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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우뚝 May 10. 2020

채식 권하는 사회

평범한 사람의 베지테리언 도전기

    치이이익, 타는 소리와 함께 주위에 연기가 일었다. 눈이 매운 줄도 모른 채 온 정신을 집중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고기는 여러 번 뒤집으면 맛이 없기 때문이다. 첫 입질 이후 신중하고도 신속하게 챔질 하는 낚시꾼처럼, 고기를 언제 뒤집어야 할지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신입사원의 덕목 중 하나는 고기를 노릇노릇 구워내는 것임을 속으로 되뇌며, 잘 익은 고기를 불판 가 쪽으로 자랑스레 밀어놓았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상이라는 말처럼, 밀린 업무 현안을 논의하느라 사람들의 먹는 속도가 잠시 느려지자, 한편엔 익은 고기가 쌓여갔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각자의 앞에 놓인 접시 위에 고기를 한 점씩 올려두었다. 그러자 얼마 전 팀에 합류한 A 과장이 말했다.

 

“어, 나는 됐어, 고마워요.”

“고기 안 드세요? 혹시 속이 안 좋으세요?”

“그게 아니라, 나는 채식주의자야. 국수 먹으면 돼.”

  

    말로만 듣던 채식주의자를 처음 접하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식습관의 다변화로 인해 한국에도 채식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당시만 해도 내게 채식이란 할리우드 스타를 연상케 하는 이국적인 무엇이었다. 채식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어보려는 찰나, B대리가 끼어들어 “과장님은 베지테리언이고, 나는 돼지테리언이야!”라며 익살스레 농담을 건넸다. 왁자지껄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 우리는 본격적인 회식에 접어들었다. 나는 다시 고기를 굽는데 집중했고, A과장에 대한 호기심은 고기 굽는 연기와 함께 흩어졌다.

 

    그로부터 4년 후, 동티모르로 파견된 나는 이곳에서 많은 채식주의자들을 만났다. 외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엔 꼭 채식 메뉴가 있었다. 채식을 하는 친구들은 남들과 다름을 변명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했다. 채식을 여전히 비주류로 구분 짓던 내게 그들은 마치 힙스터 같았다. 나도 한 번 따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동티모르처럼 낯선 환경에서 갑작스레 식습관을 바꾸면 건강에 타격이 있을지 모른다고 합리화하며, 일반식을 고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특이한 채식주의자를 만났다. 채식한다더니, 이 녀석, CF 감독이 눈독 들일 정도로 치킨을 너무 야무지게 먹는다. 황당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나보다 작은 동물은 먹어.” 그럼 채식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친구는 이 또한 채식의 한 종류(폴로 베지테리언)라고 설명했다. 그래? 채식이 그런 거라면 나도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의 채식 도전이 시작되었다.


야채를 다듬어 볶아먹던 초창기 채식요리

    목표를 너무 무리하게 잡으면 쉽게 포기하게 될까 봐, 달걀, 유제품, 해산물과 가금류까지는 허용하기로 했다. 즉, 소고기와 돼지고기부터 끊어나가기로 했다. 채식주의자가 되기 위해 첫째,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채식 도전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고기라면 환장하는 나였기에, 의지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유난이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외로 태연하게 수긍하며,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한 말이 있으니 적어도 작심삼일은 가야 하지 않을까 눈치가 보였다. 덕분에 외식을 할 때 당당히 채식 메뉴를 주문하며 육식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둘째, 요리를 시작했다. 동티모르 내 대부분의 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제공하고 있지만, 채식 전문 식당이 아닌 이상 여전히 메뉴 선택의 폭이 좁다. 그래서 채식을 결심한 이후부터는 자연스레 외식보다는 집에서 간단한 일품요리를 만들어 먹는 일이 잦았다. 고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매우 간단할 것 같지만 사실 야채를 손질하는 게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겨우내 먹을 음식을 김장하듯, 야채와 과일 등 재료들을 한꺼번에 다듬은 후 소분하여 냉동했다. 그러자 요리를 하는데 드는 품과 시간이 줄어들었고, 채식 식단에 점차 익숙해질 수 있었다. 부수적으로, 많은 양의 채소나 과일을 한꺼번에 다듬는 단순 노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평안도 찾을 수도 있었다.


    끝으로, 날짜를 세기 시작했다. 채식을 시작한 날로부터 지금이 며칠째인지 알 수 있게 핸드폰에 표시를 해두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채식을 시작한 날짜를 표시했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도전을 시시콜콜 남에게 알리는 게 부담스러워 시작 날짜를 03월 18일이 아닌 8130으로, 거꾸로 입력해 두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고, 이를 설명하게 되면서 오히려 ‘베밍아웃(vegetarian + coming out)'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나와의 약속에 하나둘 증인이 생기자, 약속의 무게가 점차 무거워졌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자, 떠나온 길이 멀어 돌아갈 엄두가 안나 듯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하루하루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아침에 들이키는 과일주스와 같이 꽤나 달콤했다.


채식 궤도에 오른 후 만든 (좌) 오크라 양파 장아찌, (우) Stuffed pepper

    채식주의자가 된 지 어언 두 달째에 접어들었다. 상황에 따라 해산물과 가금류를 먹는 폴로 베지테리언인지라, 스스로를 시간제 채식주의자(Part-time vegetarian)로 칭하고 있다. 동티모르는 냉장유통이 발달되지 않아 맛이 별로인 멸균우유밖에 찾아볼 수 없고, 섬나라임에도 신선한 해산물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또 치킨이나 계란을 평소도 그리 즐기진 않기에, 꽤 구색 갖춘 채식주의자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동티모르에 있기 때문에 채식을 못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 큰 술 털어먹자, 동티모르에 있기 때문에 채식을 더 잘 실천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과연 마음은 먹기 나름이고, 시작이 반이다. 고작 두 달 차 초보 채식주의자이지만, 일반식을 하던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단 느낌을 받는다. 채식을 한 이래, 그간 달고 살던 배앓이를 한 적이 없고, 피부가 맑고 깨끗해졌다. 제철 채소와 과일로 배를 채우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한번 가벼워진 몸은 더 이상 육식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윤리적, 종교적, 건강적 이유 등 다양한 계기로 채식에 입문한다. 나는 오히려 채식을 먼저 시도한 후 채식의 이유를 찾아가는 쪽에 속한다. 채식을 하며, 채식 및 육식에 대한 책들을 틈틈이 읽고 있다. 다양한 이유 중 동물권 존중과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채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마음이 실린다. 그렇다고 해서, 육식에 반대하지 않는다. 나의 채식주의자로서의 선택이 존중받듯, 각자의 사정에 따른 육식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폴 매카트니가 제안한 ‘고기 없는 월요일(Meatless Monday)’은 한 번쯤 권해보고 싶다. 꼭 월요일이 아니라도, 일주일에 하루만 고기를 먹지 않거나 줄이면, 1년간 560km 거리를 운전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채식 식단을 통한 미각의 확장, 우리가 함께 사는 환경과 동물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이 소소한 성취감을 당신도 함께 맛보면 좋겠다.


(좌)채식해도 술은 먹는다! 채식 스타일로 꾸며본 과일 진앤 토닉, (우) 나만의 김장 채소와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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