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첫 독립국 2002년생 동티모르의 독립 회복 기념일을 축하하며
삐-삐-. 휴일의 알람 소리는 기분 좋게 사람을 깨우는 재주가 있다. 더 잘 수 있다는 선택의 여지 때문일까, 잠을 빼앗긴다기보다는, 눈가에 묻은 남은 잠을 털어내는 느낌이다. 그렇게 5월 20일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동티모르의 독립기념일이다. 편의상 독립기념일이라 부르지만, 실은 독립 회복일(Restoration of Independence Day)이 조금 더 정확한 명칭이다.
동티모르는 400년이 넘는 수탈의 역사를 겪고도 오늘날 당당히 주권 국가로 살아남은 작지만 강한 나라다. 4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백단목을 모조리 베어가며, 어떤 기간시설 투자도 하지 않은 포르투갈, 연합군을 견제한다는 명목 하에 남의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일본, 그리고 내부 분열을 조장하며 동티모르에 갈등의 씨앗을 심은 악랄했던 인도네시아를 견뎌내고, 2002년 5월, 동티모르는 마침내 당당하고 벅차게 "독립의 회복"을 선언했다. (동티모르는 포르투갈로부터 1975년 11월 독립하고 일주일 후 인도네시아의 침공을 받아 24년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우리나라도 외세의 압력과 일제의 수탈을 겪어냈기에, 동티모르의 역사에 깊은 유대를 느끼는 한편, 우리가 찬란한 역사와 유구한 문화를 키워내는 동안에도 늘 족쇄를 차고 있었을 동티모르를 생각하면, 그 투지와 끈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속눈썹에 대롱대롱 매달린 잠을 비벼 떼어낸 후 침대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동티모르인은 음주가무에 능한 한국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경사가 생기면 밤새도록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진정한 ‘파티 민족’이기에 독립기념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집에서 정부청사까지 한 시간 남짓 거닐며, 한창 거리에 물들고 있을 축제의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다. 이른 아침부터 이글대기 시작한 적도의 태양을 바라보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챙겨 집을 나섰다. 함께 걷기로 한 동티모르인 친구는 이미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태양은 뜨거웠고, 마스크로 인해 더운 숨결이 그대로 피부에 닿았다. 이 시간에 걷기로 하다니, 내가 미쳤지. 바로 그때 나무 그늘에서 건기를 알리는 바람이 성큼 불어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부채질하듯 식혀주었다. 너무 일찍 또는 늦게 나온 걸까, 거리는 조용하고 한산했다. 간간이 차나 오토바이가 동티모르 국기를 흔들며 지나갈 뿐이었고, 삼색휘장을 화려하게 두른 정부청사만이 덩그러니 서서 지치기 일보 직전의 우리를 맞아주었다. 아마도 코로나19의 확산에 대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따라 올해는 조용하게 보내려는 모양이다. 불과 18년 전의 일이다. 떠오르는 해와 같은 청년들부터 황혼을 맞은 노인들까지 국민의 대부분이 그 날의 기쁨을 생생하게 기억할 텐데, 서로의 안전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양보한 동티모르 국민을 보고 누가 감히 후진국 국민이라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대신 정부청사 건너에 있는 바다가 평온하고 담담하게 독립 회복 기념을 축하하고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 위치한 바다 옆 돌난간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양 어깨에 과일을 주렁주렁 매단 장대를 인 젊은이가 다가왔다. 끈질기게 구매를 강요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젊은이는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미련 없이 제 갈 길을 간다. 그 신사다운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태양 아래 어른거리는 장대를 맨 그의 그림자가 마치 ‘디케의 저울’ 같아 보인다. 저울의 한쪽이 동티모르의 독립이라면, 다른 한쪽, 독립의 값비싼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 독립을 염원하던 동티모르인들이 흘린 피와 눈물일까, 동티모르 바닷속 석유를 호시탐탐 노리는 열강들의 욕심일까, 아니면 산속에서 이십 년을 넘게 독립 투쟁한 게릴라들의 세월일까.
나는 그 답을 2020년을 살고 있는 동티모르인 친구에게서 찾는다. 당시 인구 80만 명 중 20만 명을 학살한 인도네시아 군인과 민병대를 향해, 그들도 실은 정권의 피해자라고, 그래서 구스마오, 루악, 호르타 등 당대의 독립영웅들과 함께 동티모르 국민은 이들을 모두 용서했다고, 먼바다를 바라보며 친구가 말했다. 아픈 과거를 끌어안고 머물러 있는 대신 동티모르인들이 선택한 용서와 화해는 21세기 신생 독립국에 마침내 찾아온 평화를 단단히 지탱할 만큼 무게 있고, 단단하다.
루악 총리가 산속에 숨어 독립 투쟁을 할 때다. 독립이 가능할 거라고 보냐는 외신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독립하기 전까지 산에서 내려가지 않겠다.” 그에게 독립은 가부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2002년생 동티모르는 아직 최빈국 딱지를 달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 혹자는 동티모르의 발전에 회의를 품지만, 작지만 강한 나라, 폭력과 지배의 역사 속에서 비폭력과 화해라는 어려운 선택을 한 동티모르는 더딜지언정 평화와 번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