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강의실에서 "초구딱" 전략으로 살아남기
학교 하나 다니는데 뭐 이렇게 용기가 많이 필요한 건지, 이번엔 "말할 용기"로 돌아왔다. 이러다 "용기" 시리즈로 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하버드랑 MIT 강의실 책상에는 조그마한 홈이 있다. 이게 뭐냐면, 이름표를 끼워 넣는 공간이다. 수업이 참여형으로 진행되며 교수님도 "어이 거기, 까만 옷"이라고 하지 않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준다..ㅎㅎㅎ (물론 이 상황은 전혀 다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수업시간에 말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말 한마디 하려고 하면 손에서 땀이 나고 머릿속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모든 세포들이 의견을 생산하는 공정에 투입된다. 정작 그러다 보면 그 사이에 교수님이, 또는 다른 친구들이 한 말을 놓쳐버린다. 패닉에 빠진다.. 혹시 내가 말하려는 바를 방금 이미 다룬 거면 어쩌지..? 그렇게 고민하다 말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다양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Communication consulting이었다. 전문가랑 One on one 세션을 진행하는 거였는데 등록금을 뽕 뽑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놈의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냉큼 신청했다. 신청은 했으나 큰 기대는 없었는데, 의외로 그녀는 나에게 세 가지 가르침을 주었다.
첫째, 영어를 못해서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ㅠㅠ 팩폭.. 순살치킨 됨). 나는 애꿎은 영어 실력만 탓해왔는데 사실 콘텐츠가 없어서, 또는 할 말이 정리가 안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게 수업시간에 할법한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걸 구조화한 뒤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더 fancy 한 영단어를 추가한 것도 아닌데 훨씬 말하기가 수월했다. 그렇다.. 나는 그냥 말을 못 하는 거였다. 문제를 직시하게 되자 외국어 실력 탓만 하는 못난 모습에서 벗어났다ㅎㅎ 그 뒤로는 수업 자료를 미리 읽고 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reading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한 뒤 수업에 임하게 되었다.
둘째,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에,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했듯,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느라 말할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맞말이었다. 나는 어떤 수업에서 Warm call (콜드콜이 아니고 웜콜이라 하는 이유는 교수님이 너무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어서...)을 당했는데, 갑작스러웠던 만큼 헛소리를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강의실에 남아 머리칼을 쥐어뜯고 있었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는 내가 웜콜을 당한 줄도 몰랐다.
끝으로,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는 내게 Emy Cuddy 교수의 파워포즈 이론을 설명해 줬다. 2분 정도 파워포즈 (aka 슈퍼맨포즈)를 하고 있으면 자신감이 높아지고 긴장을 덜하게 된단 것이다. 실제로 15명 정도 듣는 수업에서 (슈퍼맨 포즈를 할 순 없으니) 사장님 포즈를 해봤는데 자신감이 높아진 건 모르겠고.. 발언을 하긴 했다. 왜냐하면 보고받는 회장님처럼 앉아있다 보니 뭐라도 한마디 해야만 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파워포즈.. 효과는 있는 걸로?!
Ted 강의영상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s-_Mh1QhMc
강의실에서 손에 땀을 쥐며 말할 각을 재는 동안 생뚱맞게도 나는 야구를 떠올렸다. 황성빈 선수가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더랬다. 사람들이 초구 치지 말라고 하는데 상대가 어마무시한 투수일수록 초구를 노려야 한다고 (초구 스트라이크 확률은 약 68%에 달한다). 하버드라는 overwhelming 한 환경에서는 일단 먼저 지르고 보는 게 효과적인 거 같다. 그래서 초구 치는 타자처럼, 수업 시작하자마자 먼저 발언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초구딱" 전략은 꽤나 효과적이다. 사람들이 의견을 보탤수록 팔로업도 힘들고 생각은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일단 한 번이라도 말하고 나면 오늘 밥값은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지며, 이어지는 논의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생긴다.
레드삭스의 영결, MLB의 마지막 4할 타자 (so far), 테드윌리엄스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Just keep going. Everybody gets better if they keep at it."
그렇다, 그냥 말해보는 거다.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하루는 허튼소리 하다 이불킥 하고 하루는 뭐 이 정도면 선방했다 싶고, 또 어느 하루는 머릿속에서 계속 리플레이해 볼 만큼 자랑스럽겠지. 그러다보면 테드 윌리엄스 형님처럼 열 번 중 네 번은 뿌듯하고 자랑스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