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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Jan 23. 2024

(독서)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의식은 통증을 느꼈다. 쾌활함.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 정치는 색깔도 없고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건 가장 무도회도 윤무도 고유한 의상을 입은 관현악대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가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디를 보나 허식이었고 정치였다. 그건 단어였을 뿐 어떤 개념도 아니었다. 정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는현실과 관계없는 표어가 되어버렸고, 지금까지 사용되던 이미지들도 그림으로는 나타나도 인간적인 내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즉 억압은 사슬이나 장화굽으로, 자유는 산의 정상으로, 경제체제는 유유히 연기를 내뿜는 공장의 굴뚝이나 하루의 일을 끝내고 피는 파이프 담배로, 사회 체제는 황제-왕-귀족/시민-농부-직조공/목수-거지/묘지꾼의 등급으로 표현되었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고통스러웠다. 시시각각 살아있는 채로 부패되어 가는 것을 체험한다. 이런 암공 속에서 사람들은 부패해 가는 짐승이 되고 모든 감정이 자유롭게 서로 교감하는 만족감을 소극적으로 맛보는 것과 달리 수동적이고 객관적인 공포감에 어쩔 수 없이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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