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그 애의 넉넉함은 물질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에서 드러났다. 모래는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나쁘게 보려 하지 않았다. 그 관대함은 더 가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비싼 자동차나 좋은 집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자아를 부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헬멧을 쓰고 있을 것이다. 상처받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너의 삶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파멸.
대체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지나야 삶이라는 걸 살 수 있을까.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겠죠. 어쩌다 저런 인생을 살게 됐나 싶을 거예요. 근데 있잖아요. 최선을 다했던 거예요. 우리 무도 순간순간 그게 최선이었던 거예요.
우린 중력과 마찰력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구나.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 다시 갈수도 있는 거지.
같이 증오할 사람 하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