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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Jan 23. 2024

(독서)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줌파 라히리

외국어 공부에 대한 여러 은유들이 너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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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언어를 알고 있으면 사고를 체계화하는 데에 능숙함과 명료함을 훨씬 더 발휘할 수 있으니, 그건 우리의 사고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탓이다. 한데 어떤 언어도 무한한 생각의 묘미에 상응하는, 그것을 모두 표현할 만큼 충분한 단어와 구절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여러 언어에 지식이 있고, 그리하여 한 가지 언어로 말해질 수 없다든지 적어도 다른 언어로는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가 어렵거나 그 정도로 신속하게 표현을 찾기 힘들 때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우리가 각자의 사고를 표명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아울러 말을 생각에 적용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결국 말로 적용되지 않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인 상태로 남을 것이다. 레오파르디.     


어떤 외국어든 그 언어를 정복하려는 사람은 두가지 중요한 문을 열어야 한다(언제 열리지) 첫째는 독해력, 둘째는 입말이다. 중간에 놓인 더 작은 문들, 이를테면 구문, 문법, 어휘, 의미의 뉘앙스, 발음도 무엇 하나 건너뛸 수 없다. 그것들을 통과하면 비교적 숙달된 수준에 도달한다. 나는 여기서 나아가 감히 글말이라는 제3의 문을 연 것이다. (중략) 나는 마흔다섯살이 되어서야 이탈리아어로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상당히 늦게 이 문을 두드린 셈이다. 문은 살짝만 벌어진다.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은 두 세계의 중간에 끼인 슬픔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낸다. 바깥에 놓인, 혼자 소외된 이의 슬픔이다. 

     

사실상 사회, 가족, 이념, 정신, 신체의 구조가 허물어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어차피 원망하고 기피하고 결국 해체되고 말 바에야 왜 구태여 구조를 창조하느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원초적인, 밀폐된 공간에 대한 우리의 공포를 다루는 이야기다. 47쪽.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겨냥한 깊은 응시일테니. 최선의 글쓰기는 물러서지 않는 자기 성찰에서 나온다. 나는 타인의 언어와 문화를 흡수하는 일에 삶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벵골어와 문화에, 어른이 된 지금은 창작의 언어로 입양된 이탈리아어에.

     

과연 문학은 기대를 규정할 수 있는가(혹은 규정해야 마땅한가). 그럼으로써 사회 및 정치변화의 도구가 될 수 있는가.      


언어를 조금씩이나마 이해해나갈 방법은 오로지 언어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 그래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우리를 괴롭히다 못해 통째로 집어삼킬 듯 위협하는 언어에 우리를 내맡기는 것이다. 139쪽.      


자신의 영혼이 지치지 않는 것은 언어 때문이라고, 언어 공부가 자신을 구제해주기 때문이라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보람 있는 공부는 현대 언어를 익히는 것입니다. 문법서 한 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런 건 중고책 가판대에서 헐값에 구할 수 있고요. 독서에 목적을 부여하고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해요. 글을 쓰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면 말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등가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어어라는 내가 엄연히 사랑하는 언어로 글쓰기를 해왔다. 이탈리아어는 나를 불러 맞아주고 영감을 북돋아준 둘도 없는 언어다. 이 언어는 내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 가장 내밀한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었다.      


언어란 한 사회가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된 일련의 말을 가리킨다.      

사상과 정수,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에서 역사를 탐문하는 사람, 집중적인 독서, 놀라운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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