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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동백이에게,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루 장해요

당신 얼마나 훌륭한지 내가 매일 말해줄게요

by 감격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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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랜 육아 휴직을 끝내고 핑크빛 설렘을 안고 복직을 하였다. 너무 오랫동안 일을 놓았었기에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으어어~ 애 키우는 거 빼곤 다 잘할 수 있어! 이제 나도 어른 사람하고 대화하는 거야? 남이 차려주는 밥도 먹을 수 있는 거고?' 다소 유치한 기대 반이었다.


출근 첫날 가졌던 핑크빛 설렘과 달리 복직 후의 시간은 관계가 서툰 나에게 참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도 돌아가고 싶던 '어른들의 세계'였는데 하루 종일 KO 패 당하는 느낌이랄까.


지난주, 현재 활동하고 있는 팀 멤버들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자신이 가장 힘들어하는 관계'에 대한 형상을 표현해 보기로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귀여운 젤리 곰으로 표현해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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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 대해 등 돌린 모습, 마주 보고 있는 모습, 같은 곳을 보고 있는 모습 등 다양하게 표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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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 상사와의 관계'를 표현해 보았다. 3층에 서있는 상사 젤리 곰이 1층에 있는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마구 쏟아붓는 장면이 절로 구현되었다.


나의 실수로 충분히 지적받을 수 있는 상황인 적도 있었지만 얼토당토않은 상황이 꽤나 많았는데 나는 그 안하무인 상사에게 어쩜 그리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평생 따라다닐 꼬리표가 두려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에게 따라붙을 '꼬리표'가 두려웠던 것 같다. 극도로 보수적인 이 조직에서 상사에게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가는.. '평생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이다. 말 한번 잘 못했다가 미운털 박히면... 이 조직에서 배제될 것 같다, 그냥 입 다물고 잠자코 있는 게 최선이야' 항상 이런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미운털 박히는 게 그토록이나 두려웠기에 출근과 동시에 늘 얼굴에 '미소'를 장착했다. 얼굴 만면에 미소를 띠운 채, 상대에게 맞춰 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극도로 화가 났을 때 상대에게 그 감정을 드러내는 최고치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는 것'이었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터.


왜 그토록 미움받는 일을 두려워했을까. 왜 그토록 타인에게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었을까.


나는 매사의 시선이 '내가' 아닌 '바깥'을 향해 '타인'을 향해 가있었다. 늘 바깥을 향해서만 에너지를 썼으니 나를 위해 쓸 에너지는 항상 바닥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를 쉽사리 지워버렸다.


누군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나서서 호의를 베풀었고 타인이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내 속에 있는 사랑을 계속해서 길어내고 길어내며 애를 썼다.


친구들과 젤리곰으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어서일까. 문득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가슴을 울렸던 장면이 생각나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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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공효진> )

'사는 게 너무 쪽팔려서요. 내 인생은 뭐가 이래요. 나도 좀 쨍~하게 살고 싶은데 참, 세상이 나한테 왜 이렇게 야박해. 나만 자꾸 망신을 줘..."


(용식 <강하늘> )

동백 씨. 약한 척하지 말아요. 고아에 미혼모인 동백 씨. 모르는 놈들이 보면은 동백 씨 박복하다고 쉽게 떠들고 다닐진 몰라두요 까놓고 얘기해서 동백 씨 억세게 운 좋은 거 아니에요? 미혼모가 필구를 혼자서 저렇게 잘 키우고 자영업 사장님까지 되었어요. 남 탓 안 하고요, 치사하게 안 살고 그 와중에 남보다도 더 착하고 더 착실하게 그렇게 살아내는 거. 그거 다 우러러보고 박수 쳐줘야 될 거 아니냐구요


(동백)

[독백'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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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같았으면요, 진작에 나자빠졌어요. 근데 누가 너를 욕해요.

동백 씨, 이 동네에서요 젤루 세고요. 젤루 강하고 젤루 훌륭하구 젤루 장해요.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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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그런 말 해주지 마요. 죽어라 참고 있는데 누가 내 편 들어주면 막.. 내 편 들어주지 마요, 칭찬도 해주지 마요. 왜 자꾸 이쁘데요. 왜 자꾸 나보고 자랑이래. 나는 그런 말들 다 처음이라 막 마음이 울렁울렁 울렁울렁. 이 악물고 사는 사람 왜 울리고 그래요


(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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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매일 이 맹~한 동백 씨 안 까먹게요. 당신 얼마나 훌륭한지 내가 말해줄게요. 그러니까 이제 잔소리하지 말고 이제 받기만 해요


몇 번이고 이 장면을 다시 되돌려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제껏 내 편을 안 들어줬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만큼은 내 편이어야는 데 내가 그걸 안 해줬구나. 내가 얼마나 훌륭한지, 내가 얼마나 장한지. 내가 얼마나 강하고 예쁜지.. 전혀 얘기해 주지도 알아주지 않았구나'


책상에 앉아 관계를 어려워하는 나를 향한 무거운 마음과 친구와 터놓음으로써 가벼워진 마음, 영상을 보며 위로받은 마음을 모아 모아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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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선, 무례한 관계 속에서 마냥 허우적거리는 내가 아닌 나라는 귀한 존재 자체를 표현해 보기로 했다. 갑자기 고운 색감의 꽃잎 드레스를 입혀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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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내가 언제까지나 네 지하방에 세 들어살 줄 알았지?

이제 때가 된 것 같군. 내 단층 드레스의 끝단을 풀어헤쳐야 할 때 말야

(샤르륵, 샤르륵)
1단, 2단, 3단, 4단, 5단, 6단, 7단!!!!!!!!!!!!!!!!!!!!!!!!
너무 클라쓰 차이가 많이 나서 자중하며 조용히 좀 지내려 했더니 이거 안 되겠구먼~

자~ 할 일 없으면 내 치맛자락이나 좀 잡아줄래? 자꾸만 바닥에 끌려서 말이야

이런 글도 덧붙여보고 말이다. 흐흐.


용식이가 동백이에게 해주었던 말들을 나 자신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동백이'에게도 해주고 싶다.


"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해. 제일로 이쁘고 제일로 강하고 제일로 자랑스러워.

이런 내 마음. 이제는 받아줄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일깨워주는 일.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는 삶을 일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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