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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Feb 06. 2024

(독서)먼 빛들

최유안

'이상한 일'을 설명한 대목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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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원래 이상한 일'이라는 건 없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거나 감지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이상한 일이 되어있을 뿐이다.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건 이상한 일 바깥에 있는 다른 건 정상이라는 뜻인데, 그 말도 이상한 게, 애초에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이상한 일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인간이 지구에 계속 태어나고 자기 몫을 챙기고 살다가 결국 아무것도 쥐지 못하고 다시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가장 이상한 일 아닌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63쪽. 


돈을 제대로 버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 대학원의 애매한 시절을 견디는 것은 당연한 용기와 약간의 자기애와 비애, 자꾸만 따라붙는 낭패감과 끊임없이 싸우는 일이었다. 45쪽. 


모르는 채 비극적이고 참담한 기분이 아무도 찾지 않는 겨울의 바다에서 마주친 파도처럼, 철썩, 철썩 소리를 내어가며 은경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63쪽.


신참 때의 막연한 불안감도 없었고, 일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갔으며, 상사들에게서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지는 날이 많을 때였다. 조직에 잘 붙어 시키는 일을 적당히 하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기꺼이 즐거워지는 참이었다. 그저 이렇게 자칫 잘못 승진하지 않고 일도 더 많아지지 않은 채 매일이 유지되는 상황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88쪽. 


바니타스, 메멘토 모리, 화무십일홍, 적당하고 소소한 행복을 즐기면서 너무 튀지 않은 선에서 조직에 봉사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적당한 돈을 받으면서, 별 욕심 없이. 이렇다 할 보람은 없지만, 또 큰 지겨움도 없이. 행복의 속살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88쪽. 


예술은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고, 사람의 생각을 환기시켜 주며, 이런저런 부딪힘 속에서 사람은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기도 하니까.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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