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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wow Jul 04. 2024

챔기름 넣고 비볐다

그리운 할머니

“와우야, 이거 한 입 먹어봐 정말 맛있어. “

“지금 배불러서요 안 먹을래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고등학교 때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가야 하는 시간까지 3시간이 둥 떠서 갈 곳이 없었다.

집으로 가기엔 너무 멀어서 버스 타고 왕복으로 오가면 3시간이 끝나버렸기에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소극적인 성격으로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해 친구와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다.

같이 학원을 다니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학원비 부담으로 한 달 만에 관둬버려서 혼자 다녔다.

근데 학원꼭 다니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자격증을 꼭 취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등학교 근처에 외할머니가 사신다는 걸 생각해 냈다.

할머니는 장가를 못 간 노총각인 삼촌 둘과 함께 사셨는데 낮에는 삼촌들이 출근하셔서 할머니 혼자 계셨다. 하지만 나 혼자 할머니댁을 간 적은 없다.

가끔 가게 되더라도 엄마와 함께 갔었기에 할머니랑 끈끈한 할머니와 손녀사이는 아니었다.


“엄마, 나 학원 가기 전까지 시간 비는데 할머니댁에 가 있을까?”

“좋지. 우리 엄마가 정말 좋아할 거야”

엄마는 적극 좋아하셨지만 나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럼 할머니한테 전화로 얘기 좀 해놔 죠. 와우가 간다고”

“알았어”


나는 학교에서 끝나 할머니댁으로 향했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매번 아빠 차가던 길을 걸어서 혼자 가는 건 처음이라 어색했다.

할머니댁의 파란 대문을 들어서니 조용하다.

비교적 거리가 짧은 마당을 지나는데 인기척을 내도 안쪽 깊숙한 방에 계신 할머니는 아직 못 들으신 모양이다.

“할머니~”

우선 할머니를 불렀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면 바로 미닫이 문이 보인다. 할머니가 그 방에 계실 것이다.

항상 생이나 명절에만 할머니댁에 온터라 북적북적 8형제들이 오가던 이곳이 오늘은 허전하고 평온하다.

나는 미닫이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아랫목에 두껍게 깔아져 있는 이불 위에 앉아 TV를 보고 계시다가 문 열리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누가 왔는지를 확인하셨다.

“어~? 복덩이구나!”

할머니는 내 동생 이름을 부르며 활짝 웃으셨다.


의 형제는 언니와 나 그리고 여동생 복덩이. 그리고 남동생 귀남이 이렇게 넷이 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연세가 드셔서 나를 보시면 혹은 언니를 보면 무조건 복덩이를 부르신다. 내 밑 여동생이름 말이다.

엄마가 여동생 낳을 땐 집안 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지 않고 집에서 낳으셨다고 한다.

산통이 올 때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가 서둘러 오셨고 그래서 할머니가 복덩이 내 동생을 받으셨다.

그때의 할머니 마음을 엄마에게 전해 듣은 바로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동네 아기엄마들이 낳는 아기들을 열 번 넘게 받았지만 내 딸이 낳는 아이를 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잘못될까 봐 정말 무서웠다’고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복덩이 낳는 병원비를 아껴 살림에 보태셨다고.

그래서 복덩이는 태어날 때 몇 킬로인지 모른다. 근데 무척 컸다고. 그렇게만 기억한다.


“할머니, 저 와우예요”

“어? 복덩이가 아니고? “

“네, 저 와우예요.”

할머니는 멋쩍게 웃으시며 잘 왔다고 얼른 아랫목에 앉으라고 이불을 들쳐주셨다.


민망하고 어색한 이 시간이 힘들었다.

’ 지금 50살을 바라보는 나였다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 손도 잡아주고 했을 텐데.‘

그때 17살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와우야, 텔레비전 좀 어떻게 해줘라.”

할머니가 말씀하셔서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소리는 음소거 상태. 그런 데다가 화면조정으로 제대로 된 화면이 아니었다. 지지직 그 자체.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번호 선택할 줄을 몰라. 다른 거 켜려다 이렇게 되어버려서 아무것도 못 보고 있었어.”

아쿠 안타까워라. 내 마음은 정말 안타까웠지만 그것과 다르게 퉁명스럽게 할머니에게 묻고 있다.

”몇번 보고 싶으신데요? “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냥 뭐라도 나오게 해 주면 절대 안건들일게.”

얼마나 적적하셨는지 간절하셨다.

나는 KBS채널로 켜드리고 소리도 어느 정도 들리게 키워드렸다.

나에겐 별일 아닌데 할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시면서 손뼉 치셨다. 그 뒤 다음날도 할머니는 KBS채널만 보고 계셨다.


나는 그렇게 3시간을 버티다 학원으로 갔다.


그리고 이틀 뒤 할머니댁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월, 수, 금요일만 학원에 가기 때문에 할머니댁에 매일 가는 건 아니었다.

“와우 왔구나”

기다리셨다는 듯 이번엔 할머니가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시며 반가워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앉으라는 아랫목을 못 본 척 조금 비켜 방 한가운데에 앉아 가방을 열어 책을 꺼내려고 뒤적거렸다.

“밥 먹었니?”

“아뇨, 안 배고파요.”

무뚝뚝한 그때의 나를 후회한다. 할머니께서는 식사 하셨는지 이런 걸 묻고 답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셔서 밥 위에 오이부추김치를 잔뜩 얹어 갖고 들어오셨다.

“와우야, 이거 한 입 먹어봐 정말 맛있어.”

“지금 배불러서요 안 먹을래요.”

투박스러운 그릇에 쟁반도 없이 들고 오신 밥을 할머니는 대충 비벼서 드신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초라한 식사를 드시는 할머니를 쳐다만 봤다.

“오이가 아주 시큼하게 익어서 정말 맛있어”

“네, 드세요. 전 지금 배가 불러서요”


그날도 난 그렇게 살갑지 않은 손녀딸로 3시간 자리를 지키다가 학원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가 밥을 드시는 걸 봤다.

넓은 그릇에 밥을 넣고 오이김치를 수북이 담고는 비벼드신다.

“엄마, 왜 밥을 그렇게 먹어?”

“이게 왜?”

“할머니랑 똑같이 먹잖아”

“우리 엄마가 이렇게 먹어?”

“응, 막 비비시더니 시큼하게 익어서 너무 맛있으시대”

엄마는 깔깔 웃으며 할머니랑 똑같은 모습으로 드신다.

똑같다 아주 많이.


나는 그 뒤로도 월, 수, 금요일만 되면 할머니댁으로 갔다.

조금씩 편해진 나는 할머니댁에서 라면도 끓여 먹었다.

먹는 내 모습을 우두커니 앉아 보시면서 잘 먹는다고 웃으신던 모습이 생생하다.

가끔은 방 한가운데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잤다.

내가 자는 내내 할머니는 아랫목 그 자리 그렇게 앉으셔서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때로는 자는 나를 보시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내가 학원으로 가야 할 시간에 비가 내렸다.

우리 집은 형제도 많지만 잃어버리고 오는 우산도 많았다.

우산이 많은 게 아니고, 없어진 우산이 많았다는 거다.

그래서 나에겐 우산이 없는 날이 많았다.

“와우야 비 오는데 우산 있어?”

“우산 없어도 되어요. 금방 달려가려고요”

“무슨 소리야 비 맞으면 안 되지”

할머니는 할머니가 앉아 있는 바닥의 장판을 걷어 내시더니 거기에 꽁꽁 숨겨둔 지폐들 중에 5천 원을 주셨다.

“가다가 우산 사서 쓰고 가라 비 맞지 말고”

“감사합니다.”

에게 태어나서 3단 우산이 처음 생긴 날이다.

그 돈을 받고 달려 나와 문방구로 가서 3단 우산을 샀기 때문이다.

집으로 달려와 엄마에게 자랑했다.

“엄마 할머니가 돈 주셔서 우산 샀어”

“우리 엄마도 돈 없었을 텐데 왜 주셨대~”

어려운 형편에 우산은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지금 내가 우산을 학교에 두고 오는 아들 녀석에게 지독히 히스테리 부리는 것은 다 그 어려운 형편 귀하던 우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첫 우산은 할머니가 사주신 거다.


어느 날 할머니를 드리려고 용돈을 꺼내 오렌지를 한 봉지 샀다.

이젠 학원에 친구들을 사귀어 할머니댁에 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정하게 ‘할머니 이거 사 왔어요. 까드릴까요.’

했어야 했다. 할머니가 시큼하게 익은 오이김치를 좋아하셨으니 오렌지도 잘 드시겠지 라는 생각으로 사 간 오렌지는 주방 한 구석에 몰래 두기만 했다.

더 생각이 깊었다면 우리 엄마말대로 떡을 사갔어야 했다. 오렌지 사두고 왔다고 엄마한테 말 하니

“우리 엄마 떡 좋아하는데.”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철이 들었더라면

’ 할머니 이젠 월, 수, 금 못 와요. 학원 안 가거든요.‘

했어야 했다.

나는 오렌지만 두고 몰래 나왔다.

그 중요한 말도 못 하고 말이다.


“할머니가 너 삐졌냐고 전화 왔어”

“내가 왜 삐져?”

“네가 어느 날 갑자기 안 온다고”

“내가 가면 뭘 좋다고”


나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뒤로 이모며 삼촌이며 돌아가면 전화가 왔다고 한다.

“와우 삐졌어?”라며.


할머니가 이모건 삼촌이건 전화 걸어 와우가 와서 참 좋았다고 하셨다고 한다.

3개월 동안 정들으셨는지 모르고 난 나만의 생활에 바빴었다.


나는 그 뒤로 할머니댁에 간 적이 없다.


그리고 3년 뒤 할머니는 치매가 오셨다. 그래서 큰삼촌이 삼촌댁으로 모시고 갔다.

큰삼촌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가까웠기에 할머니댁과도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직장생활을 다니던 때라 큰 삼촌댁으로 할머니를 찾아뵈러 갔다.

달달한 빵을 여러 개 사들고 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와우 왔구나”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시고는 반가워하셨다.

나는 할머니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손도 마사지해 드렸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다리라 살살 주물렀더니 더 세게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내가 사가지고 간 빵도 뜯어 입에 조금씩 넣어드렸다.


그렇게 할머니는 6개월 뒤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할머니는 좋은 곳으로 가셨는지 가끔 내 꿈에 나타나신다.

좋은 옷을 입으시고 많은 음식들이 놓인 테이블 앞에 앉으셔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꿈.

나는 오이철만 되면 부추와 버무려 오이부추김치를 만든다.

넓은 그릇에 밥을 담고 오이김치를 수북이 담아 쓱쓱 비벼서 할머니와 엄마가 먹던 그 방식대로 나도 그렇게 먹는다.

할머니, 엄마, 나의 입맛은 똑 닮았다.




오이부추김치




1. 오이는 소금으로 살살 비벼 닦는다. (오이 6개)


2. 부추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부추는 짧게 짧게 칼로 자른다.


3. 오이는 3등분으로 자른 후 잘라진 오이를 2~3등분으로 또 잘라준다.


4. 양념 : 고춧가루 4스푼, 멸치액젓 4스푼, 설탕 2스푼, 생강가루 1 티스푼, 마늘 2스푼


5. 잘라진 오이와 부추를 양념을 섞어 통에 잘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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