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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Aug 19. 2021

망각의 뫼비우스의 띠

김 영하 작가와 원 신연 감독의 <살인자의 기억법>

*학부 <문학과 영상>이라는 수업으로 원작과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비교 분석한 비평 과제입니다. 


책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영화 포스터 출처 : 네이버 포토 


1. 망각에 대한 두려움녹음과 메모 (일기

김 병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숱한 살인을 저질렀는데 딸인 은희가 살해당하는 것은 막으려고 한다. 그의 직업은 말 못하는 짐승을 살리는 수의사이다. 즉, 김 병수는 살인과 구원을 동시에 행했다. 또한 김 병수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난 뒤, 자신이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아닌지 혼란스러워 한다. 소설과 영화 모두 알츠하이머 앞에서 무기력 해지는 김 병수의 서사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김 병수는 기억하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쓰니 녹음하기를 거절한다. 30년 동안 수의사 일을 하며 치료만큼은 잊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3번의 항암주사를 놓고 죽은 고양이를 보며 녹음을 시작한다. ‘20러 8588’ 차량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김 병수는 영화 초반 문화센터 사람들 앞과 민 태주와의 첫 만남에서 살아있는 눈빛과 달리 혼란스러워 하고 불안해 보인다. 또한 예전 같았으면 벌써 대숲에 묻어버렸을 텐데.”나 은희를 보면 더 살고 싶어진다내가 누군지 잊어버리기 전에아니 내가 누군지 잊어버리기 위해.”, “결국 조 현주는 내가 죽인 것이었다.” 등 김 병수의 내면심리와 두려움을 내레이션(narration)으로 보여준다. 소설 속 김 병수는 과거의 살인에 자부심을 갖고 다시 살인에 몰입하고 싶어 한다. 또한 오이디푸스 이야기(p.117-8)에서 오이디푸스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아버지가 나의 창세기다.”(p.30), “나는 악마인가아니면 초인인가혹은 그 둘 다인가.”(p.33)에서 자신을 ‘신’으로 생각한다. 난생 처음으로 필요에 의한 살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략내 생에 마지막 할 일이 정해졌다박주태를 죽이는 것이다그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전에.”(p.70) 등 자신이 직접 박 주태를 단죄하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김 병수는 망각에 대한 두려움도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이는 김 병수는 신이 아니라 인간임을 보여준다. 잊지 않으려고 메모와 녹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두렵다솔직히 좀 두렵다경을 읽자.”(p.47)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숨이 막힌다.”(p.98) 또한 오이디푸스 이야기 (128-9)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혼돈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p.134), “나는 망각 속을 걸어들어간다.”(p.144), “무심코 외우던 반야심경의 구절”(p.148) 등 자신의 기억의 무상함을 깨닫고 망각과 기억의 굴레에 빠진다.        


2. 인물의 변화안형사와 은희와 병수의 누이박주태와 민태주

영화는 소설과 다르게 안형사는 실재하는 인물이고 김 병수의 조력자이다. 병수의 누이가 병수의 상상 속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은희는 치매요양간호사이지만 영화에서는 은행원이자 김 병수의 의붓딸이다. 박 주태와 민 태주는 김 병수가 그를 살인자라고 생각해 쫓는 인물이고 박 주태는 형사로, 민 태주는 연쇄살인의 범인이자 순경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안형사와 은희, 병수의 누이와 민 태주이다. 소설에서 안형사와 은희는 김 병수 자신이 믿고 있던 기억들을 결말에 이르러서 한 번에 무너뜨려 김 병수가 공(空) 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영화 속 안형사는 김 병수를 도와주며, 민 태주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확실한 물증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김 병수는 누이의 수녀원을 방문해 자신의 기억의 불완전성을 깨닫고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녹음기에 녹음된 은희와 민 태주의 목소리를 듣고 기억의 혼돈 속에서 깨어나 민 태주를 결국 살해한다. 감독이 은희를 김 병수의 의붓딸로, 병수의 누이를 수녀님(실제로는 청소년 시절에 자살했지만)으로 설정한 이유는 김 병수가 부성애와 누이에 대한 죄책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소설이나 영화에서 김 병수가 감정이 없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사실 김 병수도 불완전한 인간임을 보여준다.             

 

3. 흰 운동화와 터널과 목걸이가 가지는 의미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와 결말은 수미상관을 이룬다. 머리를 짧게 자른 김 병수는 불안해 보이는 눈빛과 흰 운동화를 몸에 지니고 있고 스산한 터널을 지나온다. 흰 운동화는 김 병수의 학창시절, 어머니가 그에게 선물을 해주었다.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가 김칫국물이 묻은 흰 운동화를 베고 자고 있었다. 김 병수는 운동화를 제 품으로 가져왔고 그날 아버지를 살해한다. 영화의 현재 시점에서도 흰 운동화를 클로즈업 해 보여주고, 요양원으로 간 김 병수는 흰 운동화를 찾는다. 흰 색인 이유는 최근의 기억부터 과거의 기억까지 잃어버려 나중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수한 무지의 세계”(p.129)로 돌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운동화는 사람이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는 것처럼 기억이 떠돌아다님을 의미한다. 김 병수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섞이고 그 기억을 얼마큼 믿어야 하는지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터널은 망각 속에 갇힌 김 병수를 보여준다. 터널을 지나오고 주소가 적힌 목걸이를 클로즈업 하는데, 거기에는 의붓딸 은희가 아닌 민 태주의 사진이 있다. 김 병수는 눈에서 경련이 다시 시작되고 또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 즉, 김 병수는 망각의 굴레에 갇혀있다. 목걸이는 영화 속에서 두 번 비춰지는데, 은희와 민 태주의 사진이다. 김 병수는 은희의 사진을 끼우며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기억이 사라져가도 목걸이 속 인물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김 병수에게 민 태주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김 병수는 또 다시 민 태주는 쫓을 것이다. 자신이 민 태주를 죽인 것을 기억해낼까, 못할까. 다음은 누구일까. 이것이 감독이 남겨둔 김 영하 작가의 *(방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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