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송당리 여행 - 오름
평소에는 아이의 등교 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난다. 송당리에서는 일출을 보려고 알람을 맞췄다. 겨울이라 해가 느지막이 뜨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전날 밤 늦은 잠을 청했다.
다음날 눈을 뜨고 바로 몸을 일으켜 창가로 눈을 돌렸다. 얕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연이 어우러져 빚어낸 풍경은 더없이 고요했고 짐짓 장엄한 느낌마저 선사했다.
몇 분 동안 충분히 멍을 때리고, 북카페에서 빌려온 책을 펼쳤다. ‘북스테이’답게 북카페에 있는 책들 중 원하는 것을 게스트하우스로 가져와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언젠가부터 굳건히 신뢰하게 된 ‘젊은 작가상 수상집’이었다. 덕분에 충만한 마음으로 북카페로 내려갔다.
북카페는 막 오픈 준비 중이었는데, 유일한 게스트인 나를 위해 정성스러운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주인 분이 직접 만드신 감자수프와 빵이 무척 맛있었다. 더욱이 평상시 가족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기에 바빴던 시각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호사스러운 대접이었다. 또 가끔씩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대체로 번잡스러운) 호텔 뷔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아기자기함과 안온함이 좋았다.
머무는 이틀 동안 맛있는 조식과 따뜻한 차를 곁들이며 주인 부부와 대화를 나누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셨던 주인 부부는 1년 반 전, 과감하게 제주 구좌읍 송당리에 터를 잡으셨다고 한다. 북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시면서 북토크 프로그램 역시 정기적으로 진행하신다. 이병률, 정여울, 김애란 작가 등 나 역시 호감을 품고 있던 작가 분들도 북토크에 참여하셨다고 한다.
평소 북카페를 즐겨 찾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모저모 여쭈었다. 이곳 북카페는 다행히 정부 지원을 받아 북토크를 내실 있게 꾸려갈 수 있고, 직접 건물을 지으셨던 터라 임대료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알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존재보다 소유를 더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신선한 만남과 새로운 배움을 추구하고 나름 실천했던, 몸과 마음이 보다 젊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들어 부쩍 그리워진 그 무엇.
서울에서 소박하더라도 유니크한 문화 공간을 꾸려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상당수 독립 서점들과 북카페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언젠가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다.
제주는 여러 번 방문했는데, 언젠가부터 으레 오름을 찾게 된다. 구좌읍은 제주에서도 오름이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게스트하우스에서 모니터만 파고 있어야겠지만, 역시나 그럴 순 없었다.
오름은 등산을 어려워하는 내게, 정상에 섰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지형물이다.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얻은 기운으로 생각을 올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