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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갈나무 Sep 24. 2023

04. AP와 IB

심화과정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더만

돌이켜보면,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결정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웠던 것 같아. 한국에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여긴 그렇지 않거든. 판단 하나하나가 살 떨리던 시절이 시작되었지.


일단 AP 대 IB 고민부터 들려줘볼까. 이건 전적으로 아이의 성향과 학교 선생님을 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더라고. 우리 큰 아이는 AP를, 작은 아이는 IB를 했는데, 그렇게 두 과정을 곁에서 구경해 보니 그 판단이 맞았더라. 나는 AP는 일종의 심화 과정이라서 중간에 선생님이 바뀌더라도 큰 영향이 없지만, 호흡이 긴 IB는 교사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선생님의 실력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교사가 바뀌는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곤란해지거든. 


이 결정은 아이의 성향도 중요했어. AP는 과목별로 들을 수 있어. 예를 들면 영어와 역사는 AP코스를 듣고, 수학과 물리는 일반 과정을 들을 수 있는 거지. 그런데 IB는 그렇게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없이 모든 과목을 IB로 들을 것이냐 아니냐거든. 전체 과목을 골고루 좋아하고 골고루 잘하는 아이라면 IB 코스를 끝까지 마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중간에 포기한 아이들도 많더라고. 물론 아니다 싶을 때 멈추는 것도 큰 배움이지만,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덤볐다가는 예민한 십 대 후기에 불필요한 패배감을 맞보게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어. 두 과정을 모두 제공하는 학교는 없어서 중간에 바꾸려면 심화 과정 자체를 포기하거나 전학을 가야 하는 선택밖에 없지. 또 AP는 학교마다 개설되는 과목들이 달랐어. 아이가 원하는 과목은 AP 코스가 개설되어있지 않거나, 신청하는 학생수가 적으면 작년에 있던 코스가 올해는 없는 식이었어. 그러니 잘 판단해야 했지. 그런데 뭘 알아야 판단을 하지. 아.. 다시 생각해도 머리 아프다.


내가 경험한 두 과정의 차이에는 글쓰기 능력도 있어. 말했다시피 AP는 고3 수준 이상의 심화 학습을 하는 데에 집중하는 반면, IB는 뭔가 글을 쓰는 과정이 많았어. IB는 HL(High Level) 3과목과 SL(Standard Level) 3과목, 거기에 한 분야를 정해서 쓰는 철학 논문(Theory of Knowledge)과 2년간 공들여야 하는 소논문(Extended Essay)이 필수거든. 주제를 정하고 긴 논문을 쓰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더라. 그러면서 글쓰기 실력이 쑥 늘지만,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라면 과목 자체에 대한 흥미도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힘든 과정이었어. 좋은 점수받기도 어렵지. AP 같은 객관적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니까, 아무리 기준이 있어도 글을 읽는 분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수 있잖아. 읽고 분석하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걸 좋아하더라도 글쓰기를 어려워한다면 안 그래도 롤러코스터 같은 시절의 GR(지랄) 지수가 하늘을 뚫을 수도. 우리집 이야기야.


두 과정 모두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대학 과정 이수로 인정받을 수 있어.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다닐 때 보니, 숨이 꼴깍 넘어가게 어렵고 바쁜 대학 과정에서 몇 과목이라도 웨이브를 받으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어. 수업료도 절약되고, 똘똘한 아이들은 수강 신청을 잘해서 조기 졸업에도 쓰더라. 그런데 그것도 다 좋은 건 아니었어. 아무리 심화 과정이라 해도 대학교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전공과목을 웨이브 받으면 생각보다 큰 구멍이 뚫리더라고. 그래서 AP나 IB로 좋은 점수를 받았어도 교양과목이 아닌 이상 웨이브를 받는 게 손해일 수 있더라. 그러니 심화 과정을 결정할 때는 목표를 명확히 잡아야 해.


고등학교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문이과 성향이 뚜렷하게 나뉘는 아이는 아니였지만, 훨씬 더 잘하는 과목과 흥미가 덜한 과목이 분명했고, 무엇보다 아직 영어로 긴 논문을 쓰기엔 역부족일 것 같은 큰 아이는 AP 과정을 제공하는 학교로 결정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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