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르넬르 부인
나가야겠다. 이런 자들과 같이 있을 순 없다.
엘미르(며느리)
너무 걸음이 빠르셔서 따라갈 수가 없어요.
뻬르넬르 부인
괜찮다, 얘야. 더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겉치레는 차리지 않아도 되니까.
엘미르
해야 할 일은 해야죠. 하지만 어머님, 왜 그렇게 빨리 나가세요?
뻬르넬르 부인
이 집안 꼬락서니를 그냥 보고 있을 수 있어야지. 내 기분이 상해도 보통이 아니거든. 그래 나는 몹시 불쾌해서 나가는 거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 조심성이란 하나도 찾아볼 수 없고 저마다 제멋대로 떠들어대니, 저마다 잘났다고 날뛰는 요지경 속이야.
도린느(하녀)
그래도...
뻬르넬르 부인
넌 계집애가 지나치게 말이 많고 너무나 건방져. 모든 일에 아가리를 놀리려 들지.
다미스(손자)
하지만...
뻬르넬르 부인
넌 말 그대로 등신이야. 할머니인 내가 말하는 거니 틀림없지. 난 네 아버지, 그러니까 내 아들에게 백 번도 더 말했다. 네가 못된 불량배가 되어서 애비 속을 썩일 것이라고.
마리안느(손녀)
제 생각으로는...
뻬르넬리 부인
아가씨, 넌 조심성이 있고 쓸데없이 나서지 않지. 온순하기 이를 데 없이 보이거든. 하지만 흐르지 않는 물처럼 더러운 물은 없다고 그러지 않니. 숨어서 뭘 꾸미는 거지? 내가 염증을 느끼는 건 바로 그거야.
엘미르(며느리)
하지만 어머님...
뻬르넬리 부인
이렇게 말하면 안됐지만 얘야, 네 몸가짐은 하나하나 모조리 틀렸어. 넌 그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엉 할 텐데, 죽은 며느리가 훨씬 낳았어. 넌 돈을 물쓰듯이 하고 공주처럼 차려입고 있지만 나에겐 그게 마음에 안 들어. 남편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거라면, 뭐 그렇게 단장할 것 없지 않니?
끌레앙뜨(며느리의 오빠)
하지만 부인, 그래도...
뻬르넬리 부인
며느리의 오라버님이신 당신이야 존경하고 친밀감을 느끼고 숭배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만약 내가 아들이라면, 그러니까 이 며느리의 남편이라면 이 집에는 절대로 출입하지 않도록 간절히 부탁했을 거요. 당신은 언제나 절대로 출입하지 않도록 간절히 부탁했을 거요. 당신은 언제나 처세훈은 늘어놓지만 정직한 사람들이 따를 만한 게 전혀 못 되거든요. 좀 지나치게 솔직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이게 내 성미라서. 마음에 있는 이야기는 털어놓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니까.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서른네 번째 작품은 몰리에르의 '위선자 따르튀프'입니다.
배우이자 극작가이자 지식인이자 멋쟁이었던 희극의 대가 몰리에르(Molière, 본명: 장-바티스트 포클랭 Jean-Baptiste Poquelin, 1622년 1월 15일 ~ 1673년 2월 17일)는 프랑스 출생 작가입니다.
다소 거친 언어로 표현되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위선과 어리석음,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몰리에르 작품 모음집 1 , 2 >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뻬르넬르 부인과 그의 아들 오르공은 위선자인 '타르튀프'를 가정에 들이며 그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깁니다. 주변 가족들은 타르튀프의 진짜 모습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지만, 오르공은 오히려 그를 의심하는 가족들을 꾸짖고 타르튀프만을 두둔합니다. 그러다 결국 타르튀프는 돌변해 오르공으로부터 집 문서와 재산 문서를 빼앗으려 하고, 가족들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왕의 개입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타르튀프가 오히려 처벌받으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이러합니다.
가족들은 타르튀프가 오르공의 아내, 즉 엘미르를 몰래 흠모한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이에 엘미르가 일부러 타르튀프의 마음을 떠보는 상황을 꾸미고, 가족들은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봅니다. 타르튀프가 사랑 고백을 하는 순간,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며 진실을 폭로하려고 하지만, '위선자 타르튀프'는 그럴듯한 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듯합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오르공을 제외한 가족들이 타르튀프가 고백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아들 다미스가 오르공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오르공
오, 하늘이여! 지금 내가 들은 소리가 믿을 수 있는 일일까?
타르튀프
네, 그렇습니다. 형제여! 저는 악인이고 죄인입니다. 부정투성이의 불행한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대악당입니다. 저의 생애의 모든 순간이 오욕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죄와 추잡함의 축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늘이 저를 벌하기 위해 지금 고행을 과하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아무리 커다란 벌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믿고 더욱 화를 내시고 죄인으로서 저를 집에서 내쫓아 주십시오. 어떠한 치욕을 받을지라도 저는 그 이상의 죄를 범한 게 분명합니다.
오르공
(오히려 아들에게) 이 배반자! 그런 엉터리없는 소리를 해서 이 분의 티없이 맑은 덕을 해치려는 것이냐?
다미스
뭐라구요? 이 위선자의 겉치레인 다정함에 넘어가 사실을 부정하시려고...
오르공
닥쳐! 몹쓸 놈 같으니.
따르튀프
아닙니다, 말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그를 나무라시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일로 왜 저의 편을 드십니까? 제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어떻게 아십니까? 저의 겉치레만을 믿고 계시는 건가요? 겉치레만을 보고 저를 보다 나은 인간으로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당신은 외관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모두들 저를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은 아무런 가치 없는 인간입니다. (아들 다미스에게)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자제분이여! 뭐라고든 말하시오. 나를 배반자, 파렴치한, 미친놈, 도둑놈, 살인자로 취급하시오. 더욱더 저주받는 이름을 실컷 나에게 퍼부으시오. 나에게 이론이란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인간이니까요... 나는 나의 생애의 죄에 어울리는 수치로서 무릎을 꿇고 이 모욕을 받아들일까 합니다.
오르공
형제여, 그건 지나친 말씀. (아들 다미스에게) 너는 아무렇지도 않니? 배반자!
다미스
뭐요? 그의 언변에 녹아서 그만...
오르공
닥쳐, 악당! (따르튀프에게) 형제여, 제발 일어나 주시오. (아들에게) 파렴치한 자식!
다미스
이자는...
오르공
닥쳐!
다미스
아, 울화가 터진다! 내가 이쯤 되면...
오르공
한마디만 더 하면 팔을 부러뜨려 놓겠다.
따르튀프
형제여, 신의 이름에 맹세코 화내지 말아 주시오. 아드님이 저로 인해서 할퀸 상처라도 받게 된다면... 전 어떠한 고통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르공
(아들에게) 배은망덕한 놈!
따르튀프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필요하다면 제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오르공
(역시 무릎을 꿇고 따르튀프를 껴안으며) 오! 왜 그런 겸손을? (아들 다미스에게) 이놈아, 봐라! 이분이 얼마나 너그러우신가를...
(생략, 오르공은 아들 다미스를 쫓아낸다.)
따르튀프
(방백) 오, 하늘이여!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을 그를 위해 용서하소서! (오르공에게) 형제처럼 생각하는 당신에게 저를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제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실 겁니다...
오르공
아, 그럴 수가!
따르튀프
그 배은망덕한 행동을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낍니다... 두렵기 짝이 없는... 가슴은 답답하고 말이 안 나오고,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오르공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쫓아낸 문 쪽으로 달려가서) 악당! 이 손으로 너를 갈겨 주지 못한 게 후회스럽구나. 이 자리에서 당장 뻗게 해주었어야 하는 건데! 원기를 내시고 울분을 참으십시오..
따르튀프
관둡시다. 그런 불쾌한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하죠. 저는 댁에 아마 커다란 분쟁을 가져온 듯합니다. 제가 이 집을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오르공
뭐요? 농담은 마십시오.
따르튀프
모두가 저를 미워합니다. 저의 변함 없는 마음을 당신에게 의심케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르공
상관없습니다! 제가 그들 말을 어디 믿습니까?
따르튀프
그들은 아마 계속할 겁니다. 그러한 고자질을 오늘은 물리쳤지만 다음에도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다고 볼 수 없으니까요.
오르공
아니오, 절대로.
따르튀프
아, 형제여! 여자란 남편의 마음을 쉽사리 사로잡을 수 있는 법.
오르공
아닙니다, 아니오.
따르튀프
자, 빨리 나를 여기서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저를 공격할 이유도 없어질 테니까.
오르공
나의 생사에 관한 일, 제발 여기 계십시오.
따르튀프
좋습니다. 제가 괴로움을 당해야 하겠지만, 소원이시라면... 네, 알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바 아닙니다. 사람의 명예란 중상 받기 쉬운 것, 당신에 대한 우정으로 저는 사람들의 쑥덕공론과 수군거림을 경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인을 피해서 다시는...
오르공
아니오, 누가 뭐라고 하든 아내와는 가까이 지내 주시오. 사람들을 화내게 하는 건 내 가장 큰 기쁨, 언제나 당신이 아내와 같이 있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뿐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만을 상속인으로 정할 작정이오, 모두를 더욱 곯려 주기 위해서. 나는 이 길로 가서 정식 수속을 밟고 내 재산을 몽땅 당신에게 드리겠소. 내가 사위로 선택한 친절하고 정직한 친구는 나에게는 아들보다도, 아내보다도, 친척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니까. 내 제의를 받아 주시겠소?
따르튀프
뭣이든 하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오르공
잘됐어! 빨리 가서 서류를 만들어야지. 시샘을 부리는 자들은 약이 올라서 뻗으라지!
어떤가요?
이 희곡의 진면목은 읽다 보면 정말 따르튀프가 위선자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그의 처세술은 능숙한 수준을 넘어서 일말의 진실을 건드리는 듯합니다.
마치 그것이 작가 자신의 평생의 화두인 것처럼, 진실과 위선 사이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몰리에르의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나는 위선적인 인물과 구도적인 인물의 경계를 알고 있나요?
2. 진심을 연기하는 사람과 연기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3. 가짜를 진심 같이 보이게 만든 적이 있나요? 나는 나를 속이고 있나요?
4. 따르튀프는 정말 자신 스스로 위선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혹은 약간의 성찰만을 지닌 채 자신의 언행을 믿고자 애쓰고 있을까요?
5. 나는 착한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Timeo Ergo Sum.
나는 두렵기 때문에 존재한다.
-비엔느
오늘의 겸사겸사입니다.
「희극의 파편」번외편- 나만 이거 아는 거야?
조용필의 母影(을 커버한 일본 소녀의 노래 영상)
9월에 일본 여행을 가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본 영상 알고리즘이 뜨는데, 꽤 인상적인 노래이네요. 갑자기 '조용필 상노..'라는 말을 하길래 깜짝 놀라서 찾아봤는데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가사 알기가 쉽지가 않네요ㅎㅎ 막상 나와있는 일본어 가사는 오류가 많더라구요. 이럴 때면 괜히 제대로 된 가사를 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근데 찾아보려고 해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저만 찾아본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가사를 찾아볼 사람이 있다면 이 게시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100프로 정확하진 않다고 봅니다)
若き少年もいつか老いれば
(와카키 쇼넨모 이츠카 오이타레바)
강인하던 소년도 언젠간 늙고
人は切なくて悲しいと気づく
(히토와 세츠나쿠테 카나시이토 키즈쿠)
사람의 삶이란 애절하고 슬프다는 걸 깨닫습니다.
海に寝そべれば
(우미니 네소베레바)
바닷가에 누우면
砂のあたたかさ
(스나노 아타타카사)
모래의 따스함에
何故か母の声が飛こえる
(나제카 하하노 코에가 토비코에루)
왠지 모르게 그녀(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いまも乳臭く 一緒に幕(した)う
(이마모 치쿠사쿠 히토스제니 시타우)
지금도 젖내를 풍기며 사모합니다.
母の面影 涙が恋しいと
(하하노 오모카게 나미다가 코이시이토)
엄마의 모습, 눈물이 그리워서
あの日へもしも 帰れるならば
(아노 히에 모시모 카에레루 나라바)
그날로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心を連れて 帰れるならば
(코코로오 츠레테 카에레루 나라바)
마음을 데리고 돌아갈 수 있다면
일본 특유의 인생무상함을 느낄 수 있는 가사네요. 오즈 야스지로가 생각나는..
롤랑 바르트의 '비타 노바(Vita Nova)' 즉,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이란,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탐닉하는 일이고... 마치 따르튀프의 독보적인 위선과 연기처럼, 그것은 결코 두려운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