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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Dec 08. 2023

(독서)단단한 영어공부, 내삶을 위한외국어 학습의 기본

김성우

본문발췌


정확은 부정확의 축적이다. 부정확에서 부를 떼어내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말하려면 오랜 시간 부정확하게 말하기를 반복해야 한다.     


소리내기 활동에 더해 소리 느끼기 활동에 주목한다. 안면 근육과 혀의 움직임, 목의 떨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말소리가 전해주는 느낌을 기억한다, 자음과 모음을 구별하는 일을 넘어 소리 성질 자체에 집중하는 듣기를 실시한다. 코가 간질간질, 목젖이 떨리는 소리. 언어를 배우는 일은 언제나 소리에 감응하는 일이다. 245쪽     

단기속성이 아니라 장기숙성 공부를 지향한다. 단어와 단어, 단어와 나, 단어와 세계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하며 사고의 지반을 다진다. 단어의 외연적 의미를 넘어 함의를 생각해본다. 우리 문화와 타문화를 넘나든다. ‘의미가 담긴 단어는 인간 의식의 소우주’라는 비고츠키의 말처럼 말 속에 세계를, 우주를 발견하는 힘을 기른다.      


속도의 유창성보다 할 말을 또박또박해낸다. 조금 서툰 말 속에서도 감동을 발견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간다. 술술 말하지 못해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 빠름에 대한 동경만큼 느림에 대한 인내를 키워나간다. 능숙함에 경탄하는 만큼 조곤조곤한 대화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말의 풍경이 바꾸는 세계의 풍경에 기뻐한다. 새로운 말들이 내안에 쌓임과 동시에 나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학습을 모니터링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면을 응시하고 세계와 대면한다. 전력질주가 아닌 돌아봄과 성찰로 나아간다. 언어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속도로 언어를 제어하는 법을 배워간다. 


새로운 언어를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내 안의 지식, 경험, 의견, 욕망, 아픔을 새롭게 발견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언어를 소유물로 보고 이를 습득하는 것으로 파악하기보다는 특정 커뮤니티의 일환이 되는 과정으로 파악하느 개념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규칙이나 형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문화적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일이다.      


원어민이라는 유령, 말하기 쓰기 읽기 듣기도 잘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유령, 영어의 완전체로 현현하는 유령, 주관을 배제한 완벽한 객관성을 견지하는 유령 말이다.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배할 뿐이다. 원어민에 대한 선망과 선동은 교육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한국의 영어학습자는 ‘네이티브’가 될 수 없는 사회 문화적, 경제적, 생물학적 조건에 처해 있다.      


우리말 책을 최대한 많이 읽어야 합니다. 무작정 공부하기 보다는 관련 지식을 쌓고 이에 기반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배경지식을 쌓을 때 효율적인 것은 모국어 밑천이다. 단위시간당 정보처리량을 생각하면 외국어와 평생 써온 우리말은 비교할 수 없다.      


두 언어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바이링궐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한 이주에는 떠남의 상처, 현지 적응의 여려움, 언어 정체성의 혼란, 사회문화적 토양의 급격한 변화, 사회성 발달의 위기 등이 반드시 뒤따른다.      


발음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성격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다. 새로운 발음을 익히는 것은 언어 습득을 넘어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매력적인 발음은 본래부터 우월한 것이 아니라, 언어를 둘러싼 정치와 경제, 미디어와 산업, 교육과 출판이 만들어낸 거대한 신화의 일부다. 한국어 원어민으로서 비원어민과 소통할 때 우월하다고 느낄 이유도 자격도 없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언어라는 세계에는 엄격한 법칙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문법이다. 어기는 일은 범법이다. 다양한 문법 규칙은 형법 세부조항이다. 문법은 감시하고 배제하고 처벌한다. 문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세계시민이 될 자격이 없다. 학생들은 잠재적 범법자가 된다. 말을 하고 싶어도 틀릴까봐 놀림당할까봐 입을 닫는다. 문법을 배우면서 언어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발견하기 보다는 ‘나는 틀리기만 한 사람’이라는 그릇된 정체성을 키우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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