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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Feb 13. 2024

(독서)쇳밥일지-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산문

직장생활이 적응에서 안정의 단계로 돌입한 듯 했다. 이는 비로소 노동을 일상에 초대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회사생활이 점차 무료해져갈 것을 예고하는 복선이었다. 일은 바쁘고 헛짬밥만 쌓여 실수하기 딱 좋을 무렵, 결국 대형 사고 하나를 터뜨리고 말았다. 

     

죽음에 자꾸 이끌리는 마음을 책임감의 갈고리로 삶까지 끌어당기는 건 아닐까. 내 육신의 죽음만으론 나에게 닥친 불행들까지 죽일 수 없다. 불행은 소중한 사람들에게까지 옮겨가겠지. 그럴바에 살아남아 불행과 싸워 이기는 게 낫지 않을까.     

 

온통 어두운 시야 속 번뜩이는 불꽃만 남은 망망대해 위에서 치열하며 섬세한 손놀림이 8자를 그리며 흐느적댄다. 천천히 진군하는 용융 풀은 나긋하게 산책 나온 주홍 반딧불이 같다. 목적지에 도달한 불길이 사그라지고, 지나왔던 길엔 위아래 간격이 똑바른 용접 비드만 남아 철판과 철판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야 현우야, 우리 없으면 누가 다리 만들어주냐. 우리 뿐만 아냐. 청소부, 간호사 택배, 배달, 노가다, 이런 사람들 하루라도 일 안하면 난리 나. 저기 서울대 나온 새끼들이 뭐하는 줄 알어? 서류 존나 어렵게 꼬아놓고 돈으로 돈 따먹기만 하고 땅덩어리로 장난질이나 치지. 그런 새끼들 보다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 기죽지마.    

  

명문대생은 공부 많이 했으니 유능해서 대단한 일을 하고, 전문대생은 공부 안했으니 무능해서 못난 일만 한다. 그리 생각하면 세상만사가 일목요연하고 질서정연해졌다.      


게임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출근은 더욱 괴로웠고 현실의 삶은 마치 벌받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죽을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용접을 좋아한다는 것.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타인의 평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   

   

창작은 외로운 일입니다. 어두컴컴한 길의 출발선에서 자기 두발로 종점까지 달려가야 하죠. 의지할 곳이 없은 타인의 시선을 빌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요. 그럴 때 일수록 단호해져야 합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해요. 습작을 계소고 만들고 성공한 작품을 분석하면서 꾸준히 자신을 갱신해나가는 거죠.      


남들이 비웃고 무시하던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느꼈던 감정, 들었던 생각들이 글 기술과 결합해 제 콘텐츠가 된 셈입니다. 쇠와 매연, 공장과 작업복의 회색지대가 저의 세계였 듯 여러분 역시 각자 자신의 세계가 있을 거에요. 저는 여러분이 자신의 세계를 부끄러워 하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더욱더 선명하게 그 세계를 완성해나가길 바랍니다. 다만 내 세계를 더욱 또렷하게 하기 위해선, 공부와는 약간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저 꾸준히 우직하게 정진해 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예전부터 관심가던 분야 혹은 옳다고 생각했던 분야, 재밌다고 느꼈던 분야를 찾아 꾸준히 넓게 파고드는 게 중요해요.      


누구도 감히 흔들 수 없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을 거에요. 자신과 일상, 동료들과 일, 오늘과 내일을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의 사고로 움직이고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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