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땅에 최가라는 인삼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원주 지역 뿐만 아니라 근처 일대에서도 내로라하는 상당한 부자였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머니의 덕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귀신과 내통한다는 소문이었죠.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스물여덟 번째 작품은 한국 민담의 '원주 최가네'입니다.
책과 기사에서 접한 이야기인데, 출처가 명확하진 않네요. 작자 미상의 奇觀錄 <기관록>(기괴한 것을 관찰해 기록함)이라고 하는데 흔히 도깨비 설화에서 도깨비 덕분에 부자가 된 이야기가 변형된 민담 같기도 합니다. 요즘 희곡 작품이 아닌 것들 또한 리뷰하고 있는데요. 이런 작품을 굳이 꼽은 이유는.. 젊은 과부의 이야기가 꽤 인상적이고, 그 감동의 정도가 희곡을 읽을 때와 엇비슷하다고 느껴서입니다.ㅎㅎ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도깨비인지 귀신인지 모를 사내가 매일밤 과부가 된 최가의 어머니의 집에 찾아와 겁탈을 합니다. 어머니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최가의 어머니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아들 최가를 낳았으나 얼마 뒤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거느린 과부는 근근이 그날 그날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누가 갑자기 방문을 갑자기 엽니다. 어둠 속에서 건장한 사나이의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억센 손이 과부의 입을 틀어 막고 무서운 힘으로 재빠르게 덮쳐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몸에 온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땐 이미 겁탈을 당한 뒤였습니다. 그 사나이는 어디론지 사라진 후였습니다.
원통하도다, 원통하도다... 남편이 없으니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과부는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누구에게 말하기도 뭣하고, 이런 일을 저지를 놈을 생각해보았으나 짐작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다음날 밤, 사내는 또 찾아옵니다. 그 사나이는 몸이 얼음장같이 차갑고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했습니다. 스며드는 냉기와 아픔에 과부는 입이 딱딱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웃긴 것이 그 사내가 비단 한 필을 놓고 가버립니다. 너무나 놀라워 과부는 지나간 일도 잊고 탄성을 올렸습니다.
놔두고 간 것인가? 과부를 겁탈하고 이 비단을 던져 준 것인가?
그 정체 모를 사나이는 이후 매일 밤 서슴지 않고 과부 앞에 나타났습니다. 과부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몸을 방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사내는 돌아갈 때마다 비단이나 금은보화를 두고 갔습니다.
다음날 밤, 그녀는 큰 마음을 먹고 그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돈도 많고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 무슨 연유로 저를 찾아오십니까.
사내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호탕하게 웃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도 않소. 나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지. 나는 누런빛이 싫소. 누런빛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단 말이야.
그녀는 그 말만을 꼭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 금은보화가 쌓이는 일은 기꺼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귀신인지 도깨비인지 모를 사내와 접촉한다는 일은 그리 기꺼운 일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밤, 그녀는 누런빛으로 된 옷을 입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얼굴과 몸 또한 누런빛을 칠하였고 집 기둥이나 벽에도 누렇게 칠하였습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난 뒤, 사내는 어김없이 그녀 앞에 나타났습니다.
허, 이게 웬일이오.
과부는 두려워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나이는 멀찌감치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젠 내가 싫어졌단 말이오? 나름 우리의 정이 깊은 줄만 알았는데.
과부는 다소곳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사내는 하는 수 없이 돌아가며 말합니다.
이제 여기를 떠나겠수다. 잘 사시오. 내가 이제까지 가져다 준 것을 밑천 삼아 잘 살았으면 좋겠소.
사나인지 도깨비인지 귀신인지 하는 그 정체 모를 이는 그렇게 노하지도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과부는 비단과 금은보화를 팔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과부는 그 덕으로 아들 최가를 거느리고 부자로 잘 살아 팔십이 되도록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원주 마을에서는 누구나 최가 집안을 가리켜 귀신이 재물을 가져다 준 집안이라고들 하였다고 합니다.
끝
어떤가요? 잘 살았으니 됐습니다.. 모든 걸 제쳐두고 잘 살았다고 하니... 그럼 된 일입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부자가 되었다는 결말은 해결이 된 것일까요, 무책임한 이야기의 단절일까요?
2. 만약 내가 돈이 많으면 80세까지 잘 살 수 있나요?
3. 모욕당한 경험은 나를 더 성장시키나요? 혹은 무언가를 더 숨기게 해서 사회화되게 만드나요?
4. 당당하다는 것은 자신감인가요, 비참함을 감추는 건가요?
5. 나는 무슨 능력이 좋은 편인가요? 그것은 억지로 유능해진 건가요? 그것은 결국 축복인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무언가에 깊이 절망한 사람은 그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과 분간하기가 어렵다. 깊은 절망은 깊은 사랑과 닮은 구석이 있다. 절망이 가득한 눈으로 노을이 진 서편 하늘을 바라보는 이의 눈빛이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는 것처럼.
-손홍규
오늘의 음악입니다.
(출처: Joe Hisaishi Official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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