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버삼 경
안녕하세요, 레이디 췰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젊은 내 아들이 여기에 왔었소?
레이디 췰턴
고오링 경은 아직 안 오신 것 같네요.
메이블 췰턴
고오링 경을 왜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사람이라고 하죠?
캐버샴 경
왜냐하면 그가 허송세월을 하고 지내니까.
메이블 췰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글쎄, 그는 오전 열 시에는 로우에서 승마를 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오페라에 가며, 하루에 적어도 다섯 번은 옷을 갈아입고, 사교 철에는 매일 저녁 외식을 하는 걸요. 그런 걸 게으른 삶을 산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캐버샴 경
아주 매력적인 아가씨군!
메이블 췰턴
그런 말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좀 더 자주 와주세요. 우리는 항상 수요일을 손님 맞는 날로 정하고 있거든요. 그 성장이 아주 잘 어울리세요!
캐버샴 경
난 이제는 아무 데도 안가요. 런던의 사교계에 진저리가 났지. 내 단골 재단사에 소개되는 건 차라리 상관 않겠소; 그는 항상 올바른 편에 투표를 하거든. 그렇지만 아내의 단골 모자가게 주인여자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완강히 거절하겠소. 레이디 캐버샴의 모자는 도저히 참을 수 없거든.
메이블 췰턴
오, 저는 런던 사교계가 좋아요! 굉장히 개선되었다고 생각해요. 그곳은 완전히 아름다운 백치와 현명한 광인들로 이루어졌거든요. 사교계는 바로 그래야 하는 거죠.
캐버샴 경
흠! 고오링은 어느 쪽에 속하지? 아름다운 백치인가, 아니면 현명한 광인인가?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스물아홉 번째 작품은 오스카 와일드의 '이상적인 남편'입니다.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1900)는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입니다. 위트와 반어의 대가라고 불릴 만큼 그에겐 유명한 어록들이 많습니다.
작은 성실함은 위험한 것이며, 과도한 성실함은 치명적이리만큼 위험하다.
도덕적 또는 비도덕적인 책이란 없다. 책은 잘 썼든지 못 썼든지 둘 중 하나다.
내 자신의 일은 항상 지겨워 죽겠다. 남의 일이 더 좋다.
음악은 낭만적인 느낌을 주고, 또 언제나 신경에 거슬린다. 요즘은 둘 다 똑같은 것이지만.
나는 무엇이든 믿을 수 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이라면.
남자는 피곤해서 결혼한다. 여자는 호기심에 결혼한다. 그래 놓고 둘 다 실망한다.
좋고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사람은 매력적이거나 또한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다.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거나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가요? ^^ 웃기면서도 말이 그럴 듯하지 않나요?
「희극의 파편」에 너무 어울리는 작가입니다.ㅎㅎ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로버트 췰턴 경은 정직하고 신뢰받는 정치가로, 아내 레이디 췰턴의 존경을 받는 '이상적인 남편'입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취블리 부인이 나타납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로버트 췰턴 경이 정부의 비밀정보를 주식시장 투기자에게 팔아 넘겨 큰 재산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로버트 췰턴 경은 자존심을 굽히고 취블리 부인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고백하고 체면을 잃더라도 현재의 자리를 내려놓을 것인지 깊은 갈등에 빠집니다.
로버트 췰턴 경이 고해성사를 하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꼽은 명대사입니다. 너무 대사가 길어 스킵하셔도 됩니다.
거기에 당신의 실수가 있었소. 거기에 당신의 잘못이 있었소. 모든 여성이 범하는 잘못이지. 왜 당신네 여성들은 결점이 있는 우리를 그대로 다 사랑할 수 없단 말이오? 왜 우리를 엄청나게 높이 두고 우상화하는 거죠? 우리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인격상의 결점을 지닌 존재요. 남성이 여성을 사랑할 때는, 우리는 그들의 약점, 어리석음, 불완전함을 알고 그들을 사랑하며 그런 이유로 더욱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이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손이나 또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상처를 입었을 때에 사랑이 우리에게 와서 그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하는 거요.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사랑 자체에 대한 죄 말고는, 사랑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오. 사랑이 없는 삶을 제외하고는, 진실한 사랑은 모든 삶을 용서해야하오. 남성의 사랑은 그와 같소. 남성의 사랑은 여성의 사랑보다는 더 넓고, 더 크고 더 인간적이오. 여성들은 그들이 남성들을 이상화한다고 생각하지. 그들은 우리를 단순히 거짓된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 거요. 당신은 나를 당신의 거짓된 우상으로 만들었소, 그래서 나는 내려와서 당신에게 나의 상처를 보여주고 나의 약점을 말해줄 용기가 없었소. 난 당신의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웠소, 지금 내가 그걸 잃은 것처럼. 그래서, 어제 밤에 당신은 내 삶을 망쳐버렸오. 그래요, 망쳤지! 이 여인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그녀가 내게 제공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오. 그녀는 안전과 평화와 안정을 제공했소. (취블리 부인이 눈을 감아주었고 그로 인해 큰 부를 쌓게 해주었다는 뜻.) 묻어버렸다고 내가 생각한 내 젊은 시절의 죄가, 몹시 추하고 끔찍하게 내 앞에 벌떡 일어나서 내 멱살을 두 손으로 잡았던 거요. 난 그걸 영원히 죽여서 다시 무덤으로 보내고 그 기록을 없애버리고 불리한 증거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릴 수도 있었소. 당신이 내가 그런 일을 못하도록 막았지. 어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이 그랬다는 걸 당신도 알 거요. 이제 내 앞에는, 공적인 오욕과, 멸망과, 끔찍한 수치와, 세상사람들의 조롱과, 외롭고 불명예스러운 삶과, 언젠가는 맞이할 외롭고 불명예스런 죽움밖에는 무엇이 있겠소? 제발 여성들이 더 이상 남성을 이상화하지 말기를 바라오! 남성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지 않기 바라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내가 그렇게 열렬하게 사랑한 당신이 내 삶을 망친 것처럼 그들도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망칠지도 모른단 말이오!
조금 민감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1895년 초연된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해주세요.
제가 선별한 장면은 로버트 칠턴 경의 친구이자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물인 '고오링 경'이 심각하게 계획을 짜고 있는데 난데없이 아버지가 나타나 '너 도대체 결혼은 언제하니?' 하고 묻는 장면입니다. 아무래도 '희극의 파편'이니 이런 장면을 선택했습니다.ㅎㅎ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고오링 경
총각클럽에서는 날 기다리고 있지 않으니까 거기에 일단 가봐야겠어. 그래, 그 부인이 자기 남편을 지지하게 만들어야지... 그 부인이 할 일은 그것 뿐이야. 어떤 여인이고 그렇게 하는 수밖에는 없지. 결혼을 그렇게 절망적이고 일방적인 제도로 만드는 건 여성의 도덕적 감각이 성장한 탓이야. 열 시라. 부인이 곧 오겠는데... 핍스(하인)에게 그 부인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말해둬야겠는걸...
핍스
캐버샴 경께서 오셨습니다.
고오링 경
오, 부모는 어쩜 항상 부적절한 때에 나타나시는 거지? 아마 자연섭리에 있어서의 특별한 실수인가봐. (캐버샴 경이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아버지.
캐버샴 경
내 망토를 벗겨라.
고오링 경
벗으실 필요가 있습니까, 아버지?
캐버샴 경
물론 그럴 필요가 있지. 어느 것이 가장 편안한 의자지?
고오링 경
이거요, 아버지. 손님이 오실 때 제가 앉는 의자예요.
캐버샴 경
고맙네, 이 방은 외풍은 없겠지?
고오링 경
없어요, 아버지.
캐버샴 경
(앉으며) 반가운 소리구나. 외풍은 못 참겠어. 집에는 외풍이 있으면 안되지.
고오링 경
미풍은 많이 있어요, 아버지.
캐버샴 경
응?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걸. 자네하고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네.
고오링 경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이 시간에 말입니까?
캐버샴 경
글쎄, 이제 겨우 열 시인데. 시간이 안 좋다는 이유가 뭐지? 난 아주 훌륭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고오링 경
저, 사실은, 아버지, 오늘은 제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날이 아니에요. 아주 죄송하지만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에요.
캐버샴 경
그게 무슨 뜻이지?
고오링 경
사교철 동안에는, 아버지, 저는 매달 첫 번째 화요일 네 시부터 일곱 시까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캐버샴 경
목요일로 바꾸렴, 그럼. 목요일로.
고오링 경
그런데 지금은 일곱 시가 넘었는걸요, 아버지. 그리고 제 주치의 말이 일곱시 이후에는 어떤 진지한 대화도 하지 말래요. 그렇게 하면 잠꼬대를 하게 된데요.
캐버샴 경
잠꼬대를 한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넌 결혼도 안 했는데.
고오링 경
그렇죠, 아버지, 전 결혼을 안 했죠.
캐버샴 경
음! 바로 그것에 대해서 내가 자네에게 말하고 싶어서 온 거야. 자넨 결혼을 해야해, 그리고 당장 해야해. 글쎄, 내가 네 나이였을 때에는 난 위로할 길 없는 홀아비가 된지가 석 달이나 되었었지, 그리고 훌륭한 네 어머니에게 이미 구혼하고 있었단 말이다. 제기랄, 결혼을 하는 건 네 의무야. 항상 쾌락을 위해서 살 수는 없는 거야. 요즈음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결혼을 했어. 총각은 더 이상 유행이 아냐. 총각들은 흠이 있는 사람들이거든. 그들에 관해 알려진 게 너무 많지. 자네는 아내를 맞아야해. 네 친구 로버트 췰튼이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해서 그리고 또 착한 여인과 현명한 결혼을 해서 어떻게 됐는지 보렴. 왜 그를 본받지 못하는 거냐? 왜 그를 표본으로 삼지 않는 거야?
고오링 경
저도 그렇게 할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
캐버샴 경
제발 그랬으면 좋겠구나. 그러면 난 행복할거다. 지금은 자네 때문에 내가 자네 어머니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자네는 무정해, 아주 무정해.
고오링 경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캐버샴 경
그리고 지금이 자네가 결혼할 적기이지. 자넨 나이가 서른넷이야.
고오링 경
그래요, 아버지, 그렇지만 저는 서른 두 살이라는 것만 인정해요. 제가 아주 좋은 꽃을 꽂고 있을 때에는 서른 한 살 반이고요. 이 꽃은 충분히 시시하지가 않군요.
캐버샴 경
아냐, 자넨 서른 네 살이야. 게다가 자네 방에는 외풍까지 있어서 자네 행동이 더욱 나빠지는군. 왜 외풍이 없다고 그랬지? 난 외풍을 느끼는데, 아주 분명히 느끼는데.
고오링 경
저도 느껴요, 아버지. 아주 지독한 외풍이죠. 제가 내일 뵈러 가겠어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무슨 얘기고 의논할 수 있어요. 망토를 입혀드릴게요, 아버지.
캐버샴 경
아냐, 난 오늘 저녁에 확실한 목적이 있어서 온 거야, 그리고 내 건강이나 자네 건강에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끝까지 목적을 달성할걸세. 내 망토를 내려놔라.
고오링 경
물론이죠, 아버지. 그렇지만 우리 다른 방으로 가요. (종을 친다.) 여긴 외풍이 심해요. (하인 핍스가 들어온다.) 끽연실에 난로 불이 잘 타고 있어요?
핍스
네, 나으리.
고오링 경
그리로 가세요, 아버지. 재채기 소리가 아주 가슴을 찢는 듯하군요.
캐버샴 경
오, 동정은 집어치워. 요즘에는 그런 종류의 동정을 너무 많이 하고있단 말야.
고오링 경
저도 동감해요, 아버지. 이 세상에 동정심이 좀 더 적었더라면 걱정거리도 좀 더 적었을 터인데요.
캐버샴 경
그건 모순된 말이야. 난 모순된 말은 싫다.
고오링 경
저도 싫어해요, 아버지. 요즘에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모순덩어리지요. 그건 굉장히 지겨운 일이에요. 사교계를 너무 눈에 거슬리게 만들거든요.
캐버샴 경
자네는 자기가 말하는 걸 항상 정말로 이해하나?
고오링 경
네, 아버지, 만일 제가 주의 깊게 듣는다면요.
캐버샴 경
우쭐대는 젊은이 같으니!
어떤가요?
오스카 와일드 작품은 막 희극적이라기보다 서로 상반되는 것들의 언어 말장난을 읽는 재미로 보는 거라 이번 장면은 좀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순간에, 주변 인물들은 왜 무의미하거나 엉뚱한 질문을 던질까요?
2. 삶의 핵심이 아닌 것들이 핵심처럼 튀어나오던 순간이 있었나요?
3. 나의 계획은 온전히 실현되나요?
4. 나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요?
5. 심각한 상황 속에 들어오는 사소한 말은 왜 그렇게 기억이 남을까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말로 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도가 아니다.
-노자
오늘의 자랑입니다.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이게 뜨네요.
이 정도면 이런 글 올릴 자격이 되지 않나요?ㅎㅎ
저 노래는 당시 첫 번째 부인과 이혼 후 느꼈던 좌절과 분노를 담았다고 합니다.
그의 슬픈 노래가 나에겐 엉뚱하게 불쑥 튀어나오고, 그것은 더 이상 슬픈 게 슬픈 게 아닌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