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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Oct 07. 2023

(독서)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상처가 글이 될 때, 고통이 텍스트가 되는 과정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 뱀부 항공서 다 읽었다. 동허이 공항, 하노이 등과 같이 기억에 남을 책. 


전쟁과 이민, 폭력과 트라우마, 퀴어와 죽음 등까지. 베트남 사람을 만나면 앞으론 오션 브엉 애기부터 해야지. 모계가 지닌 전쟁의 상흔에 대해서도. 

===


할머니 눈 속의 가로등과 그것이 비추던 어두운 얼굴의 황달 걸린 웅덩이들. 할머니는 제 손목을 쥔 채 창가로 당기셨고, 거기서 우리는 위로 폭발음이 튀어 오르는 것을 들으며 창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어요. 


우리의 베트남어는 타임캡슐이고, 엄마의 교육이 중단된 지점이자, 재로 변했던 지점의 표시예요. 엄마 우리가 모국어로 말하는 것은 그저 부분적으로만 베트남어로 말하는 것일 뿐 전체적으로는 전쟁 속에 말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동물이 텅 빌 때까지 먹을 거예요. 그 모든 기억들이 사람들의 혈류속으로 녹아들 즈음, 원숭이는 죽어요. (중략) 하나의 이야기란 결국, 일종의 삼킴이에요. 발화에서 입을 연다는 것은 뼈만 남기는 것이죠. 말하여지지 않고 낳음 뼈만. 엄마가 아직 숨 쉬고 계시기에 그곳은 아름다운 나라예요. 


제가 인형과 장남감 병정을 갖고 놀 때면 위에 항상 그 사진이 매달려있었어요. 제 자신으 삶으로 이어지게 될 진원지에서 온 성화. 


병사들에게서 어떻게 타르와 포연, 치클릿 껌의 박하향이 섞인 냄새가 났었는지. 전투의 냄새가 살 속에 너무나 스며 어떻게 격한 샤워를 한 뒤에도 남아 있곤 했었는지. 77쪽.  


1964년 북베트남에서 대규모 푝격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커티스 르메이 장군, 당시 미 공군 참모총장은 베트남이 "석기시대로 되돌아갈 때까지" 폭격할 계획이라고 말했어요. 한 민족을 파괴하는 건, 그러니까 그들을 과거로 되돌려놓는 것이죠. 미국은 결국 캘리포니아 면적도 안되는 나라에다 1만톤이 넘는 폭탄을 투하하게 돼요. 2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폭탄의 개수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었죠. 


저도 한때는 지식이 모든 걸 명료하게 해 줄거라 믿을 만큼 어리석었죠. 그러나 어떤 것은 겹겹의 통사론과 의미론 뒤에, 세월과 시간 뒤에 잊혀지고 구출되고 조명되는 이름들 뒤에 덮여있어 단순히 상처가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그걸 드러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죠. 


어떤 날은 제가 인간으로 느껴지지만 어떤 날은 하나의 소리로 느껴져요. 


저는 또다시 바르트를 생각해요. "작가는 자기 어머니의 몸과 함께 노는 사람이다. 그것을 영광되게 하고 미화하기 위해."


그러나 어쨌든 그 일은 제 안의 골절을 봉합해주었죠. 끊어질 수 없는 결속과 협업으로 이루어진 작업. 


클레오파트라도 똑같은 석양을 봤다고. 정말 미친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살아있던 인간들은 전부 다 오로지 하나의 태양을 봤었다는 거잖아. 146쪽. 


얇은 근육 다발들이 뚜렷한 산맥 모양으로 돌출된 쇄골까지 이어져있었어요. 저는 그 얘가 마치 하나의 기후, 계절의 자서전인 것 처럼. 엄마 옆에 인쇄된 한 단어로서 말이죠. 


만일 예술이, 양이 아닌 총알의 수로 측정되면 어쩌죠?


만일 예술이 측정되지 않으면 어쩌죠?


저는 다시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 어떤 것들이 우리가 그것들을 아릅답게 여겨왔다는 이유로 사냥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만일 우리 행성의 역사에 대해 개개의 삶이 그토록 짧다면, 다들 말하듯이 눈 깜짝할 사이라면, 매혹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태어난 날부터 죽는 날까지라 해도, 겨우 잠깐 매혹적인 거에요. 바로 지금처럼 해가 떠오르고 있는 것. 느릅나무 뒤로 낮게. 그런데 저는 일몰과 일출 사이의 차이를 모르겠어요. 붉어지고 있는 그 세계는 저한테 똑같아 보여요. 그렇게 저는 동과 서의 감각을 잃어버리죠. 오늘 아침의 색깔은 이미 떠나가고 있는 무언가의 바랜 색조를 띠고 있어요. 저는 트레버와 함께 공구 창고의 지붕에 앉아 해가 가라앉던 걸 보고 있던 그 시간을 생각해요. 339쪽. 


기요틴,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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