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녀 Dec 30. 2021

들춰보기 싫어서 더욱 들춰봐야 하는 나의 2021 회고

테크 헤드헌터가 고군분투한 이야기

12 29,  해를 이틀 남겨놓고 나는 미루던 회고를 한다. 이대로 그냥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반추 없는 배움은 없지 않은가. 힘든 만큼  성장한  해였으니, 꾸역꾸역, 알아차리고 바라보겠다.


성과부터 시작하자. 실무 외에 요소들이 힘들었던  년이었기에, 실무는 사실 힘들지 않았다.  아니라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같다. 거의 auto pilot으로 돌아갔는데, 막상 바라보니 성과는 좋았다. 이것이 짬인가. 3  밖에 안된 것이 번데기 주름잡는 것인가? 여튼. 올해 나를 통하여 이직하신 후보자 23, 작년 20명에 비교하여 3, 15% 인상. 우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시 보는 billing(매출) 보면 30% 인상. 내가 찍어본 연간 최고 매출이다. 하루하루 빠르게 사느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대박이다. 자랑스럽다.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실무는 실무데로 했구나. 이게 되는구나.


23분 후보자님들의 직무는 과반수 이상 AI & Data 직군에 계시다. 작년에는 AI engineer 한 명 외에 모두 product 개발자(front, back, mobile)였다. 올해 나는 우리 회사 최초로 AI & Data 직군만 전문으로 리쿠르팅하는 팀을 만들었다. 글로벌 30여 개국 지사 최초라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첫 분기는 말 그대로 멘땅에 헤딩, 쿵 박았다. 입사 때부터 develop 했던 고객사와 후보자들을 모두 내려놓고,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일은 예상처럼 어려웠다. 첫 분기는 그냥, 일이 느렸고, 매일 아침 하는 후보자 리뷰 리스트가 계속 줄어들자 나와 팀원은 애써 웃었지만, 불안했다. 하지만 내가 우리 일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하면 된다. 되더라. 2분기부터는 나와 팀원 모두 원천기술 중심의 고객사들을 발굴 및 유지하였고, 자리를 잡아갔다. 누가 보면 용감하고, 누가 보면 무모했을 도전에 대한 감사한 보답이었다. 이때에 나와 함께 해준 팀원에게 가장 감사하다. 나는 매니저가 됐으니, 새로운 팀을 꾸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만, 컨설턴트의 입장에선 매분기 매출과 성과가 더 중요하다. 그 관점에서 gauranteed setback을 함께 도전해준 그녀가 없었다면,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하여 지나갈 수 있었다. 더 niche 한 tech을 선택했기에, 후보자의 이력서를 눈앞에 두고 모르는 단어를 세다가 너무 많아서 깔깔 데고 웃기도 하였고, 큰 팀에 속해있다 작은 팀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살림살이를 정돈하며 또 빵 터지기도 했다. 살림살이란 실제 물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운영하다 보면 필요한 행정적인 절차나 과정들을, 팀장인 내가 잘 모르다 보니... "하! 나 그거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하며 민망하게 웃으면, 마음이 관대한 팀원이 함께 웃어 주어 덜 민망하였다.


채용채용채용 미지의 세계


나의 업이 채용 이것만, 정작 우리 회사, 우리 팀 채용은 나에게 아직 너무 버겁고 어렵다. 고객사들의 현란하고 각 잡힌 인터뷰 점수표와 프로세스에 영감 받아 나 또한 여러 시스템을 시도해보고, 올해 인터뷰 한 수십 명의 후보자 노트를 죄다 정리하고 점수화하였다. 나보다 인터뷰와 삶 경험이 많은 회사 선배/임원들의 인터뷰를 shadowing 하며 스타일을 분석해 보기도 하였고, 관련한 책과 영상 또한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덕에 나는 올해 두 명을 채용하였고, 그 둘은 3달 내에 떠났다. 잘 못 채용 한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그들 덕에 직시하기 싫었던 나를 여러 방면 보게 되었고, 당시에는 분하고 창피하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때의 내가 공감 가고 용서된다. 그들 또한 좋은 동기로 입사하였겠지만, 지금은 더 잘 맞는 곳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새해에는 한 분을 온보딩 하게 되었고, 상반기에 한두 분을 떠 뽑아야 한다. 올해의 경험이 새해의 실수를 줄여주겠지만, 또 새로운 실수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나는 완벽한 매니저가 아님을.

 

사회적 이목구비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싱어 게인 시즌2가 나왔다. 김이나가 한 참가자에게 "정돈되어 있는 사회적 이목구비"라는 코멘트를 하였다. 그 말이 공감되었다.


바야흐로, 나의 첫 한국 사회생활로 돌아가 보자. 옛날 얘기를 하는 것 보니 나 정말 꼰대가 되어 가고 있구나. 미국에서 근 10년의 생활을 마치고 잡은 첫 인턴쉽, 전략 컨설팅 프로젝트였다. 출근 첫날, 팀장님이 인턴들에게 프로젝트 개요를 설명 주실 때, 나는 바로 노트를 꺼내 들어 열정적으로 필기하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아~" "uh huh~"같은 반응을 소리 내어하였는데, 그때마다 팀장님이 피티를 잠시 멈추고 당황스러워하며 "자네, 내가 하는 말마다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네" 라며 나를 자제하였다. 당시 팀장님에 입장에선 거의 가나다를 읊듯 기본적인 개요 설명 중이 었는데, 웬 방청객 수준 리액션이 나와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다. 나는 인턴쉽 내내 팀장님과 팀 사수분들을 당황시키며 찬란한 첫 인턴쉽을 마무리하였다.


다행히 나의 오버 리액션과 영어반 한국어반 섞어 쓰는 콩글리쉬를 개떡같이 말하여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 좋은 영국계 기업에 와서 그래도 나대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 매니저의 역할에 들어서니 나의 감정을 항상 모두에게 표현하는 것에 따른 책임에 대하여도 배우게 되었다. 그 책임은 무겁고, 어쩔 땐 무섭다. 그래서 올해 내 이목구비는 어느 정도 사회화된 것 같다. 연말에 대학교 동창들을 만나니 써니가 가장 차분해진 것 같다는 피드백을 줬다. 그렇다. 필요할 때에는 나도 정돈되어 있는 이목구비로 비즈니스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눈썹과 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대화에 참여한다. 대기업 출신 팀원과 미팅을 마치고 강남대로를 걸으며 미팅 debrief 하던 중 그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렇게 말했다 "써니, 여긴 길이에요, 연극무대가 아니라."



박수칠때 떠나간 사람들


우리 팀... 그들과 나란히 길을 걸을 때에는 청춘드라마 OST가 어디선가 흘러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만큼 함께 나눈 젊음과 열정, 서로를 향한 의리가 매일매일 피부에 느껴졌다. 그런 아름다움을 선물해준 팀원들에게 고맙고, 이런 조합을 또 만나지 못해도 한이 없을 만큼 최고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웠지만, 올해 테크팀은 퇴사자가 많았다. 하나 둘 떠나고 화룡점정은 나의 팀장님이 떠나갔을 때. 나를 채용하고 하나부터 열을 가르쳐주신, 나의 우상 같던 매니저가 미국 지사로 transfer 한다는 소식에 역시 그녀는 멋지다라며 손뼉 쳤지만, 서운했고 그녀 없는 회사 생활이 두려웠다.


그들이 없이 어떻게 하지? 나도 같이 나갈까? 아프게 고민했지만, 허무하게도 회사는 그들 없이 돌아가더라. 이것이 조직의 무게이자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우리 회사 같이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돌려온 시스템은 몇 명의 퇴사에 무너지지 않는다.


We're only human. 완벽한 인간은 없다.  


크리스마스를 맞이 하여 가족들과 영화 The Two Popes를 봤다. 제목처럼 두 교황에 대한 아주 흥미롭고 웃픈 순간들이 가득한 좋은 가족영화였는데, 교황 베네딕토 16가 미래의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We're only human"이라며 건넨 조언과 용서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렇다. 나는 매일 완벽하려고 애쓴다. 스스로에게 완벽하기 위해서 이뤄야 할 긴 리스트와, 복잡한 전략을 자주 되뇌기고, 무의식 속에서도 그 생각의 굴레에 갇혀 지낸다. 이렇게 사는 것이 대단히 힘든데, 삶을 너무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완벽할 수 없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려 한다. 또 나의 주변 사람들이 완벽할 것이라는 무거운 기대도 내려놓고, 누구도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할 것이다. 이렇게 살면 너무 안달복달하지 않고 생긴 데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시도는 해 볼 것이다.


최고의 클라이언트


사람에 죽고 사는 나는, 헤드헌터가 정말 천직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재미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데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혜성처럼 등장한 나의 클라이언트 K이다. 때는 4, 늦게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홀짝이던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 김선우입니다" 로봇처럼 받자 답으로  말은 이러하였다. 회사에 새로  인사팀장인데, 오늘 면접  후보자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린 12시간  딜을 클로징 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속도였다. 채용이라는 것이 속도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 하지만, 어떤 선을 넘으면, 그것은 질질 끄는 것이 된다. 채용담당자와 후보자 사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달래는데 감정을 많이 소비하는 나에게, 이런 스피드가 너무너무 짜릿하였다. 그렇게 K 다섯 명의 입사를 일사천리로 완료하였고,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특히 소통 과정이 아이코닉 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나 간단명료하여, "?" "!" 요약할  있겠다. 성공 횟수가 늘어날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도 늘어나, 시간이 하루 이틀 지체되어도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을 알고 기다릴  있다니.. 이것이야 말로 good business partnership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쿨하여 풀로 붙인 딜들로 오해한다면, 하지 말라. 다섯 명의 후보자는 기쁜 마음으로 재직 중에 있다. 면접관의 준비, 회사의 셀링 포인트, 후보자들의 명확한 이직 동기와 그의 해답이 고객사에 있을때, 완벽한 딜의 심포니 였다! 올 해 좌충우돌 마음 쓸 일을 많이 주셨으니, 복덩이도 무심코 하나 툭 올려 주신 것이 클라언트 K이다.


롱런을 향하여


안간힘을 쓰며 살았더니 몸 이곳 저곳에서 이상 신호가 났다. 평소 고질적으로 앓던 소화불량은 계속하여 심해 졌고, 밤에 잠 들 때에도 뒷골이 쭈뼛쭈뼛 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이도 먹는다. 어느 순간 부터는 내리막길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자주 상기되던 한 해 였다. 그래서 나는 살려고 부지런하게 몸 관리를 하였다. 올해를 번아웃 없이 그래도 잘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체력의 향상과, 매일 나를 지탱해준 건강 루틴이였던 것 같다. 이런 결심을 하게됨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계속 내 몸에 투자하고 관심 기울일 것 이다. 작년 부터 시작했던 필라테스를 그만 둘까 고민도 하였지만, 1년 내내 1주일에 2번 개인레슨을 지속 하였다. 단기적으로 몸이 훅 좋아지는 것은 느끼지 못하였지만, 퇴근 후 집에와서 티비 보면서 하루 일과를 곱씻는 것 보다는 분주히 옷 갈아입고 운동가는 편이 좋을 듯 하여 지속 하였다. 시작한지 반년이 지나가니 갑자기 몸에서 힘이 났다. 걸음걸이가 가벼워지고 하루쯤 무리한 일정이나 수면시간이 변하여도 다음날 회복속도가 빨라졌다. 기뻤다. 필라테스 습관이 유지되니, 하나 더 추가를 하고 싶었다. 특히 잠들때 나의 머리속을 바삐, 열뻐치게 채우는 생각들로 부터 해방 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필요 하였다. 그래서 회사 근처 요가원에 등록 하였다. 퇴근 후 바로 가거나, 요즘은 매주 월요일 새벽 요가가 그렇게 좋다. 요가 선생님이 하루는 사바사나 (바닥에 대자로 눞는, 수업 후 휴식 동작) 중 다가와 휴식 중에도 한껏 올라가 있는 나의 어깨를 바닥으로 지긋이 눌러주시고 머리를 지압 해 주셨다. 수업 후 쌤이 "우리 선우님 머리에 열이 너무 많으세요. 제말 믿고 주무실 때 물소리 들어보세요. 정말 온도가 내려가요." 그래서 한동안 잘때에 유튜브로 물소리를 검색하여 들었다. 도움이 됬다.


하루는 필라테스 후 복통이 너무 심하여 급한데로 옛날에 어머님이 다니 던 한의원을 찾아가 침을 맞았는데, 이젠 일주일에 2번 꼬박 꼬박 침을 맞는다. 용하다고 소문난, 명동에서 유명한 한의원이다. 선생님은 내 배를 꾹 꾹 누르시더니, 태생이 민감하여 워낙 위와 장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라고, 나의 성질을 바꿀 수는 없지만, 침으로 복통과 소화불량을 완화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정말인지 선생님이 주시는 대침이 쿡 쿡 찌를 때마다 "꺄울!" 너무 아파 내적 소리침이 있지만, 바로 배가 꾸르륵 풀리는 느낌이 매주 다시 방문 한다. 한의원 덕에 잃었던 입맛과 식사자리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너무 기쁘다. 잘 먹으니 당연히 에너지도 올라간다.


그리고 나는.... 4년차 취미로 스윙댄스를 추는 댄서이다! 귀국 후 한국에서 또래들을 사귀기 위하여 동호회에 가입 하였는데, 취향저격 한때 춤에 푹 빠져 살았었다. 코로나 이후 많은 스윙빠들이 정규모임을 취소 했고 나도 한동안 가지 않았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서울에 스윙빠들은 다시 오픈을 하고 방역수칙에 맞게 운영이 되고 있었다. 한 템포 쉬고 복귀한 스윙에서 새로운 위안을 찾았다. 한두시간 재즈 음악에 나를 맡기면, 아무 생각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과 파트너와의 교감과 나의 몸에 집중하면 된다. 핸드폰 또한 가방에 무심코 넣어두고 체크하지 않는다. 사회적 이목구비 따위는 잊고 춤을 춘다.


2021... 그러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숫자로 보는 테크 헤드헌터의 2020년 회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