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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의 파편」32. 안톤 체홉 - 담배의 해로움에 대해 中

by 재준

한 지방 클럽의 무대



뉴힌


친애하는 숙녀 그리고 에... 신사 여러분. (볼수염을 매만진다) 제 아내가 저한테 이곳에서 자선 대중 강연을 하라고 했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강연은 강연이고 전 어쨌든 전혀 상관없습니다. 물론, 전 교수도 아니고 학위와도 별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전 30년간 계속해서 제 건강을 축 내면서까지 엄격한 학문의 특성을 연구, 고찰하고, 때로는 학문적 논물을 아니, 학문적인 게 아니라... 이런 표현은 실례지만, 학문 비슷한 걸 쓰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제가 쓰고 있는 방대한 논문 제목이 "몇몇 곤충의 해로움에 대해"입니다. 제 딸들은 특히 빈대에 대한 걸 가장 좋아했지만, 제가 다시 읽어보고는 찢어버렸습니다. 사실, 뭐라고 글을 써도 방충제 없이는 해결이 안 됩니다. 우리 피아노에도 빈대가 사니까요... 오늘 제 강연의 주제는 인간의 흡연이 가져다주는 해로움입니다. 오늘 아내가 담배의 해로움에 대해 강의를 하라고 해서, 담배에 대해 다루고 있는 거지, 사실,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서른두 번째 작품은 안톤 체홉의 '담배의 해로움에 대해'입니다.

<수요일에는 체홉 작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체홉작품 모음 1 , 2 , 3 , 4 , 5 , 6 >


꽤 유명한 작품입니다. 한 남자의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단편희곡인데, 유튜브에 검색해보시면 한국 연극 배우들도 이 작품으로 많이 무대에 오르셨더라고요.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한 남편이 부인에 의해 강제로 한 지방 클럽의 무대에서 독백 강연을 하게 됩니다. 아내의 지시에 따라 주제는 '담배의 해로움'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만, 그런 건 남편에게 당장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아내가 아직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자신 인생의 슬픔과 서러움을 토로합니다. 그깟 흡연하는 것이 좋고 안 좋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지금 자신의 처지, 늙고 우울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생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우선이라는 것을 남자는 말합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뉴힌


우리끼리 하는 얘기인데, 아내는 부족함을 즐겨 호소하면서도, 숨겨놓은 게 4만 아니면 5만 루블이나 되지만, 전 단 한푼도 1까빠에카도 없어요. 말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기숙 학교(아내가 기숙학교를 운영)에서 저는 회계 주임입니다. 전 식료품을 사고 하인들을 관리하고 경비를 기록하며 공책들을 만들고 빈대들을 몰아내고 아내 개를 산책시키고 쥐들을 잡죠... 어제 저녁에는 핫케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와 버터를 여자 요리사한테 갖다 주는 일이 추가되었어요. 오늘 핫케익을 다 부쳤는데, 아내가 부엌에 와서 여학생 3명이 편도선이 부어 핫케익을 못 먹을 거라고 말했어요. 필요 이상 핫케익을 만든 게 된 겁니다. 이 핫케익들을 어떻게 합니까? 처음에 아내는 그것들을 지하실에 갔다 두라 하더니, 나중에 고민 고민하다가 말하더군요. "이 핫케익을 다 먹어, 멍청아." 아내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를 멍청이, 독사, 악마라고 부른답니다.

(생략) 저희 음악학교는 뺘찌소바치(개 다섯 마리 정도의 거리) 거리, 13번지에 있습니다. 우리 집이 13번지에 있기 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듯 실패한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 딸들도 13일에 태어난 데다가 우리집 창문도 13개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해요!

(생략)


나는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고, 늙고, 우둔하죠... 지금 이렇게 강연을 하며 즐기는 것 같지만 사실 목청껏 고함을 지르고 어디 먼 나라로 날아가고 싶어요. 아무한테도 호소할 수 없고, 울고만 싶습니다... 여러분은 딸들이 있잖냐,고 말씀하시겠죠? 딸들이요? 제가 말하면 그 애들을 비웃기만 합니다... (생략, 주위를 둘러본다.) 난 불행한 사람이고 멍청하고 쓸모 없는 인간으로 취급당하지만 사실 여러분들은 아버지들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을 보고 계신겁니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다르게 말할 수 없어요. 만일 여러분이 아신다면! 저는 아내와 33년간 살았고 이 기간이 제 생애의 가장 좋은 때였다고, 아니, 가장 좋은 게 아니라 대체로 좋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행복한 한순간처럼 지나가 버렸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전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주위를 둘러보며) 한데, 제 아내가 아직 안온 것 같고 아내가 여기 없으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아내가 나를 쳐다볼 때가 무섭습니다.

(생략)


여러분께 말씀드리는데, 전 한 잔이면 취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슬퍼져서, 왜 그런지 젊은 시절이 생각나고 도망가고 싶어지는지, 여러분은 모르실 거예요. 제가 얼마나 그러고 싶은지...! (열중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고 싶어요... 어디로요? 어디든 상관없어요.. 저를 보잘것없는 멍청이, 늙고 하찮은 바보로 만든 이런 속되고 쓰레기 같은 싸구려 인생에서, 33년간 나를 괴롭힌 멍청하고 보잘것없고 악하디 악한 수전노 아내한테서 도망칠 수 있고, 음악, 부엌, 아내의 돈. 이 모든 쓸모 없는 것들과 저속함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어디 머나 먼 들판에 멈춰, 드넓은 하늘 아래 나무로, 말뚝으로, 채소밭의 허수아비로 서서, 고요하고 밝은 초승달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잊을 수 있다면, 잊을 수 있다면... 오, 나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생략, 입고 있던 연미복을 바닥에 던지고 찢는다. 갑자기 등을 보여준다.)





난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난 이것보다는 고상하고 깨끗합니다. 젊고 똑똑하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 난 꿈이 있었고 자신을 인간으로 여겼는데... 지금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평온함 이외엔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평온함 이외엔! (한쪽을 쳐다보고는 빠르게 웃옷을 입는다.) 옆면 커튼 뒤에 아내가 서있습니다... 아내가 와서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시계를 본다.) 벌써 시간이 되었네요. 만일 아내가 물으면, 제발 여러분, 부탁이니, 강연을... 멍청이가, 즉 제가 제대로 했다고 말씀해주세요. (한쪽을 쳐다보고 기침한다) 아내가 여기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담배가 무시무시한 독약이 된다는 이러한 논제에 따라, 어떤 경우에도 흡연은 해서는 안 되며, "담배의 해로움에 대해"라는 제 강연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제 강의를 끝마치겠습니다. Dixi et animam levavi! (말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군요!)


인사하고 위풍당당히 퇴장


막.


어떤가요? 새벽4시에 깨서 작품을 쭉 찾다가, 이 작품을 고르고선, 웃고 싶어서 봤는데, 분명 예전에 봤을 땐 웃긴 작품이었는데... 왜 마음이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남편은 왜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결하려 하지 않을까요?


2. 그는 아내와 딸을 미워하는 것일까요?


3. 그는 왜 무시를 당하면서도 집을 나가지 않고, 아내를 도와주는 것일까요?


4. 그의 태도는 우스꽝스러운가요? 연민이 느껴지나요? 혹은 의미 없는 넋두리인가요?


5. 나는 지금 늙었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말의 정확성에 대해서 아무런 믿음이 없는 것처럼, 그 말의 정확성에 대해서도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사실 나는 내가 구사하는 언어의 정확성이나 그것의 효과도 그리 믿지 않는다.



-빈센트 반 고흐


오늘의 제 작품입니다.


작품명 3


아무도 쓰지 않는 3개 작동 모드의 세절기, 유기견보호센터에서 아무런 조치 없이 버림받은 3살의 금동이, 아무 의도 없이 그린 13살 때의 그림, 3개의 사물, 뉴힌의 13번지의 주소, 13일의 생일, 13개의 창문, 오늘은 23일..



그리고 제 3의 세계란.. 제 3자의 시선으로 아무렇지 않게 어느새 늙었는지, 플랜C를 세우는 인간이란, 3삼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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