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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Oct 15. 2023

(독서)함부로 말할 수 없다

일주일간 출장에서 많은 걸 가르쳐준 선배가 쓴 책.  늘 ‘언어’를 통해 무언가를 ‘듣고’ ‘캐내어야 한다’,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걸 기질적으로 잘 하지 못한다(기자 답지 못하다)는 강박은 더했는데. 선배를 통해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보는 것’,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배웠다. 말과 글만이 언어가 아니라는 것. 사진은 더 강력한 언어며, 세상에 다른 층위의 언어는 수없이 많으며 다른 언어로 우린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는 것. 불립문자와 언어도단에 대해서도! 


저널리스트로서 취재원(피사체)을 대하는 정중함, 진지함, 따뜻함, 때론 저널리즘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는 것,  나는 말(입안의 도끼로 스스로를 찍을 수 있는)을 줄여야 한다는 것 등등 배운 게 너무 많다.  


7일간의 출장 동안, 적어도 순전한이기심/정치적목적/미학적열정/역사적충동 에 다가간다는 느낌은 받았다. 단 한번도 깊이 생각하지 못한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서, 고통의 상대성에 대해서. 


*사진도 이름과 말에 빚지고 살아가는 다른 갈래의 언어다.  

*언어로 덮기에는 우리의 세계가 너무나 거대하고 깊은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이름들을 깃털만큼 가벼운 소리로 부르고 소비하고 버린다. 사람이 만든 언어와 이름이지만 이름 앞에 사람 또한 무한히 가볍다.  

*문맹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설이 아닌 표현과 상징의 진의를 듣고 보지 못하는 단절을 말하기도 한다. 글뿐 아니라 그림이나 소리처럼 말로 정형화할 수 없는 감각과 직관의 언어들을 받아들이거나 외연하는 것에 대해 무지한 것도 문맹이다.  

*소설은 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의 이야기는 정지된 사진처럼 눈앞에 그려지고 삽화보다 선명하게 말하지 않은 것들을 보여줄 때가 있다.  

*엄중하고 서늘한 객관의 문장들이 던지는 말들이 그렇다. 독자들은 객관의 뼈대에 각자의 이미지를 입히고 그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다.  

*이미지는 언어로 단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다. 의식과 뇌는 컴퓨터 자판의 자음과 모음처럼 정해진 규칙으로 시각정보를 입력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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