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먹었는데 맛이 없다?

by 와우wow

주말이 왔다.

자식이 셋이 있지만 첫째 딸은 대학생이라 아르바이트하느라 바쁘고, 막내아들은 친구들 만나 놀기 바빠서 주말에 얼굴 보기 힘들다.

둘째 딸만이, 주말에 가끔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가거나 아파트 단지 안에 사는 단짝 친구를 만날뿐 보통 엄마, 아빠랑 논다.

이번 해에 스무 살로 재수생이다.

평일 내내 학원 다니다가 주말에만 쉬는데 중요한 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아이다.

뚱뚱해서가 아니라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대학을 진학하고 싶어 하기에 다이어트가 필수다.

그렇다면 주말 내내 엄마, 아빠랑 놀 땐 어떻게 하느냐.

엄마, 아빠가 배가 고파지면 눈치를 본다.


“눈치 보지 마세요.”

라고 딸은 말하지만 그렇다고 딸과 함께 다니면서 딸만 두고 엄마, 아빠만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편과 나는 주말 아침만 되면 자동차를 타고 나간다.

여기저기 드라이브나 카페투어를 한다.

가끔 스쿼시를 치러 가기도 하지만 보통 카페 맛집을 찾아다닌다.

그런 재밌는 과정을 따라가서 즐기고 싶어 하는 게 둘째 딸이다.


같이 다니려고 하고 즐기는 모습이 예쁘고 귀엽다.

하지만, 분명 눈치 보지 말라고 했던 딸이 돌변할 땐 정작 엄마, 아빠가 카페에서 빵이라도 하나 샀을 때.

정말 참다 참다 배고파서 밥을 먹으러 갈 때.

뭔가 토라져있다.

왜냐면 맛있는 거 먹는 걸 참 좋아하는 딸이기 때문이다.


그 주말도 우리는 그래서 멀리 드라이브를 가자하고 청주까지 갔다.

청주에 조경이 참 예쁘다는 카페를 아침 9시에 출발해서 11시에 도착했다.

수국이 동글동글 얼마나 예쁘게 펴 있던지, 소나무는 또 얼마나 많이도 웅장하게 심어져 있던지..

이 카페 주인 커피 맛보다 조경을 더 사랑하는 사람 아닐까?


20년 넘게 소나무를 키워왔다는 멘트를 광고처럼 크게 보여주고 있어서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이며 이해했다.


우리는 엄청 큰 베이커리카페답게 넓은 빵코너에서 잠시 잠깐 행복했다.

딸의 눈치를 볼 생각도 못하고.


커피도 사고 소금빵에 크림치즈가 촉촉하게 발라져서는 토마토와 루꼴라가 사이사이 박혀 정말 맛있는 빵들을 골랐다.

멋진 뷰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와 빵을 즐기려던 그 시간.

딸은 친밀도가 높아 바짝 붙어 앉은 거리만큼이나 반대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딸, 이 빵은 홍국쌀로 만든 빵 이래. 밀가루보다 낫지 않을까? “

“굳이요? 안 먹을래요.”


남편과 나는 커피의 진함을 느끼기도 전에 부랴부랴 마시고 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 우리 쌈밥집 갈까? 거긴 쌈채소가 무한리필이니깐 너에게 좋을 것 같아 “

많이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찾아낸 나의 맛집을 말하고는 딸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오? 좋은데요? 거기 갈래요. 난 거기 나오는 생선이랑 쌈채소만 먹을래요.”


‘휴…..’ 통과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2시간을 걸려 인천으로 돌아와 자주 가던 쌈밥집으로 갔다.

왔다 갔다 시간이 많이 지나 오후 3시였고, 정말 배고팠다.

하지만 쌈밥집은 우리의 속사정을 알아주지 않은 채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라는 팻말로 우리를 막아섰다.


“어쩌지? 앞으로 2시간 뒤에 다시 문을 연대.”

나의 걱정스러운 표정만큼이나 딸은 실망에 가득 찬 눈으로 배고픔을 호소했다.

“우리 집으로 가서 쌈채소랑 수육 먹을까?”

“엄마 힘든 거 아니에요? 그거 다 언제 준비해요?”

“걱정 마 30분 만에 다 준비해서 먹게 해 줄게”

“좋아요.”

우리 딸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편은 뒤돌아 주차장으로 차를 빼러 달려갔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배가 고픈 것이다.


나는 집에 도착해 옷도 갈아입을 시간 없이 고기를 삶고, 숙주를 데치고, 무쌈을 꺼냈다.


고기를 삶을 때는 소금을 하나도 넣지 않고 삶고, 숙주를 무칠 땐 소금기 거의 없이 심심하게 무쳐낸다.

오로지 무쌈의 단짠으로 고기와 숙주를 싸서 먹어야 하는 것이다.

다이어트란 당과 염분을 빼야만 속도를 내는 것이기에.

강제로 남편과 나도 다이어트식으로 밥을 먹어야만 했다.


우리 셋은 음식이 모두 차려지자마자 무쌈을 활짝 펼치고, 숙주를 올리고 얇게 썰어진 기름기 하나 없는 돼지사태수육을 올려 우걱우걱 먹었다.

그 정막함에서 ”맛있다 “라는 세 글자만이 가끔 오갈 뿐. 우리는 집중했다.

한참 먹고 있을 때, 내가 그 정막함을 깼다.

“아우 맛없어.”

“뭐가 갑자기 맛이 없대요? “

나는 맛이 없다는 생각이 식사 15분쯤 내 뇌에서 깨우쳐 소리쳤다.


“자 봐봐, 숙주 맛없지. 고기 맛없지. 무슨 새우젓 장 하나 없이 이게 무슨 맛이야.”

“조금 전엔 맛있다고 그랬잖아요. 우리 모두 한결같이.”

“어? 진짜네?”

“엄마 그건 배불러져서 그런 거예요.”

그렇다. 방금까지 배가 고파 허덕일 땐 소금 간 하나 없던 고기도 심심한 숙주나물도 모두 맛있었고 감칠맛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순대집에서 순대와 곁들여 나오는 퍽퍽한 삶은 간만큼이나 맛이 없는 저 고기를 나는 방금 맛있게 먹었었다.

“엄마 배부르면 그만 드세요. 왜냐면 난 여전히 배고프거든요. 고기 모자라요. “

“하하하하하”

딸아이의 말에 난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짜 내가 배가 부른가 하고 배를 쓰다듬어봤다.


[아, 맛없는 음식도 맛있을 땐, 배고픈 것이고… 그게 맛이 없다 느껴지면 배부른 것이다]

반백 살 때쯤 살면서 뻔한 것도 새롭게 느껴지는 그런 소소하게 행복한 그런 날이었다.




딸, 우리 주말에 이제 따로 놀까?

싫어요. 나 엄마랑 놀 거예요~!

어.. 어.. 그래.. 그럼 좋…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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