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이 이야기
코로나가 정점에 이르던 올해 초, 그래도 학교는 3월 개학에 모든 학사 일정을 그대로 추진했다. 하지만 각 반마다 매일 코로나 환자가 5-8명씩 나오던 시기. 급기야 담임 선생님들도 코로나에 차례대로 걸려 3월 한 달 동안 우리 학교 교사의 약 2/3가 확진되었다.
나는 올해 담임이 아닌 전담 교사이지만 3월은 시간제 강사도 구할 수 없어 각 반 담임의 보결 수업을 들어가느라 한 달 동안 내 수업은 못하고 코로나로 병가 중이신 담임 선생님들의 대체 교사가 되었다.
3월 둘째 주, 그날도 어김없이 보결 수업으로 오전 3시간은 4학년에 보결을 들어가고, 오후 2시간은 3학년에 보결 수업을 들어가게 되었다.
갑자기 안내받은 보결이라 나는 급히 미술활동과 발표활동 자료를 프린트해서 헐레벌떡 들어갔다.
보통 담임이 계획한 보결은 대체 교사가 수업할 자료를 담임이 준비해 놓지만 갑자기 담임이 결근하게 될 경우 대체로 보결 교사가 자기만의 활동을 준비해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3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미술 활동 자료를 나눠주며 활동 안내를 시작하려는 찰나,
맨 앞에 앉은 승현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 저 선생님은 또 누구야? 미술 왜 하는데? 체육 해야 하는데? "
나는 담임 선생님께서 일이 있으셔서 출근하지 못하셨다며 원래 시간표가 체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시간은 선생님이 준비한 미술 활동을 하자고 전체 학생들에게 안내하였다.
그러자 승현이는
" 체육인데.. 체육인데.. "라고 말하며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 그만. 활동하자. "라고 말하며 자료를 서둘러 나눠주었다.
활동 안내가 끝나고 다른 학생들이 활동에 착수한 후에는 승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맨 앞에 앉아서 나만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승현이와 이야기를 하려고
" 너 이름이 뭐니? "
" 오늘 체육이 들었나 보구나. 무척 하고 싶었나 보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안 오셔서 나는 체육인 줄 몰랐고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면 선생님이 준비한 활동을 하는 거니까 체육은 담임 선생님과 함께 하고 미술 활동을 해 보자."라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도 내가 나눠준 미술 자료를 가위로 쫙쫙 잘라 구겨버렸다.
나는 슬슬 어이가 없기 시작했다.
교사 생활 중 내가 만났던 폭탄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며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만해. 다시 나눠줄 테니 활동하면 좋겠어."라고 최대한 간단하게, 그리고 앞서 다정하게 설명하려던 것과는 다른 어조로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다시 활동지를 나눠주고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순시하며 다른 학생들에게 내 관심을 돌렸다. 그러면서 흘끔 승현이를 보니 내가 나눠준 자료를 다시 자르고 구겨서 바닥에 버리더니 이번에는 가위로 책상을 치기 시작했다.
" 딱 딱 딱 딱 딱 딱 딱.. "
그 소리가 조용히 미술활동을 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었기에 나는 다시 승현이 쪽으로 가서
단조롭고 간결한 어조로
" 그만해. 친구들이 시끄러워. 가위로 책상 내려치지 마!"라고 말했다.
승현이는 나를 빤히 무표정으로 보면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가위로 내려쳤다.
연거푸 그만하라는 소리를 5번쯤 했지만 가위로 내려치기는 지속되었다.
나는 점점 더 황당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같은 행동을 하며 온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학생이 떠오르며 이런 폭탄을 내가 오늘 또 밟았나 싶었다.
" 그만해.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자. 그만해. 시끄러워. 너 이름이 뭐니?"
등등의 말을 나는 하고, 승현이는 들은 척 만 척 가위 내려치기를 계속했다.
나와 승현이의 기싸움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학생 몇이 나에게 말했다.
" 또 시작이네. 선생님. 그냥 두세요. 2학년 때도 쟤 저랬어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해요."
나는 그 말을 한 학생을 복도로 불러내어 승현이의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승현이가 비슷한 행동을 2학년 때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승현이의 이름을 알게 된 후 고작 일주일이지만 3학년 생활을 한 교실 환경에 자기소개서를 적어놓은 것을 보니 승현이는 글씨도 예쁘고, 글자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표현도 잘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능이 모지라거나 특수한 교육이 필요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승현이 행동을 멈추게 하려고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승현이는 너는 말해라. 나는 친다라고 말하듯 정말로 어떤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고 나를 노려보며 가위로 책상을 계속해서 내리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러 갈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내가 밥 먹을 준비를 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다른 아이들이 줄을 서는 순간에도, 아이들을 급식실에 다 데려다주고 승현이를 데리러 올라오는 순간에도 승현이는 책상을 내리치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과 급식실에 가고 없는 순간에도 조용한 교실에서 정말로 혼자 계속 내려치고 있었다.ㅠㅠㅠ ㅠ세상에나!)
나는 승현이가 밥을 먹지 않은 것이 걱정이 되어 다른 아이들을 급실실로 데려다주고 나서 다시 올라와 승현이에게 다시 한번 멈추고 밥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승현이는 계속 계속 내려치고 있었다. 말을 하는 나를 여전히 놀리듯 쳐다보며 쉬지 않고 '딱딱딱딱딱딱딱딱.....'
나는 식사를 마치고 오신 옆 반 학년 부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옆 반 부장님이 오셨고 승현이에게 말을 걸었는데도 계속 내려치고 있었다. 부장님은 코로나로 병가 중인, 심지어 담임도 이 아이를 아직 잘 알지 못하실 텐데 담임에게 전화를 걸어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 모든 순간에도 승현이는 가위로 책상을 내려치고 있었다. 학년 부장님은 어머니와 통화하셨고 어머님은 마치 이런 일이 꽤 있어왔다는 듯이 승현이의 이런 행동에 놀라거나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학년 부장님은 어머님과 통화 연결된 전화를 승현이 귀에 대어주셨고 승현이는 그 전화기 소리를 듣고 가위 내려치기를 멈추었다. 학년 부장님은 그 모든 순간에도 승현이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 어머님이 집에 와도 된다는데 집에 갈래?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할래?"
나도 물론 경험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단조롭게 승현이에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저런 행동을 한 학생에게까지 부장님이 다정하게 선택의 여지를 주며 의견을 묻고 있는 상황이 속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그렇게 한 바탕 소란으로 승현이도 나도 결국 점심을 먹지 못하고, 나는 다시 그 반의 오후 수업을 해야 했다. 나는 승현이에게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물으며 밥을 먹으러 가겠냐고 물었지만 승현이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승현이에게 오늘 하루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고 다른 학생들과 나는 나머지 활동을 이어 갔다. 승현이는 그렇게 장작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한 번도 쉬지 않고 가위를 내리친 다음에야 멈춰서는 이번에는 교실 밖을 아무런 허락을 구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내가 뒤따라 갔더니 교실 복도를 배회하기도 하고 화장실 앞을 서성 거리기도 했다. 나는 교실로 돌아와서 활동을 해보자고 말했지만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교실 밖을 배회했다.
나는 교실에 있는 학생들을 살펴봐야 했으므로 다시 학년 부장님께 이 상황을 말씀드렸고, 학년 부장님은 교내 상담 선생님을 불러 승현이를 상담실에 데려가게 했다.
상담 선생님이 승현이를 데리고 나니 나는 그제야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에 힘이 풀리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보결 들어와서 또 저런 학생을 만나다니. 그것도 3월 둘째 주에 말이다. 내가 말을 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저러나 싶고..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저렇게까지 힘들게 자기의 기분 나쁨을 최선을 다해서 드러내나 싶었다.
인간이 물으면 답하고 다정함으로 시작하면 다정함으로 맺는 것이 상식인데 왜 요즘에는 이런 기본적인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이 많을까.. 쟤는 무슨 화가 그리 나서 나를 이리 대할까? 나는 이런 학생들을 내가 다시 만날 때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직도 정말 알지 못해 암담한 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교사를, 학생 모두를 방해하는 행동을 속수무책으로 해도 학교에서 교사는 고함 한 번 못 치고 제지할 어떤 수단도 주어지지 않은 채 그 모든 것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감내해야 하는 이상한 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내 일이 너무나 고단하게 다가왔다.
그날 나는 승현이를 보며 어떤 배경을 가졌기에 저런 행동을 할까? 다시금 그 아이의 속 마음을 물어봐주고 들어주고 싶다는 일말의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것을 의지적으로 차단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4월부터 시작된 내 전담 수업에서 매주 2번씩 승현이를 만나지만 초반에는 승현이에게 의도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아니 다가가지 못했다. 내 안에 학습된 트라우마는 승현이를 점점 비인간화시켜 생각하게 만들었고, 사랑스럽고 격려해주고 싶은 예쁜 학생이 아닌 그저 내 수업을 듣고 가는 여럿 중 한 명으로만 여기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 후에 내 수업에서 또 저런 행동을 하면 어떡하냐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승현이는 그런 적 없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그날의 자기 행동에 대해 나에게 설명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나도 그날의 일을 먼저 묻지 않았다. 너무나 멀쩡하게 평균보다 탁월하게 수업을 받고 가서 오히려 그날의 일이 더 화가 나고 이해가 안 되지만 내가 해야 할 행동만 하며 더 이상 승현이에게 나의 깊은 관심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아직도 황당하다.
그때 너는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아직도 황당하다.
교사 생활 십 수년이 넘어도 그런 학생을 만났을 때 여전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며 당황하는 것이.
아직도 황당하다.
그런 학생의 문제 행동을 보고도 아무도 그 학생을 제지시킬 수 없는 학교 속 시스템이.
아직도 황당하다.
승현이 같은 아이를 만날 때마다 무기력이 학습되어 너는 너, 나는 나! 하면서 더 이상 그네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기 꺼려하는 자기 보호적인 나의 모습.
정말 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