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라(페레도노프의 동거녀)는 마마투성이에 뚱뚱한 하녀 나탈리야가 피로그나 그 밖에 다른 비싼 물건을 훔쳐가지는 않을까 겁을 먹고 잠시도 부엌을 비우지 못하고, 늘 하던 대로 하녀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었다. 주름진 그녀의 얼굴에는 예전의 미모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까다롭고 탐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항상 그랬듯, 그날도 페레도노프(바르바라의 동거남)는 불만에 가득 차 있었고 심사가 몹시 뒤틀려 있었다. 그는 소란스럽게 식당으로 들어와 창틀 위에 모자를 휙 던지고 식탁에 앉더니 소리를 질렀다.
"바랴! 먹을 걸 가져와!"
식사가 끝나고 그녀가 커피를 내오자 페레도노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에 고개를 푹 숙이고 냄새를 맡았다. 바르바라는 놀라서 걱정스레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커피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요?
페레도노프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를 흘끔 바라보더니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말했다.
독을 탔는지 냄새를 맡아 보는 거야.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르달리온 보리시치!" 바르바라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 하나님 맙소사! 도대체 왜 그런 상상을 하는 거죠?"
"독초를 넣은 모양이군!" 그가 중얼거렸다.
"아니, 무슨 득이 된다고 내가 당신을 독살한다는 거예요?"
"독이 들어 있으면, 가까이서 김을 조금만 맡아 봐도 진한 냄새가 나는 법이지."
그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신경질적이고 조소적으로 말했다.
"공작부인이라! 그 공작부인 말이야. 그 부인에게 먼저 자리부터 달라고 말해! 그다음에 너랑 결혼할 테니까. 그렇게 편지를 써 보내란 말이야. 알았어?"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서른세 번째 작품은 표도르 솔로구프의 '찌질한 악마'입니다.
표도르 솔로구프(Fyodor Sologub, 1863–1927)는 러시아 출신 작가로 한국에 그렇게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대표작 '찌질한 악마'(원제: Мелкий бес)는 도스토옙스키 이래 가장 완벽한 러시아 소설이란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체홉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ㅎㅎ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인공 '페레도노프'는 러시아 시골의 교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바르바라'라는 동거녀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녀와 같이 사는 이유는, 그녀와 빨리 결혼을 해야 공작부인에게 장학관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바르바라가 꾸민 거짓 조건이었습니다.)
페레도노프는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사람처럼 굴지만, 특유의 찌질함과 자기애적 망상으로 인해 바르바라는 물론 주변인들 모두를 조롱하고 모함하고 욕하며 그 쾌감을 즐깁니다. 그는 자신의 위대함을 과대평가하고 결혼을 끝까지 미루며 다른 여성들을 일부러 적대하고 이간질하며 무시합니다. 그러다 결국 그는 현실과 환상이 뒤엉키며 미쳐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여전히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볼로딘'이 '바르바라'를 유혹해 자신의 결혼 계획을 무산시킨다고 망상하고서 볼로딘을 살해하며 이 소설은 끝이 납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이러합니다.
교사로 일하는 '페레도노프'는 이상한 취미가 있습니다. 단지 학생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의 집을 찾아가, 그 아이가 학교에서 말썽을 부렸다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선생의 말을 믿은 부모는 아이를 매질하는데, 억울해하며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는 묘한 쾌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집은 잘못 걸린 듯합니다. 아버지의 태도가 선생님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페레도노프는 한 김나지야(러시아식 중고등학교) 학생의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갑자기 가랑비가 내렸다. 그는 새 비단 우산이 젖지 않도록 어디론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길 건너 2층에 있는 석조 주택에 '구다옙스키 공증인 사무소'라는 간판을 보았다. 공증인의 아들은 김나지야 2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비도 피할 겸 학생도 야단칠 겸 해서 그곳에 들르기로 했다.
그는 집에서 학생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났다. 그들은 수선을 떨며 그를 맞이했다. 이 지역에서는 대부분 선생을 그렇게 맞았다. (생략)
안토샤는 호리호리하고 민첩한 소년으로 예의 바르게 가만히 걸어왔다. 페레도노프를 응접실에 안내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안토샤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게으르고 조심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웃고 떠들고, 쉬는 시간에는 장난을 친다는 것이었다. 안토샤는 자신이 그처럼 나쁜 아이라는 말을 듣게 되자, 깜짝 놀라 열심히 자신을 변명했다. 부모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저, 죄송하지만 주로 어떤 장난을 쳤습니까?" 아버지가 소리 높여 물었다.
"니카! 그 애를 감싸고돌지 말아요." 이번에는 어머니가 소리쳤다.
"장난을 치게 해서는 안 돼요!"
"아니, 그래서 무슨 장난을 쳤답니까?" 아버지가 짧은 다리로 굴러다니듯, 왔다 갔다 하며 다시 물었다.
"글쎄, 그냥 장난을 칩니다. 왔다갔다 하고, 싸우거나 계속 장난을 칩니다." 페레도노프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저는 싸우지 않았어요. 아무한테나 물어보세요. 저는 한번도 싸움을 한 적이 없어요." 안토샤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답니다." 페레도노프가 말했다.
"좋소. 내가 직접 교장에게 가서 물어보겠소."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니카! 니카! 왜 안 믿는 거죠?" 아내가 소리쳤다. "당신은 안토샤가 못된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거예요? 이 녀석은 따끔한 회초리 맛을 보여 줘야 해요!"
"쓸데없는 말 하지 마! 나는 믿을 수 없어!"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회초리로 때려야겠어요." 어머니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더니 안토샤의 어깻죽지를 잡고 부엌으로 데려가려했다. "안토샤, 이 녀석아. 이리 와! 혼을 내줄 테다." 하고 소리쳤다.
"안 돼!"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어머니도 물러서지 않자, 안토샤는 안토샤대로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저를 좀 도와주세요." 아내가 소리쳤다.
"제가 안토샤를 혼내 줄 동안, 이 악한을 좀 붙들고 계세요."
페레도노프가 도와주려고 다가섰다. 그러나 아버지는 안토샤를 낚아채고는 아내를 휙 밀어 젖히며, 페레도노프 쪽으로 뛰어오면서 소리쳤다.
"참견하지 마시오. 개 두 마리가 으르렁거릴 때는 다른 개가 끼어드는 법이 아니오. 당신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소!"
얼굴이 빨개지고 옷이 구겨진 채, 그는 땀을 흘리며 공중에 주먹을 휘둘렀다. 페레도노프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아내는 안토샤를 잡아채려고 남편의 주위를 빙빙 돌았고, 아버지는 뺏기지 않으려고 안토샤를 자기 뒤에 숨긴 채 오른손 왼손으로 그를 잡아당기며 방어했다.
(생략, 페레도노프는 어두운 현관으로 쫓겨난다.)
잠시후, 옆문에서 갑자기 아내가 뛰어나왔다. 리본을 사방으로 휘날리며, 손을 저으며 까치발로 뛰어나온 그녀는 페레도노프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는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페레도노프는 간신히 알아들었다,
"정말 감사해요. 이렇게 일부러 방문을 해주셔서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렇게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고 찾아주셔서요. 자식을 기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선생님은 잘 모를 거예요. 아이들이 모두 둘인데, 골치가 아파 죽겠어요. 게다가 남편은 무지막지한 폭군이에요. 그는 정말 지독한 사람이에요, 그렇죠? 직접 보셨잖아요. (생략) 저 사람이 클럽에 갈 때가 있어요. 안토샤를 데려가지는 않을 거예요. 그때까지 그의 말을 듣는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그가 나가면, 그 녀석을 혼내주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저를 도와주실 수 있죠? 그렇죠? 선생님을 부르러 사람을 부르겠어요. 기다려 주세요, 남편이 클럽으로 나가면, 바로 사람을 보내겠어요."
어떤가요? 책 표지에 그에 대한 소개글은 이러합니다.
저열함, 야비함, 천박함, 옹졸함, 쩨쩨함, 유치함, 소심함, 이기적임, 게으름, 탐욕스러움, 오만함, 뻔뻔함, 음란함, 잔인함, 불결함, 비겁함, 참을성없음, 신경질적임... 어느 한 사람에게 인간의 온갖 악덕을 한 스푼씩 집어넣는다면, 그는 어떤 인물이 될까?
작품을 읽다가 보면 주인공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웃음이 나옵니다. 다른 의미로 정말 재밌는 소설입니다.ㅎㅎ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나는 언제 비열해지나요? 그 순간은 우스운가요?
2. 그 모습은 사랑받고 싶어하는 태도가 숨어 있나요?
3. 비열한 인간을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게 만드는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4. 비열함이 희극이 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5. 나는 착한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당신이 어떤 사물을 지나치게 오래 보면, 그것의 의미를 모두 잃어버릴까봐 두렵다.
-앤디 워홀
오늘의 속담입니다.
쌍가마 속에도 설움은 있다.
사람은 남 보기에 좋은 듯해도 누구나 저마다 걱정과 설움이 있다는 뜻.
조롱하고, 조롱하고, 결국 그의 서러움은 없어져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