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 퍼펙트 데이> (2017,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어 퍼펙트 데이>를 직역하면 "완벽한 하루"다. 완벽이란 단어가 붙으면 우린 역설적으로 반어법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나는 영화 속 인물들이 최고의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계속 실망하고 꼬여가는, 그래서 최악을 향해 달려가는 제목과는 다른 새드엔딩을 상상했다. 그러나 실제 영화 결말은 예상과 다르게 유쾌하고 또 유쾌했다.
영화는 우물에서 남성의 시신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줄이 끊어져 버리고 만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하루 종일 덩치 큰 성인 남자를 깊은 우물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길고 아주 단단한 줄을 찾는다. 우물에 던진 시신을 치우고 오염된 물을 다시 깨끗하게 만든다. 이것이 UN 구호대원인 맘브루가 할 일이다. 그러나 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맘브루는 UN 베이스캠프에 지원 요청을 해보지만, 지뢰 위험 구역이란 이유로 도움을 못 받게 되고, 줄을 판매하는 가게에 갔으나 줄이 있음에도 줄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고, 니콜라라는 꼬마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이젠 축구공까지 찾아다녀야 할 판이다. 게다가 UN 베이스캠프에서는 맘브루의 전여자친구가 나타나 맘브루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종전 직후, 발칸 반도가 혼란스러운 만큼 맘브루도 혼란스럽다. 우물에서 시신만 꺼내면 끝나는 아주 단순한 일이 점점 어렵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줄이 그에게 무엇이길래 포기하지 않고 찾아다니는 걸까 의문이 생겼다. 종전이니 UN도 발칸반도를 철수할 예정이고 지뢰 위험 구역이라면 나와 팀원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조국으로 돌아가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맘브루는 산길 곳곳 비포장도로에 지뢰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소를 두고 위험을 감수할 만큼 줄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줄이 그렇게 찾기 어려운 물건이던가. 왜 하필 시신을 거의 다 들어 올렸을 때 줄이 끊어진단 말인가. 이렇게 하루가 험난하고 고생할 줄 알았으면 지원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줄을 찾는 여정에서 지역 곳곳에 전쟁이 남긴 상흔을 볼 수 있다. UN은 종전을 선포했으나, 아직 전쟁 중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전쟁 포로들, 줄이 있지만 전쟁으로 인해 경계하고 방어적인 지역 주민들, 누군가 악의적으로 하나뿐인 우물을 오염시켜 식수 공급이 중단된 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훨씬 비싼 돈을 주고 깨끗한 정수물을 사는 일. 맘브루는 구호대원으로서 무기력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 줄을 찾아 자신의 하는 일이 마치 맘브루 자신 또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고 싶은 게 아닐까. 어딘가 줄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계속 꼬여가고 마음대로 되는 하루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할 일을 무사히 마치고 마을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기대하지만 매번 절망하고 만다. 맘브루는 줄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비포장 도로를 운전하고 계속 운전하고 끊임없이 이어진 길을 계속 운전하면서 마주친 전쟁의 상흔에서 자신의 희망이 꺾일 때마다 맘브루는 좌절했을 것이다. 마침내 맘브루가 줄을 찾았을 땐 그 줄은 누군가의 절망이 되어버렸다. 전쟁의 참상을 마주한 맘브루는 그 줄을 가져와 마을로 다시 먼 길을 떠난다. 그렇게 줄은 절망이었다가 비로소 다시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 줄을 힘겹게 찾음으로써 '완벽한' 하루가 될 뻔했지만, UN의 반대로 시신은 다시 우물 속에 빠져버리고 만다. 희망은 가까이 있으나, 가까이 있지도 않다. 맘브루가 유일하게 분노를 표출한 장면이 있다. 니콜라의 축구공을 새로이 찾아주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그 공을 갖고 있는 것을 맘브루가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위협을 가해 축구공을 다시 얻어냈다. 알고 보니 니콜라는 공을 그들에게 팔아 돈을 벌었고, 맘브루는 허탈해한다. 줄도, 축구공도 하루 종일 그에게 절망을 안긴다. 하지만 절망할 시간도 없다. 화장실이 열악한 곳으로 당장 팀원들과 도우러 가야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쏟아지고, 정말이지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다른 의미로 완벽한 하루가 된다. 비까지 쏟아지다니 하늘도 무심하다. 그러나 절망이 있는 곳엔 희망이 있다. 비가 온 덕분에, 미리 시신에 줄을 묶어둔 덕분에 아이러니하게 마을 사람들은 맘브루가 떠나고 나서야 시신을 건질 수 있었다. 맘브루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그가 호쾌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하루가 헛되지 않았다고. 희망은 절망 같다가도 결국 희망은 이루어지는 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