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딩이의 먹성
“언니, 보쌈 좋아해? 족발 좋아해?”
“난 부드러운 보쌈이 좋던데. 족발은 잘 안 먹게 돼”
“우리 아들은.. 어쩌고 저쩌고..”
동생이 전화 너머로 보쌈을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동생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응 응..”
대답은 무의식으로 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자동차 시동을 걸고 있었다.
코스트코로 달려간 것이다.
삼겹살이 한입 크기로 되어 착착착 썰어주는 정육점과 다르게 코스트코는 원래 이 고기는 네모 반듯해요..라는 듯..
직사각형의 큰 고깃덩어리로 정육 되어있다.
그 무게는 무려 5kg.
나는 6월 연휴를 대비해 그 삼겹살을 내 카트에 거뜬히 담아 집으로 달려왔다.
도마 위에 올려진 5kg 삼겹살은 무뎌진 내 칼에 의해 썰린다. 뜯기는 걸지도..
5kg의 삼겹살은 그렇게 길쭉하게 잘려 10조각이 나온다.
나는 매일 쌀을 넣어 밥을 지어주는 압력밥솥을 소중히 닦아 오늘은 고기맛을 보게 해 주기로 한다.
한 덩이, 두덩이.. 압력밥솥에 두 덩이쯤 넣고 물을 자작하게 부었다.
내가 만든 된장까지 크게 한 수저 넣으니 이게 과연 맛이 나겠어?라는 의심도 해 본다.
남들이 넣으면 좋다고 하는 생강가루도 톡톡 넣어본다.
지난가을 생강을 씻어 껍질을 벗겨 얇게 저며 썬 후 말려서 가루로 낸 이 생강가루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요리를 못할 땐 그게 뭘 중요하다고..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느 날 그것이 들어간 요리가 독특한 맛을 내며 맛있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여기에 양파 크게 썰고, 대파도 넣고.. 뭐 많이들 이것저것 넣어라..라고 하던데..
난 된장과 생강 단 두 가지 만을 넣어 끓여냈다.
압력밥솥의 그 특유의 짤랑 짤랑이 1분가량 울려댔을 때 내 귀도 먹먹해진다.
그럼 익었든지 말든지 우선 내 귀를 보호하고자 가스불을 끄고 압력밥솥은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 단 3초도 고민하지 않는다.
산책 겸 마트 구경이 가장 좋은 나의 시간 때우기.
아파트 후문으로 나가면 마트가 있다. 그곳을 한 바퀴 휙 둘러보고 집에 오면 20분은 족히 지나가 있고, 내 만보기에는 1500걸음이라는 소중한 숫자가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 압력밥솥이 뜸 들여지는 20분을 묵묵히 기다려야 비로소 그 고깃덩어리들 속까지 모두 익게 되는 것이다.
성질 급한 내가 미리 뚜껑을 열었다가는 압력밥솥의 열기는 모두 빠져나가 다시 가스불을 켜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 불상사를 막기 위해 나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20분 만보기 숫자를 올린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주 조용해진 압력밥솥을 마주하여 뚜껑을 연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 내 시선을 가려 삼겹살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건 내 입바람 하나도 끝을 내준다.
후~~
된장냄새와 고기냄새로 내 코를 자극할 땐 얼른 고기를 썰어 보겠다는 본능만이 남아 도마를 꺼내고 칼을 꺼낸다.
집게로 고기를 건져 내 보니 분명 다 익었다는 게 보였다.
‘음~ 잘 됐다~‘
착착착 썰어내는 삼겹살.. 아니 이젠 보쌈고기는 그야말로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지.
하지만 집에 아무도 없다.
모두 회사 가고 학교 가고 바쁘게 움지기는 평일 낮시간이다.
’ 이거 저녁쯔음 식구들 올 때 했어야 했던 거네.?‘
맞다. 하지만 난 이 고요한 우리 집에서 남몰래 먹듯 보쌈을 삶아 썰어내고 있는 것이다.
보쌈의 단짝은 겉절이요.
나는 겉절이 부자.
최근 겉절이만 3번을 했다.
배추가 싸면 두 포기 사다 하고.
3일 뒤에 더 싸면 두 포기 또 사다 했다. 그런 식으로 겉절이 풍년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겉절이까지 꺼내 앞접시에 예쁘고 적당한 크기의 겉절이 하나를 깔고 보쌈 한 점을 올려 둘둘 말아 내 입에 넣었다.
“음~ 정말 맛있다!”
나는 한 점을 맛보기로 보고 나머지 보쌈은 글라스락에 예쁘게 담아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리고는 주방 정리를 하고 동생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왔다.
그 사이 우리 집 중학생 아들이 집에 와 있었다.
“요한이 왔어?”
“네~”
“배고프지? 급식 제대로 안 먹었을 거 아냐”
“아 배불러요”
“오늘은 왜 배불러? “
“냉장고에 보쌈 있길래 먹었어요”
나는 서둘러 냉장고로 달려가 내 글라스락을 시선에서 찾았다.
없다.
고개를 돌려 싱크대를 보니 빈 통만이 기름기가 굳은 채로 그 그릇이 보쌈그릇이라는 것만을 보여주며 내동댕이쳐있다.
“그 많은 걸 다 먹었어?”
“안 돼요?”
“아니, 돼. 잘했어. “
나는 다른 식구들이 오면 먹을 삼겹살을 다시 압력밥솥에 넣고 된장을 넣고 생강가루를 넣고. 그 귀 따가운 짤랑 잘랑을 듣고 뜸 들이는 20분을 마트로 빙빙 돌아야 하는 그 과정을 반복하고는 보쌈을 원래 양만큼 만들어냈다.
다른 가족들이 보쌈으로 식사를 할 때 우리 집 아들은 언제 내가 뭘 먹었냐는 듯 식탁에 앉아 식사를 했다.
잘 먹는 시기 정말 좋다.
그래서 쑥쑥 마음도 몸도 잘 자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