는 건 행복한 일인가요? 일정이 없으면 자유로운 건가요, 지루한 건가요?


10. 잘하는 일을 하나요, 좋아하는 일을 하나요, 라고 묻기 전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적을까요?


11. 스가나렐과 도리메느가 앞으로 평생 공유해야 할 대화거리가 무엇이 있을까요?


13. 만약 없다고 했을 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말이 많은 건 좋은 건가요?


14. 말을 길게 하다가 상대방이 관심 없어한다고 느껴본 적이 있나요?


15. 당사자는 화를 내는데, 막상 제3자 입장에선 그 광경을 봤을 때 웃겼던 적이 있나요?


16. 슬픈 음악이나 영화를 보다가, 혹은 다 보고 나서, 그 감정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엉뚱한 다른 무엇 때문에 어이없게 실패했던 적이 있나요?


17. 감정의 타이밍이 비효율적일 때가 있었나요?


18. 감정이 본래 목적보다 더 많이 분출되었을 때, 그것은 진실해 보이나요, 부담스러워 보이나요?


19. 다 써버린 줄 알았는데 다시 떠오르는 감정이 있나요? 혹은 말할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감정이 있나요? 쌓여있던 정서가 방향을 잃고 쏟아진 적 있나요? 그것은 불쌍한 건가요, 웃긴 건가요?


20. 무엇이 더 소중하게 남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향유(jouissance)는 쾌락 원칙을 넘어서는 것이다. -자크 라캉-





오늘의 작품입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 작품


백남준의 '다다익선 (The more the better)'


300대로는 턱도 없고 1000대는 있어야 된다는 설계자의 말을 듣고선


'그럼 1000대로 해. 많을수록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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