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여 년 전 통영으로 발령받아 살게 되면서 많은 섬을 방문했지만 간절한 염원과 달리 결코 갈 수 없는 섬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바로 소매물도. 쿠쿠다스 과자 광고를 찍은 까닭에 일명 쿠크다스 섬이라고도 불리는 소매물도는 ‘등대섬’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한데 이 등대섬을 가기 위해서는 꼭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바닷길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닷길이 열려야 한다고?
소매물도와 등대섬를 연결하는 자갈길(몽돌길)이 있는데 , 그 길은 평소에는 물에 잠겨 있다가 하루에 딱 두 차례만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길이 드러난다. 더군다나 소매물도는 다른 섬에 비해 운항거리가 긴 까닭에 기상상황에 따라 수시로 배가 결항된다. 그렇기에 소매물도에 가기 위해선 바다 갈라짐과 배 정상 운항, 이 두 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갈 수 있다.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이 딱 맞으면 배가 결항이고, 배가 정상 운항하면 바다 열리는 시간이 새벽이나 밤이라서 갈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이번 명절 연휴에 그 두 박자가 맞아떨어졌다. 오매불망 소매물도를 염원한 지 딱 3년 만이다.
통영의 다른 섬으로 여행 갈 때는 출항 후 얼마쯤 시간이 지나야 갈매기들이 오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배를 타자마자 갈매기들이 찾아오는 게 아닌가.
예전에 딸아이와 도서관에서 <바삭바삭 갈매기>라는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다. 바위섬에서 물고기를 먹으며 살던 갈매기가 배를 탄 사람들이 주는 바삭바삭한 과자 맛에 매혹되어 바다를 버리고 사람들 곁으로 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갈매기는 바삭하고 짭조름한 과자에 푹 빠지고 과자를 탐할수록 털이 빠지고 숨이 가쁘고 목이 마르게 된다. 결국 날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갈매기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게 되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짧디 짧은 그림책을 읽고 당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단 한 번도 갈매기의 건강에 대해선 생각지 않았기에 허를 찔린 기분이었고, 생각 없이 갈매기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던 나의 행태에 대해 반성을 했다.
아... 그런데 나는 책을 뒷구녕으로 읽은 것인가. 갈매기에게 과자를 나눠주는 순간순간이 어찌 그리 즐겁던지...
"자 간다~ 슈웅~!! 에잉 왜 바다에 떨어뜨리고 마는 거니. 옳지 옳지 잘한다." 혼자 즐거운 독백까지 읊조리다 나중에는 그 차원도 넘어서 버렸다. 훨훨 나는 갈매기들의 시원한 날갯짓에 마음이 홀린 나는, 사람의 손 앞까지 날아서 과자를 채가는 모습에 환호성까지 지르고 말았다.. 갈매기야 미안해. 너의 건강보다 나의 감격이 더 앞섰구나.
출항 후 30여분을 갈매기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다가 겨우 객실로 돌아왔다. 마루형 객실이다 보니 자연스레 옆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싱글이에요?” 혼자 배를 탄 내게 한 중년 남자무리들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 “아니요. 아이가 둘입니다.”
“아니 그런데 남편이랑 아이랑 같이 안 오고 혼자 왔어요?”
“애들은 학교 가고 남편도 출근했는데 저는 오늘 회사 휴가라서요. 오늘 마침 소매물도 배가 뜬다기에 너무 신나서 혼자라도 왔습니다”
“우리는 울진에서 왔어요. 오늘 소매물도에서 하룻밤 묵고 가려구.”
“그러시구나. 울진바다 색깔도 곱고 너무 이쁘잖아요” 두 손을 감싸 쥐며 부러움의 눈빛을 내비쳤더니 무리 중 한 명이 손을 내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울진은 뭐, 울릉도 갈 때나 좋지. 바다가 너무 망망대해야. 정말 끝도 없이 수평선만 펼쳐져있어서 재미가 없어. 통영바다처럼 아기자기한 맛이 없다고나 할까...”
출입문쪽에 머물던 대구 분도 슬쩍 대화에 참여했다. “대구에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잖아요” 인사말을 건네었더니 “미인은 무슨... 하나도 없어요” 손사래를 쳤다.
하핫.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직접 살게 되면 매력이 평가절하되는 것인가 싶어 혼자 속으로 픽 웃었다. 함께 발을 마주한 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결국엔 하나 둘 바닥에 몸을 뉘이며 늘어지기 시작했고 나 또한 슬쩍 대화에서 빠져 핸드폰에 코를 박고 SNS에 갈매기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간다소매물도 #갈매기밥주기 #극강의행복 . 해시태그를 잔뜩 붙여 구구절절 사연을 쓰고 있으니 어느덧 선내 방송이 나왔다.
소매물도. 소매물도. 소매물도에 도착했습니다.
사전에 인지하고 오기로는 소매물도를 트레킹 하는 코스는 두 개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코스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대구에서 온 남성이 본인은 소매물도를 방문한 횟수가 10회가 넘는다며, 자기만 따라오면 된다고 연신 손짓을 했다. 엉겁결에 그와 트레킹을 함께 하게 된 나. 사진 찍어줄까요, 잠시 쉬었다가죠, 여긴 서둘러 올라갈 필요가 없는 섬이에요, 제가 n번째 방문이라니까요, 왜 제 말을 못 믿으세요 계속해서 나의 안전지대를 침범해 왔지만 평소에도 거절을 못하는 내 입에선 '혼자 조용히 걷고 싶다'는 말이 결코 나오지 않았다.
싱글이세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고 있는 내게 질문이 들어왔다. 결국 그의 본심은 이것이었나 싶어 아이가 둘이라는 대답을 힘주어 내뱉었다.
“아아... 그렇구나 저는 돌싱이에요”
“네에.......”
“싱글이면 전화번호 물어볼랬는데, 결혼하셨다 하니 뭐. 부담스러우시면 여행 끝나고 저 차단하시면 돼요....”
혼자서 묻고 혼자서 답하는 그를 보며 열심히 발을 놀렸다.
선착장에서 트레킹 한 지 40여분. 드디어 오매불망 그리던 등대섬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대가 정녕 나를 3년간 퇴짜 놓은 등대섬이오?!
탄성과 원망이 뒤엉킨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보다 앞서 가는 이를 따라 좁다란 길을 바지런히 걸으니 등대섬 도착 전 마지막 전망대가 나왔다. 이름 또한「등대섬 전망대」. 자신은 너무 많이 와봤기에 전망대에 굳이 올라가지 않겠다는 대구 남을 두고 전망대에 올랐는데 '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통영의 많은 바다는 으레 양식장을 끼고 있는데 이곳은 그 어떤 양식장하나 없이 새파란 바다만 펼쳐져 있었다. 넋을 잃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그림처럼 배 두대가 포물선을 그리며 지나갔다.
우와.......... 탄성에 탄성을 외치며 전망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다 내려왔다. 저만치 앉아있는 대구 남에게 이 좋은 풍경을 왜 안 보시냐 물었다. "에이, 제가 소매물도에 몇 번을 왔길래요. 그간 수없이 많이 봤어서 굳이 또 안 봐도 돼요"
"그럼 소매물도에는 왜 오신 거예요?"
"저는 배 타는 그 시간이 좋아요. 배 타고 섬에 와서 간단하게 술 한잔 마시는 그 낭만이 좋아서 오는 거예요"
내 기준에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그의 대답에 의아함을 안은 채,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등대섬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자 등대섬으로 가는 바닷길이 열리는 오후 1시 50분. 바닷길이 열리기까지 10여분이 남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닷길 양쪽 끝은 다 열렸는데 가운데 부분만 애매하게 물에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가? 말아?!
길의 중간 부분은 아직 바닷물이 세차게 밀어닥치고 있었기에 섣불리 길을 건넜다가는 신발이 다 젖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젖은 신발로 섬 트레킹을 한다? 으. 상상만 해도 찝찝한 전개다. 하지만 어느 곳에나 성미 급한 사람은 있는 법. 노부부 중 한 분이 신발을 벗어 손에 든 채 맨발로 바다를 성큼성큼 건너기 시작했다. 우와, 저 열정과 패기. 바닷물이 얼마나 차울 것이야?! 나 또한 부부를 따라 신발을 벗어젖히고 건넜더라면, 아이들에게 엄마가 오늘 이런 모험을 했노라 약간은 뻐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 나이가 드니 무용담보다는 편안함이 좋다. 대구 남은 이번에도 등대섬을 가지 않겠다 했다. "도대체 왜요?"라고 묻는 내게 "저는 배 타고 섬을 오고 가는 시간을 좋아한다니까요"라는 말을 재차 반복했다. 이번에도 대구 남을 남겨두고 등대섬을 가기 위해 자갈길을 건넜다.
드디어 도착한 등대섬.
역시나 탁 트인 바다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실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이 등대섬 본섬보다 더 예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등대섬 옆에 자리한 병풍바위는 어찌나 절경이던지. 마치 기암절벽 같다고 할까.
본격적으로 등대에 퍼져 앉아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와 바다색깔 진짜 이쁘네, 10분 전만 해도 물에 잠겨있던 길이 어찌 저리 완벽하게 연결됐누. 이런 말 저런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빨간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 여성분이 눈에 들어왔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의 감격스러운 마음을 담는 듯했다. 디지털이 만연화된 이 시대에,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아날로그로 마음을 담고 있는 그 모습에 왠지 가슴이 일렁였다. 날 것의 감정을 열심히 노트에 옮겨 적는 그녀에게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다.
‘끙차. 이제 갈 준비 하자 ‘
마지막으로 한 번만 눈에 담고 가자는 마음으로 등대섬을 훑고 있는데 한 여성분이 가까이 와서 풍경을 담는다. 혼자 오셔서 사진 찍기 힘들겠다 싶어 "사진 찍어드릴까요" 물으니 흔쾌히 감사를 표하며 핸드폰을 건넸다. 내게도 사진을 찍어줄까 묻기에 아까 전망대에서 사진을 너무 많이 찍은 까닭에 폰이 꺼져버렸다 대답하니 자기 폰으로 찍어 문자를 보내준다고 한다. 소매물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다 혹여 아까 그 노트를 쓰던 분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오. 맞다고 한다. 혹시 지금 막 차오른 감격스러운 마음을 쓰신 거냐 물으니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렇다고 한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녀는 며칠간 통영을 여행하고 있는 중인데, 정말 너무 아름답다고 찬사를 표했다. 그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담소를 나누며 등대섬을 떠나왔다.
너무나 오랫동안 염원하다 오게 된 소매물도.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아까 마주한 절경의 전망대라도 한번 더 가볼까 싶어 발을 옮기니, 그녀가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를 외치며 먼저 길을 떠난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길을 갔을 뿐이겠지만 대구 남때와는 달리 나와 상대와의 안전지대가 지켜지니 마음이 꽤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켜니 그녀가 사진을 첨부해 보낸 문자가 와있었다. 아직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마무리하면 답장을 해야겠다. 빨간 노트에 꾹꾹 마음을 눌러 담던 당신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고. 소매물도를 떠올리면 늘 당신이 함께 떠오를 것 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