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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나, 나도 따뜻한 빵 한 조각이 필요했어

쪼그라든 마음에 스며든 위로 한 조각

by 감격발전소

며칠 전, 회사에서 인사 발령이 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서 이동이었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마음은 쪼그라들고, 기분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내가 몇 년 차인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

‘육아휴직 마치고 복귀한 직원보다도 못한 건가?’
‘그때 부서장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했어야 했나...’


그날 하루, 내 안은 자기혐오로 가득 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음 날엔 건강검진이 잡혀 있었고 내시경 약 핑계를 대며 조퇴를 했다. 사실, 그냥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약을 먹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속은 비웠지만 무거운 마음은 조금도 비워지지 않았다. 내시경 대기 중, 무작정 넷플릭스를 틀었고 우연히 눈에 띈 영화 <논나>를 재생했다. 이탈리아 노래 ‘푸니쿨리 푸니쿨라’가 흘러나오며 화면에 등장한 ‘논나’들—이탈리아계 할머니 셰프들의 이야기였다.


각자 집안의 손맛으로 요리하는 그들.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사연도 달라서 자주 부딪히지만 결국엔 웃고, 화해하고, 함께 요리하게 된다. 그 와중에 지아라는, 당당하고 늘 멋진 옷차림의 할머니가 자신의 취약한 내면을 털어놓는다. “사람들이 늘 나를 경계했어. 자기 남자를 뺏길까 봐.”


그때, 다른 할머니가 건넨 한마디가 정통으로 내 마음을 울렸다.


넌 그런 취급 받아선 안 돼. 진짜 아니야.
얘는 꼭, 따뜻하고 달콤한 이탈리아 빵 조각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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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아, 나 지금 이런 말이 필요했구나. 누군가가 나한테 “어둠에 사로잡혀 있지마. 넌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구나.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영어 자막으로 바꾸니까 이렇게 적혀 있었다.


You didn't deserve to be treated like that. That wasn't right.
'Cause she's like a warm piece of sweet Italian bread.


단어 하나하나가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작은 빵 조각 한 입에도 온기가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장면. 주인공 조가 할머니 셰프들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사랑을 경험하러 왔어요. 준비됐죠?”
(There’s a lot of people out there waiting to experience your hearts.)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나누는 음식도, 말도… 다 사랑이었구나. 한마디 말이, 식사 한 끼가, 누군가의 마음을 살릴 수 있구나.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엄마가 영화 한 편에서 큰 위로를 받았어.” 그리고 살짝 부탁했다. “이 대사, 엄마한테 한 번만 말해줄래?”


아이들은 내 눈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엄마는 꼭, 따뜻하고 달콤한 이탈리아 빵 조각 같아.”


그 순간, 쭈글쭈글 구김 가득했던 내 마음이 살짝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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