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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wow Jun 22. 2024

감자샐러드 챌린지

감자의 계절

“와우야, 아기 낳으러 가기 전에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말해봐 얼른.”

“됐어, 배가 계속 진통이 와서 못 먹을 것 같아.”

“엄마가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말해주면 안 돼?”

“그럼 감자나 쪄줘 봐.”


18년 전 둘째를 이맘때 낳았다.

그날은 예정일이었다. 아침부터 살살 배가 아프고 기분이 이상하다.

설마 예정일에 낳겠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또 의심할 수가 없었다.

첫째를 예정일에 낳았다. 그렇다고 둘째까지 예정일에 낳겠어?

큰 아이를 준비시키고 친정으로 갔다.

가진통이겠지 하며 좀 움직이려고 친정에 온 것도 있고, 혹시나 진짜 진통이면 큰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병원으로 바로 가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진통은 생각보다 빨리 오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걱정하실까 봐 혼자서 몰래 시간을 체크했다.

불규칙하던 시간 간격이 규칙적이 되었을 땐 이게 진짜인가? 아이를 만나는 날이 온 것인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왈칵 났다.

큰 딸과 놀아주다가 엄마에게로 가서 벌벌 떨며 말했다.

“엄마, 나 아이 낳을 것 같아.”

“왜? 배가 많이 아파?”

“규칙적으로 배가 아프더라고. 그리고 한번 낳아봐서 안무서울 줄 알았는데 다 해본 거라 더 무서워.”

“어떻게 하지? 그럼 병원 가야 하나?”

엄마는 나보다 더 불안한 눈빛으로 걱정스럽게 말씀하셨다.

“지금 남편 회사일 대충 끝내고 이쪽으로 오겠대. “

“와우야, 아기 낳으러 가기 전에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말해봐 얼른.”

“됐어, 배가 계속 진통이 와서 못 먹을 것 같아.”

“엄마가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말해주면 안 돼?”

순간 머릿속에 먹을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규칙적인 진통으로 아이 낳을 생각에 복잡한데 이 와중에 먹을 것 생각이라니.

눈을 굴려 부엌 쪽을 보니 엄마가 사 온 지 얼마 안 된 감자 한 박스가 보인다.

감자박스엔 감자 두 개의 그림 실물처럼 보이고 박스에 흙이 묻어있는 걸 보니 왠지 갓캐온 감자 느낌이랄까?

“그럼 감자나 쪄줘 봐.”


나는 감자나 간단히 쪄주면 포슬포슬을 느끼며 먹어보자 생각했다. 실제로 먹고싶지는 않았다. 엄마가 뭐라도 해주고싶은 것 같아 아무거나 말했다.

엄마는 15분이면 된다고 부랴부랴 부엌으로 달려가 감자를 씻었지만 난 15분을 견디지 못했다.

남편에게 빨리 오라 전화를 걸고 큰 딸은 엄마가 당황한 게 보였는지 울기시작했다.

“괜찮아, 엄마 금방 갔다가 아기 안고 올게 할미랑, 할아버지랑 같이 있어.”

한 손에는 올챙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미미인형을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서서 엄마 이야기를 듣던 큰 딸이 알아들었다는 듯 끄덕였다.


곧바로 남편이 친정집 대문 앞까지 도착해서 나는 엄마, 아빠에게 큰딸을 잘 부탁한다하고 남편과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날 난 둘째 딸을 낳았다. 예정일이었다.

지금 한창 대학입시로 매번 다이어트에 힘쓰는 그 둘째 딸이다.

너 같은 딸 없었음 어쩔뻔했냐…라며 어화둥둥 키워내고 있다.

그 후 4년뒤 나는 셋째를 또 예정일에 낳았다.

예정일에만 낳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문제는 우리 엄마는 그만큼 나이들었다..

매 해 이맘때가 되면 전화가 온다.

“와우야, 감자가 나왔어. 햇감자. 너 둘째 낳으러 갈 때 내가 감자 쪄 놨는데 너 못 먹고 갔잖아. 내가 그날 그 찐 감자를 보면서 얼마나 속상했다고.”

그랬을 것 같다고 충분히 생각이 든다.

방금 옆에서 배 불룩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던 딸이 생살을 찢어 아이를 낳겠다고 병원으로 향했을 때. 식어버린 감자를 보고 먹이지도 못한 그 마음은 그 후로 10년은 넘게 이해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가 가도 그 똑같은 멘트로 시작된 그 찐 감자 이야기는 18년째 이어오기 때문이다.

내가 딱 17번 들었다.

작년이다.

“엄마, 그 찐 감자 레퍼토리 또 말해?”

“내가 자주 하긴 했지?”

“그만해 나 이제 찐 감자 싫어.”

뻥이다. 진짜. 방금까지 그 찐 감자 먹었으면서. 근데 그 이야기는 진짜 듣기 싫다. 엄마의 같은 이야기 반복은 그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못되쳐먹었다.

나도 나이가 먹으면 그렇게 되겠지. 안 하려고 노력할 거야. 다짐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먼저 감자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감자 10kg 샀어.”

“잘 샀다. 쪄먹어라. 너.. 좋아하잖아.”

다행이다 이번엔 좋아하잖아로 끝났다. 엄마도 많이 노력한다.

그래서 다시 감자 요리 사진을 보냈다.

“엄마, 이거 감자샐러드야. 요즘 맘카페에서 엄청 유행이야.”

“무슨 카페? 커피 파는데야?”

“아냐 그냥 인터넷에 사진 공유하고 자랑하는데야. “

“사람들이 그거 많이 해 먹는다는 거구나.”

“응 맞아.”

“뭐 넣고 만든 거야?”



감자샐러드 레시피



찐 감자 3개를 포크 등으로 으깬다.

오이 한 개를 어슷 썰어 소금에 20분 절인다.

절인 오이는 물로 씻어 물기를 꾹 짠다.

크래미 4개를 결대로 뜯어 준비한다.

삶은 계란 두 개를 포크 등으로 으깬다.

마요네즈 3스푼

머스터드소스 2스푼을 넣고 모두 섞어준다.


구운 식빵에 치즈를 넣고 감자샐러드를 듬뿍 올리고 위에 오이를 놓는다. 식빵을 맨 위에 덮어 완성한다.


요즘 맘카페를 보니 감자샐러드 챌린지를 하는 듯 샐러드사진이 엄청 올라온다.

올라온 사진을 볼 때마다 집에서 만드는 감자샐러드가 조금씩 다르긴 하다.

하지만 보면 또 먹고 싶어 지는 것이 내가 감자 샐러드를 좋아하나? 감자 좋아하나? 의심하다.


아무튼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가 되어도 엄마의 식은 찐 감자 이야기는 두고두고 떠오를 것 같다.

그 듣고 또 들어서 듣기 싫어졌던 그 말조차 미치도록 그리울 때도 있겠지.

난 오늘도 엄마가 그 식은 감자를 잊게 하도록 맛있는 감자요리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본다.


“엄마, 밥 먹었어? 밥맛 없으면 샌드위치 만들어봐 “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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