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싸서 소풍처럼 따라다니기
“내일은 서울에 있는 대학 ㅇㅇ대학으로 가면 되고?”
“네, 3시 40분까지에요. 주소 보내줘요?”
“아냐 엄마가 며칠 동안 내비게이션 켜고 공부 좀 했어.”
딸은 무용과 연기를 실기시험으로 보는 과에 지원했고 새벽까지 연습하면서 내공을 쌓고 있다.
나는 운전면허 따고 운전한 지 8년이 됐다.
최근엔 새 차도 뽑았다.
하지만 여전히 초보. 내가 다니는 마트, 성당, 아이들 학교, 시장.. 외에는 갈 수가 없다.
큰 딸이 자취하는 곳까지 급하게 갈 때면 내비게이션에는 30분 후 도착이라고 나오지만 50분이 걸린다.
그런 나에게 둘째 딸 수시면접 보러 가는 날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남편이 휴가를 쓸 수 없도록 바쁘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교통도 있지만 새벽부터 연습장 가서 노래와 무용을 연습하고 온 딸을 지하철, 버스를 이용해 갈아입을 많은 짐들까지 들고 이동할 순 없다.
하물며 대기시간도 길다.
내가 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모의 주행을 해 본다.
‘음.. 거기 지나서 여기 지나서 서울로 들어서면 대교를 지나야 목적지를 도착하는 경우가 많구나. 오케이.’
ㅇㅇ대학으로 가던 날 아침
나는 김밥을 싸고 딸아이는 조금이라도 연습하고 온다며 새벽부터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김밥을 싸면서도 ’ 운전 잘할 수 있겠지?‘ 이 생각뿐.
아이가 연습을 마치고 집에 왔고 나는 김밥을 다 쌌다.
이제 출발해서 ㅇㅇ대학 근처 샵을 들러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해야 한다. 예약도 미리 했다.
우선 출발이다. 무조건 지금 출발.
차에 타고 보조석에 딸아이가 자연스레 타길래 사장님 자리인 뒷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매일 보조석에 앉아 학원을 갔던 아이가 의아해하며 묻자.
“응, 오늘 짐이 좀 많아서 보조석에 두려고”
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뒷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자면서 가”
그렇게 말하니 순순히 뒷자리에 앉는 둘째 딸은 나와 참 잘 맞는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배꼽 빠지게 웃기는 기본이고 말끝마다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술술 나온다.
하지만 지금 그걸 할 수 없기에 뒷자리에 앉으라 했다.
나는 출발했다.
되도록이면 아이에게 내가 지금 긴장했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자연스레 음악도 켰다.
조용히 울려 퍼지는 변진섭오빠의 숙녀에게라는 노래는 진정되지 않는 나의 심장을 진정시키기에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뭐를 잘못 눌렀는지 그 한곡만이 반복재생 되고 있었고 고속도로에 접어들고서야 그걸 알았다는 건 난 이미 한참 전부터 그 노래를 듣지도 못하고 긴장하고 있었다는 첫 번째 신호였다.
지금 노래를 바꿀 수 없다. 난 여전히 80킬로미터 속도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길이 좀 막혀야 천천히 갈 텐데 길이 뻥뻥 뚫린다. 평일 낮 12 시기 때문이다. 그냥 그대로 쭈욱 변진섭 오빠 노래 한 곡으로 달린다.
그러다 갑자기 딸이 말을 건다.
“엄마, 많이 긴장했어요?”
“아니? 엄마 편하게 운전하고 있는데?”
딸이 보기에 내가 긴장한 걸로 보이나? 어쩌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자.
“딸, 잠 좀 자지 피곤할 텐데. 이따가 시험장에 들어갈 땐 머리는 묶을 거야? 푸르고 들어갈 거야?”
“엄마…”
“왜?”
나는 대답은 안 하고 엄마라고 부르는 딸이 이상해서 물었다.
“엄마, 지금 샵부터 갈 거잖아요. 예약했고요.”
아차차. 나의 긴장했다는 증거 두 번째를 흘리고 말았다. 실수. 아주 큰 실수.
청담대교. 청담대교. 나는 머릿속에 청담대교만 읊었다.
왜냐하면 내비게이션으로 공부했을 때 청담대교만 넘어가면 우리가 가려고 하는 대학교가 나온다.
여차저차 이리 껴들고 저리 껴들고 나를 끼게 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연신하고는 청담대교에 들어섰을 때,
나는 휴..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5분 정도 지났을까 목적지 대학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랬더니 뒷자리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꼬리까지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 한 마리 같았어요.”
“누가?”
“운전하던 엄마요”
난 여유 있게 했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였다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딸아이는 머리 하러 샵도 다녀오고 실기 시험도 무사히 잘 마치고 나왔다.
3시간을 대기하다가 실기를 마치고 나온 딸은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을 보며 저녁이 다 되어버렸다며 지친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난.
다시 되돌아가는 길도 막막하고 어둡기까지 하다.
출발해 본다. 다시 집으로! 고고.!
이쪽으로 가라고? 아 이쪽으로 우회전하라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가는데 자꾸 경로를 이탈했다고 한다.
집에서 대학교로 가는 내비게이션만 공부하고 집으로 가는 법은 공부하지 않았다.
갔던 길로 그대로 알려줄지 알았는데 청담대교부터 나오지 않고 웬 올림픽대교. 난 지금 어디?
중간에 뚝섬공원 주차장에 들어갔을 땐 깜깜한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내가 헛되이 낮잠 자던 그 멀쩡한 태양을 지금 조금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런 소망은 무섭도록 깜깜한 도로로 답변을 주셨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들과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 모두 나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내비게이션만을 의지해서 운전할 나를 배려하는 것이다.
2시간이 넘도록 달려 나는 집에 도착했다.
온몸에서 몸살이 오는 것과 같이 쑤시고 결렸다.
“저녁 먹어야지”
“아냐 아까 싸가지고 간 김밥 먹었더니 배불러 안 먹을래. 그리고 난 씻고 잘래.”
난 그날 이른 저녁부터 잠을 청했다.
꿈에선 캄캄한 도로를 달리던 내가 달리고 또 달려도 어둠으로 가득 찼던 길을 되뇌고 또 되뇌고 있었다.
다음날,
“엄마, 나 수시 면접 따라가 줘서 고마워요. 엄마 많이 힘들죠? “
“엄마는 소풍 같은데. 그래서 너 면접 갈 때마다 김밥 싸는 거야. 소풍 같아서. 너무 즐거워. 그러니 엄마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만 해.”
딸이 세심히 엄마의 마음을 살피고 고마워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아기 강아지. 아기 참새. 아기 고양이만 보면 꼭 우리 딸같이 귀여운 마음이 든다.
그런 귀여운 강아지가 오늘로 수시 3개가 탈락해서 우울한 날.
부디 잘 되라고 좋은 말 한마디 더 해줘 본다.
[우리 귀여운 아기 참새, 알아보는 귀한 분 꼭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