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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갈나무 Sep 26. 2023

05. 굳이 사립을?

온타리오 주의 고등학교(9학년부터 12학년)는 크게 공립 고등학교와 가톨릭 고등학교, 그리고 사립 고등학교로 나눌 수 있어. 공립 고등학교는 일반 교육청과 가톨릭 교육청이 나눠서 관할하고, 사립 고등학교는 CAIS라는 협회에 소속되어 있어. 


공립과 사립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고 입학을 결정할 내공이나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린 후보군을 뽑아서 무조건 가봤지. 공립 일반 고등학교는 TV에서 보던 그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가톨릭과 사립은 교복을 입어서 그런지 어딘가 조금 정돈된 분위기였을 뿐, 일단 필수 교과 과목에는 큰 차이가 없어. 


공립 고등학교는 학생수가 아주 많은 학교도 있고 학생수가 적은 작은 학교도 있어. 인문계와 실업계가 함께 있는 학교도 있고, IB를 제공하는 학교도 있지. 학생수가 많은 학교의 장점은 참여할 클럽이 더 많고, 아이들이 많다 보니 끼리끼리 문화의 피해가 좀 적어. 얘네들이 안 놀아주면 쟤네들이랑 놀면 되니까. 대신 그만큼 아이들의 범위(?)가 넓고 좋지 않은 문화에 빨리 눈을 뜬 아이들도 많았지.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어. 진짜 금으로 휘감고 다니는 아이, 여성 인권이 전무한 문화 배경의 아이, 동성 부모의 아이, 네 번째 아빠와 사는 아이, 심지어 북한 난민 출신 아이까지. 좋은 눈으로 보면 편견 없는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는 곳, 좁은 시야로 보면 뭐가 맞는 건지 헷갈려 죽는 곳, 그게 캐나다거든. 대학 생각이 전혀 없는 아이들이 많으면 높은 석차를 받기는 쉬운 대신 면학 분위기는 포기해야지. 폭탄이 터져도 내 갈길 가는 아이가 아니라면 이런 학교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아.


가톨릭 고등학교. 여기는 입학하려면 세례증명서나 신앙 서약서 등이 필요한데, 내가 마음대로 만들 수 없는 서류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가톨릭 신자여야 하지. 그래서 이 학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겉으로 봤을 때 공립 고등학교보다 건물이나 시설이 훨씬 좋고, 교복을 입는다는 것이 전부.


이제 사립 고등학교. 내가 알아본 사립은 정말 천차만별이었어. 입학하기 어려워서 입학을 위해 사전에 다니는 일종의 feeder school이 있는 학교, 학비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학교, 100년이 넘는 전통이 있는 학교, 이제 막 생긴 학교, 학교라고 하기 애매할 만큼 작은 학교, 기숙사가 있는 학교, 남녀 공학이 아니라 남학생만 또는 여학생만 받는 학교,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다니는 학교, 고등학교 과정만 제공하는 학교 등등. 나는 캐나다에 사립학교가 그렇게 많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캐나다는 교육과 의료가 무료인 나라잖아. 그런데 사립이 이렇게나 많다고?


일단 입학시험이 까다로운 사립은 1월에 입학 전형이 끝나기 때문에, 느지막이 덜렁덜렁 방문한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는 학교들이 많지 않았어. 학교들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나는 조바심이 났지. 학교마다 차이가 너무 큰 거야. 공립 선생님들은 너무너무 우수한 학생의 기준이 85점이었어.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에게 어떤 지적 자극을 주고 호기심을 채워주기엔 학생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내 눈엔 약간 '알아서 각자도생'의 분위기로 보이더라. 공립학교에서 잘하는 학생은 말 그대로 정말 잘하는 학생이야. 누구의 도움이나 인도 없이 혼자 잘하는 거니까. 공립에서 잘하던 학생은 대학에 가서도 이기기가 정말 힘들어. 나중에 대학을 보내고 느낀 거지만, 진짜 천재들은 공립 출신 같더라. 반면에 사립은, '학비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합니다' 분위기였달까? 아이들을 전방위에서 관찰하며 촘촘히 참견하는 느낌이었어. 무엇보다 박사 학위를 가진 교사들이 꽤 많았지. 우린 거기에 홀딱 넘어갔어. 거기에 학부모 서비스도 좋더라고. 캐나다에선 16세가 넘으면 성인이라, 학부모가 학교에 정식으로 초대되는 일이 거의 없어. 아이가 말해주지 않으면 어찌 돌아가는지 알 길이 많지 않지. 그런데 사립은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서 학부모를 아주 자주 학교에 오게 하더라. 나는 그게 좋았어.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부모의 학교 참여는 정말 굉장히 중요해. 부모가 영어를 못한다고 아이가 학교를 못 다니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짊어져야 할 불필요한 아령이 주렁주렁 늘어나. 그러니 이민이나 동반 유학을 생각한다면, 다른 게 아니라 영어 회화를 준비하고 가는 게 좋아. 영어 때문에 아이를 엄마아빠의 보호자로 만드는 건 아이의 한 부분을 훔치는 거더라. 부모라는 방패로 무장한 아이들 사이에 내 아이만 백의종군하는 모습, 너무 잔인하잖아.


입학 전형 기간은 오래전에 끝이 났지만, 우린 간절했고,  한국에서 챙겨간 이러저러한 증명서들로 얻은 인터뷰 기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서, 큰 아이는 우리가 원하던 사립학교에서 9학년을 시작할 수 있었어. 9학년은 캐나다 고등학교의 시작이라서 시기도 좋았지. 중3 중간 '전학'보다는 고1 '입학'이 여러모로 안심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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