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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Nov 14. 2024

미안함을 참고 얻은 가을 한 자락

2024.9.13

둘째가 몇 주째 항생제를 먹고 기침이 나았다 말았다 하더니 급기야 오늘 폐렴기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수액을 맞고 항생제와 해열제 기타등등의 한움큼의 약봉지와 함께 세시간 반만에 병원에서 돌아왔다.


나는 여느 가을날 같지 않은 포근한 이 날이 너무 고와서, 이제는 울긋불긋해지는 가을의 색이 너무 좋아서 오늘은 꼭 퇴근 후에 산책을 해야지 하던 생각을 하루 이틀 어느새 일주일을 미루며 둘째를 돌보다가 오늘 기왕 엄마가 나를 대신해 둘째를 병원에 데려가 주신 것에 대해 눈 꼭 감고 오후 시간도 둘째를 봐달라고 부탁했고 그 시간에 나는 기필코 오늘은 가을을 구경해보자. 나를 위한 시간도 가져보자. 엄마의 수고에 대한 미안함을 부러 참으며 한시간 반만 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가을이다.



이런 가을이단 말이다.  포근한 바람, 맑고 높은 하늘, 파랗고 붉고 노란 모든 천연의 색들, 이런 예쁜 가을을 정말 구경하고 싶었다.


가을을 구경하고 있으니 생각이란걸 하게 되고 생각을 하게 되니 그저 내가 살아가기 바빴던 나에게 생각도 하던 나로 잠시 트랜스폼 된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결혼 전 나는 퇴근 후 많은 시간을 무료하게 느꼈었다. 꽤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퇴근 후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잠자기에는 무척 이른 시간에 이미 잠에 빠져 들어 지금 생각해보면 꽤 아까운 시간을 탕진했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신출내기 사회인이라 그랬는지 그 잠이 당연했고 어찌할 수 없는 약같은 것이였는데 지금 내 시간이 없는 시점에서 그 때를 보니 그게 또 왜그리 어리석은 낭비 같은지..


지금 나는 또 시간의 주도권이 없다. 주말부부이기도 하고 아직은 아이들에게 나의 손길이 필요할 때인 것 같아 막내를 픽업해오고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나머지 공부를 조금 봐주고나면 어느새 밤은 불쑥 와 있고 나는 매일 그렇게 평범하고 단순한 일과를 살아가고 있다.


인생이란 어찌나 웃긴 것인지. 정녕 사람들은 아니 나는 그 호시절만의 아름다움을 깊이 또는 지혜롭게 누릴 수 없고 언제나 가지지 못한 것을 조금씩은 그리워하며 다른 욕망을 조금씩 저축하기도 또 참아내기도 한다.  


아무튼 잠시 잠깐 별뤄온 그 한 시간 반 만의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가을과 깊이 인사하고 또 가을을 담아두었다. 또 평범하고 단순한 그러다 아이가 아프거나 작은 어그러짐이라도 있으면 때로는 버겁기까지 한 그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낼 힘을 나는 얻었다.  


나무를 보고 나뭇잎 색을 보고 길을 보고 하늘을 보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제목이 떠오르고 또 하나님이 떠오른다.  사실 깊이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실제하심을 나는 자연을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기도 하는데 참으로 어느때건 안 예쁜 자연의 시절은 없는 것 같다. 내 인생도 하나님 빚으시는 자연 한조각이라면 어느때이건 안 예쁜 때는 없으련만 나도 부디 하나님 보시기에 한 자락 아름다움을 간직한 인생 되었으면 그렇게 모든 시절을 살아갔으면 그랬었다.


이제 이틀후면 기온이 6도 이상 떨어진단다. 한번만 더 같은 시간을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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