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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Nov 23. 2023

(독서)세계의 역사1

윌리엄 맥닐

망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타자와 교류하고, 냉철하게 스스로를 객관화하며, 상호교류를 통해 타자의 우수한 문명을 내 것으로 배우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뼈때리게 가르쳐주는 세계사. 문명의 평형상태는 찰나였고, 서양이 절대적 우위를 점한 유장한 역사가 수메르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쉽고 직관적으로 서술한다. 역알못인데도 잘 읽히게 쓴 거 보면, 저자는 세계사계의 정통1타강사 느낌. 2는 도서관에 없어서 삼. 소장, 재독 가치가 있는 책이다.


한반도가 오랜 시간 중국 유교 문명권에 갇혀서, 쇄국정책을 고수하면서 더 넓은 세상, 더 큰 세계를 보고 쇄신하지 못한 것. 그래서 근대화도 상업화도 늦어져버린 것에 대해서 다시금 긴 안목으로 사유하게 한다. 이런 역사는 성찰적이며, 개인의 생활방식(타인과 교류 없이 폐쇠적으로 살아온 삶)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문장 하나 하나가 다 직관적이고 또렷해서 외우고 싶을 정도.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 이뤄진 이민족 야만인의 정복과 수탈(일종의 자극)은 유럽인에게 때론 피지배와 파괴를 의미했지만 끊임없는 교훈과 쇄신의 기회를 제공했고, 인간 규범을 모두 답할 수 있는 종교가 부흥한 것, 안보와 방위 기술이 발달하고, 해상무역 상업이 부흥하도록 민주주의가 꽃피운 것도. 갇혀 있지 않고 계속 교차하고 접촉하면서 스스로를 갱신할 수 밖에 없었던 지리적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여러면에서 역대급 세계사책.


*문명이란 이례적으로 규모가 큰 사회로, 수백 아니 수천킬로미터 떨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수백만명의 삶을 개개인의 수명보다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느슨하지만 일관성 있는 생활방식으로 엮어준다. 47쪽. 


*정보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전체를 보는데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고, 정보가 너무 적으면 역사의 박진감을 떨어뜨려 인간경험의 무한한 의외성을 숨겨버릴 수도 있다. 48쪽. (기사도 마찬가지)


*인간이 이례적으로 매력적이고 강력한 문명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을 경우, 여러 문화 사이의 균형은 그 문명의 중심부가 발산하는 힘에 의해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그 문명에 인접한 지역의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또는 어쩔수 없이 자기의 고유한 생활방식을 바꾸게 된다. 기술과 사상을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기 지역의 사정에 맞게 문물을 변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서구식 근대화)


*이후 구세계에서 인류의 역사는 농경민의 생활에서 비롯된 우세한 인구수와 유목민의 문화적 필요에 부응하는 우월한 정치/군사적 조직 간의 상호작용을 축으로 해서 전개됐다. 양자간의 균형은 사회조직과 결속력의 강약에 따라, 그리고 기술발전의 수준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종종 대정복자와 제국건설자가 나타나거나, 치명적인 역병이 유행할 경우에도 양자의 관계는 변했다. 


*정복자와 상인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회지도층의 형태에 다양한 충격을 주어, 하천유역 관개지대의 한계를 벗어나 성장하기 시작한 여러 문명사회와 원문명사회 사이에 상당한 구조적 변이를 만들어냈다. 97쪽. 


*무력에 호소하는 습관과 전사적 미덕을 존중하는 태도는 청동기 시대 야만족 침입으로 인해 유럽인의 의식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상비군과 상비군을 보조해 전투를 치르는 반직업적인 징집병 같은 권력의 기본도구가 발달한 것은 분명히 정치발전사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26쪽. 


*인간의 세계관에 영속적인 변화를 초래한 가장 중요한 운동은 현재보다 나은(때로는 가상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호소와 새로운 계시의 힘에 의지하자는 호소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카스트는 정치적, 영토적 행정의 중요성을 감소시켰다. 모든 사람이 우선적으로 카스트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국가보다는 카스트에 속해 있다고 느끼던 사람들은 어떤 왕이나 통치자에게도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149쪽. 


*도시국가, 폴리스를 형성함으로써 이오니아의 그리스인은 하나의 정치적 원형을 만들어냈는데, 이 원형으로부터 정치조직을 영토적으로 규정되는 주권단위인 국가로 편성하려는 서양세계의 전반적인 경향이 생겨났다. 영토권을 그 밖의 모든 형태의 인간조직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는 것은 인도의 카스트 원리를 보면 알수 있다. 161쪽. 


*폴리스가 우월한 정치적 단위로 발전하는 데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다. 이주와 정착을 번갈아 하던 부족이 일단 일정한 지역에 영주한 뒤 이웃 부족과 결합해 하나의 영토단위를 만들어야 폴리스가 성립했을 것이다. 일정 기간 권력행사를 위임받은 임명직 행정장관이 생겨났는데, 나중에 이들이 법적으로 규정된 권력을 갖게 되었다. 162쪽. 


서양인의 종교가 파라오의 핍박에서 탈출한 히브리 난민에서 비롯됐다면, 서양인의 정치는 도리아인으로부터 달아난 그리스 난민에서 비롯됐다고 말할 수 있다. 폴리스의 팽팽한 정치적 긴장은 인간 집단의 영토적 편성과 어울릴 수 없는 활동과 감수성을 배제했고 그리스의 여러 도시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 파국적인 결과가 초래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모든 성취는 그 대안을 포기했을 때 가능해지는 법이다. 


*3000년 동안 메소포타미아의 신관들은 문명사 초기에 수메르인이 생각해낸 관념과 의례를 계속 발전시켰다. 다수의 미개민족은 수메르 만신전의 위대한 신들이 실제로 세계를 지배한다고 확신했다. 동유럽과 서아시아의 스텝지대에 살던 고대주민들-그리스/로마/켈트/게르만/슬라브인은 하늘, 천둥, 해, 달 등의 신을 숭배했는데 이들 신의 힘과 성격은 고대 수메르 신관들의 사색에 의해 처음으로 정의된 것이었다.


*서양의 압도적인 우세로 인해 1850년. 비-서양사회 지도자들은 어쩔 수 없이 유서 깊은 선조들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전통적인 문화적 자율성 마저 포기한 채 서양의 기술을 차용하여,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에우리피데스가 제시한 극적상황은 인간의 드라마적 차원에서 인생의  난제에 대해 신과 신탁이 제시하는 그럴듯하고 안이한 해답과 은연중에 모순되도록 설정되었다. 


*실크로드를 따라 서방으로 가서 중국의 비단을 로마 제국의 시리아까지 운반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금속, 유리, 상당량의 화폐와 같은 다양한 상품을 싣고 왔다. 


*한 집단이 인근 집단을 밀어내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쫓겨난 최약체 집단은 사멸하거나, 스텝지대의 북쪽과 서쪽에 위치한 삼림지대로 도망치거나, 문명세계의 방어선을 뚫고 남하하여 농경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금전문제가 군신간의 중대한 협의사항이 되자, 군주들은 도시의 대표를 궁정에 불러들이는 게 더 현명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시민은 가장 풍부한 현금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다소 우발적인 방식으로 유럽의 주요 왕국에서는 군주나 왕이 영내의 모든 중대사를 대표들과 의논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관례화됐다. 최대의 관심사는 단연 세금문제였다. 이런 대의제도에 의해 유럽 각국에서는 상충하는 중요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유효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재산가와 납세자는 자신의 이익에 직결된 공적 문제에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유럽의 정치적 통합은 사회의 가장 활동적인 구성인자를 다른 문명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정치과정에 끌어들였다. 그래서 통치자와 지주, 상이  사이에 비교적 밀접한 협력관계가 형성됐다. 예컨대 남중국에서는 명조의 황제가 새로운 외항선의 건조를 금할 수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어떤 정부도 선주와 선원 같은 대규모 집단의 이익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또 하나는 교회법이다. 주교는 그들이 속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에 의해 선출돼야 하고, 교회지도자들의 회의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정하고 있었다. 정당한 권위는 임명되거나 선출된 대표들을 통해 표명되는 피치자들의 동의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369~370쪽. 


*자기보다 더 개화된 인접 문명국에 대한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가 생겨났다. 유럽인과 일본인은 자기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웃으로부터 무엇이든 차용했고, 그러면서도 우월감과 문화적 개성을 잃지 않았다. 


*유교의 원리는 상인을 기생적인 존재로 간주했다. 정말 규모가 큰 개인 소유의 상공기업이 중국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원산업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단초가 오래된 사회유형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잉글랜드인보다 약 700년 앞선 시기에 석탄을 연료로 사용해 대규모 제철 공업을 일구어냈지만. 357쪽 


*유럽은 적에게 반격을 가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기본적인 제도를 변용하고 기술을 향상시켜 향후 더 큰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내실을 다졌다. 인도는 외부의 영향을 받았으나 토착종교의 전통 안에 틀어박히는 반응을 보였다. 357쪽. 


*야만족 국가의 근본적인 약점은 어디서나 동일했다. 통치자들은 양립할 수 있는 두가지 일을 병행하고자 했다. 승리한 수령과 그 부하들은 한편으로는 약탈을 일삼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풍습을 유지하려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신민들의 금품을 착취하고 노역을 강요함으로써 문명생활의 사치와 쾌락을 향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복자들이 문명화되면 될수록, 이전의 부족적, 전투집단적 전통은 희박해져갔다. 안락한 생활과 악덕은 한 두 세대 만에 야만족 특유의 활력화 효율적인 호전성을 어김없이 잠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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