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나보다 나은 아이들.
#1.
어느 날 1호가 말했다.
"엄마, 술래잡기가 왜 술래잡기야? 술래를 잡지도 않는데?
술래 피하기라고 이름 지어야 되는 거 아니야?"
나:(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생각 중... )" 정말 그렇네. 1호 말이 맞다. 술래를 잡는 건 아닌데..
진짜 술래 피하기가 더 적합한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있던 동생 2호가 한 마디 덧붙인다.
" 엄마, 술래(가) 잡는다고 술래잡기 아니야? 술래가 다른 애들 잡잖아. "
나: " 오잉, 그것도 말이 되네. "
이런 순간이 참 소중하다. 이런 비판적 사고가 사그라들지 않아야 할 텐데.
시는 그저 내가 느낀 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 시대적, 작가적 배경을 통한 해석을 내 해석으로 외워서 정답을 찍어내야 하는 한국 교육을 십수 년 겪고 나면 사라지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는 마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식을 넘어 데이터 무기를 휘둘러 대는 세상에서 그 데이터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만이 인간이 컴퓨터를 넘어 할 수 있는 일이라는데 내가 무심결에 하는 말은,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교육은 나의 아이와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이 귀한 비판적 사고를 열심히 잘라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씩 섬뜩하게 걱정이 된다.
#2.
4월에 아파트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붉고 흰 꽃들을 보고 2호가 말했다.
" 엄마, 이거 철쭉이야? "
나는 유치원에서 봄꽃에 관해 배웠나보다 하고 흐뭇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알려줘야지.. 하고 말했다.
" 응, 이거 철쭉 같지? 근데 사실은 영산홍이야. 둘이 비슷해서 구분이 잘 안돼."
언젠가 우리 아파트에 심긴 꽃은 영산홍이라는 소리를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 같아서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 둘이 뭐가 다른데?"
" 응.. 엄마도 잘 몰라. 찾아볼까?"
찾아봤더니 철쭉은 수술이 열개, 영산홍은 다섯 개란다.
그러더니 갑자기 2호가 꽃 안에 수술을 막 센다. 암술이 하나고 혼자 큰 걸 몰라 함께 세는 듯.
" 엄마, 이거 철쭉인 것 같은데? 수술이 많아."
나: ( 너무 놀랐다. 십 년간 영산홍인 줄 알았는데.. 확실히 센 거 맞아? 네가 잘못 세었겠지.)
" 그래, 그럼 같이 세어보자."
" 2호야, 이 가운데 키 큰 아이가 여자야, 암술. 암술이 하나지. 그리고 옆에 짧은 것들이 수술인데..
하나, 둘, 셋,...... (오 마이 갓!) 진짜 열 개네."
나는 깜짝 놀라 철쭉과 영산홍의 차이점을 다시 검색해 봤다. 철쭉이 수술이 열 개 맞아? 맞네.
" 2호야, 이거 철쭉이었네. 엄마는 이제껏 십 년 동안 영산홍인줄 알았어."
십 년 동안 빨갛게 피는 꽃을 보고 감탄만 할 줄 알았지, 누가 영산홍이라길래 그런가 보다 했지, 한 번도 철쭉과의 차이를 생각해 본 적 없고, 더구나 수술 개수를 세어볼 생각도 못했던 나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이 참 귀하게 여겨진다. 어떻게 하면 그런 모습을 더 멋지게 길러줄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모자란 교육자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