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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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읽었던 저자의 등단작 표백이 완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표백의 모티브와 비슷한 점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자살이나 대학생들 간의 지적 긴장감, 신촌 풍경 등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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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독백 부분에 대한 혹평이 있었지만, 그 목소리 또한 뚝심있게 빽빽한 사유와 논증으로 밀어부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굉장히 치밀하고 현학적으로 의도된 것으로 느껴졌다. 궤변이라곤 하지만 궤변을 이토록 있어보이게 쓰기가 쉽지가 않다. 딜레마와 모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형사사법시스템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 답변해야 하는 무수한 모순의 갈래들에 대해서 정교하게 사유하고 그걸 가해자의 목소리로 직조한 느낌이다. 악의 복잡성, 죄와 벌의 복잡성에 대해 집요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느낌. 모두가 공리주의적으로 뭉게고 지나가는 것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는 느낌인데, 이런 질문은 문학 밖에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도스트옙스키 문학 연구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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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고 집요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내용들을 핍진하게 집어넣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허구를 기반으로 하니까 소설가 취재는 잘 응해주나 경찰들이?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범죄수사와 관련한 팩트들이 많다. 경찰 조직 이해를 하는데 책이 도움이 될 정도. 취재력, 인과관계와 흐름에 있어서의 논리 등에 있어서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게끔 사건 전후, 배경, 전사까지 탄탄한 사실에 기반해 있다는 느낌이다.(그래서 때론 취재한 내용 아까워서 이걸 굳이 길게 쓰는구나 하는 대목도 있었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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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저자들이 참고로 하는 문헌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조차 취재를 기본 바탕으로 하되 많은 문헌 조사를 통해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발로 쓰고 눈으로 쓰고 뭐 그런 느낌.
=무신론자의 시대=현대의 탄생=호모데우스=인생의 모든 의미=삶이란 무엇인가=자유의지=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팬을 들다=계몽주의 2.0=효율적 이타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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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이 특히 맴을 찔렀다.
지루하고 비루한 일을 잘 참고 견디며 성공 전망은 낮지만 그렇다고 잘 부서지지도 않는 사람으로서. 거대하지만 실체가 있는 실제적인 목표를 향한, 그 목표에 가는 길이 느리게 꾸역꾸역 조금씩 다가가는 방법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길을 가는.
이 시스템에 몸담은 사람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나쁜 부품이 되면 안된다는 거야. 시스템이란 것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는 고유의 형성 원리를 따르는 걸까. 우리는 그 힘에 휘둘리는 작은 입자에 불과한 걸까. 물 입자의 의지와 고나계업시 눈이 육각형 결정체를 이루고 나트륨 이온의 의지와 관계없이 소금이 정육면체가 되듯이?
수사란게 지루한 소거법의 연속. 꼭 확인해야 한다 싶은 걸 리스트로 작성해서 우선순위를 만들어보라.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고통을 객관화할 수 있을까. 뇌파를 촬영하거나 고통을 느낄 때 분비된다고 하는 호르몬의 수치를 측정해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그러나 심리적 고통에는 그런 유추를 적용할 수 없다. 심리적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상학적 체험으로서의 고통에 대해서 탐구해보자.
저는 자유란 게 탄수화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죠. 하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유로운 삶이 목표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삶의 목표가 탄수화물이라는 말처럼 들려요.
신계몽주의는 의미를 중시하며 의미를 향한 열망, 더 큰 이야기에 포함되고자 하는 욕망을 자연권에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
동료가 가스실로 끌려갈 때 '나는 이번에도 아니다'라며 환희를 느꼈다는.
SNS에 포스팅 하나 올리는 짧은 시간에 약삭빠르게 계산들을 하죠. 내가 얼마나 멋져보일지. 내가 얼마나 공감능력이 많으 사람처럼 비칠지. 내 자신이 얼마나 잘 찍혔는지. 우리는 왜 평판에 신경을 쓸까. 평판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는 '나'의 일부다. 우리는 평판이 더럽혀지는 일을 신체에 대한 공격만큼 아프게 받아들인다. '나'는 과거와 미래에 걸쳐진 사실-상상복합체다.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는 성의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대상이다. 거기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 무가치함, 공허, 부조리를 직시하자.
'경찰의 일'이라는 거대한 서사에서 소외되어 있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