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리 다시 시작할까? 기왕이면 처음부터

오늘따라 왜 이리 긴장될까. 너는 어때?

by 박하준

겨울 햇살이 반가운 일요일 아침. 평소라면 12시까지 늦잠을 자는 영주였지만 오늘은 아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3개월 회원권을 끊고 한동안 가지 않았던 헬스장을 다녀왔다.

간만에 땀을 뺀 영주는 시원한 겨울 아침 바람이 반가웠다.


“역시 사람은 운동을 해야해.”


그리고 평소라면 넘어가는 아침도 오늘은 든든히 먹었다. 바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1주일 동안 애타게 찾았던 그 남자. 오늘 드디어 그 남자를 본다.

영주는 어제 밤 일이 믿겨 지지 않았다.


어제 서하의 답장을 받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

답장까지 30초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주는 뒤늦게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꿈이 아니란 걸 깨닫고 서하의 문자를 다시 곱씹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설렜다.


자그마치 4년이었다. 그 남자에게 문자가 오기까지.

영주는 서하에게 보낼 답장을 고민했다. 그때였다. 그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

영주는 심호흡하고 그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그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영주야 나 누군지 알겠어?”

“응...”

“나 너가 내 전화 안 받을까 걱정했어.”

떨고 있는 서하가 귀여웠다.

그래서 괜히 장난치고 싶었다.


“안 받긴 왜 안 받아 전화 온건 받아야지. 다행히 보이스피싱은 아니네.”

“보이스피싱? 아 ….”

서하는 내 썰렁한 농담에 긴장이 풀렸는지 웃었다.

“썰렁한 농담 여전하네. 서영주.”

“당연하지. 내가 8년 동안 누구한테 배웠는데.”

8년이었다. 서하와 함께한 시간이.

나의 행동, 습관들엔 모두 그 남자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저 … 있지 영주야. 그 …. 내일 ….”

진정된 줄 알았던 그 남자의 떨림이 다시 느껴졌다.

“응? 내일 왜?”

“그…. 있잖아….”


이상했다. 분명 2년 넘게 연습한 그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녀에게 처음 고백했던 그때 같았다. 서하는 침을 삼키고 다시 용기를 냈다.


“응.”

서하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영주도 덩달아 긴장했다.

“내일…. 내일 혹시 시간….”

서하가 떨고 있었다. 처음 나에게 좋아한다 고백했던 그때처럼.

영주는 그런 서하가 귀여웠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자신이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하야 내일 나랑 데이트할래?”


서하는 영주의 직구에 잠시 벙쪘다. 정말이지 강한 직구였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서영주가 어떤 여자였는지.

직구밖에 던질 줄 모르던 여자였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던 여자였다.

그 후에 나눈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던 것 같다.


“응? 응!!!!!! 좋아!”

“그럼, 내일 1시에 연남동에서 만나자.”

“연남동? 알겠어!”

“그럼 끊는다.”

“영주야! 잠깐만!”

“응? 할 말 더 있어?”


서하는 이번엔 자신이 용기를 내고 싶었다.

“그…. 잘자.”

“뭐야. 킥킥. 서하 너도 잘자.”

“내일 멋있게 하고 갈게!”

“알겠어. 이제 진짜 끊는다.”


5분이 채 안 되는 전화였지만 강렬했다.

그 강렬함은 일요일엔 집순이 모드가 당연했던 두 남녀를 오랜만에 설레게 해주었다.

서하는 영주를 만날 생각에 밤새 맛집, 분위기 좋은 카페 등을 찾아봤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듯 그녀와의 데이트 코스를 열심히 짰다.


혹시 모를 변수까지 생각해 플랜C까지 만들었다. 4년 만에 영주와 데이트다.

서하는 빨리 오후 1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무슨 머리를 할까.

간만에 가르마를 타볼까. 아니면 머리를 넘겨볼까.

옷은 뭐가 좋지. 롱코트? 무스탕? 서하는 계속 고민하다 새벽 2시쯤 잠들었다.


지난 4년 동안 일요일은 약속을 만들지 않았던 영주였다. 하지만 오늘은 빨리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나가서 그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영주는 오랜만에 고데기를 꺼내 열심히 머리를 만져봤다.

아직 녹슬지 않은 자신의 고데기 실력에 만족했다. 그리고 무슨 옷을 입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얼마나 고민했을까.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했던게 얼마만이지.

옷을 8번 정도 바꿨을까. 처음이 가장 나은 것 같았다.

겨울하면 빠질 수 없는 코트에 목도리였다.


일찍 일어난 덕분인지 시간이 많이 남은 영주는 30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일요일 오전 연남동은 사람이 많았다. 그 중 대부분이 커플들이었다.

영주는 얼마 안 된 커플부터 오래돼 보이는 커플들을 구경했다.


10번째 커플을 구경하고 있을 때. 멀리서 서하가 뛰어왔다.

머리를 예쁘게 만진 서하였다. 영주는 그런 서하를 보자 괜히 장난치고 싶어졌다.


“저…. 누구세요?”

그녀의 장난에 서하는 웃었다. 그리고 8년 바이브로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아 저 오늘 서영주씨랑 데이트하기로 한 사람입니다. 반가워요.”

“아 네…. 되게 잘생기셨네요.”

“아 그 오늘 잘 보이려고 머리 좀 만져봤습니다. 히히. 중간에 잘 안되서 3번이나 깜았지만요.”

“킥킥. 3번이나?”

“응. 간만에 머리 만질려니깐 쉽지 않더라.”

“으이구 바보. 빨리 안내나 해주시죠.”

“네! 처음 갈 곳은 소금빵이 유명한 카페입니다.”

“소금빵이요? 오예!”


8년의 세월 덕분이지. 영주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서하였다.

앙버터 소금빵과 그냥 소금빵. 서하는 영주가 먹기 좋게 잘라주었다.


“되게 친절하시네요?”

“아 네. 습관이죠. 뭐”

“모든 여자한테 친절한 건가요?”

“아뇨. 한 명한테만 친절해요.”

“오 이서하 안 넘어가네? 합격.”


영주는 서하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소금빵을 입 안에 넣었다. 소금빵은 겉바속촉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서하는 소금빵을 오물오물 먹는 영주를 보며 햄스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에게 냅킨을 건넸다.


“바보. 입에 다 묻었다.”

“이게 인간미거든요?”

서하는 영주의 말에 빵 터졌다.


우리가 어떻게 8년을 만났을까.

일단 하나는 유머 코드 아니었을까?


“인간미 넘치시네요.”

“제가 쫌. 인간미도 넘치고 매력도 넘쳐요.”

“오 지금 보니 자신감도 넘치신데요?”

그녀와 실없는 농담을 계속하다. 가만히 그녀를 빤히 보았다.


영주는 서하의 시선에 자신의 입에 또 뭐가 묻었나 생각했다.

“왜 내 입에 또 뭐 묻었어?”

“아니. 예뻐서. 자꾸 보고 싶어.”

오늘만큼은 직구만 가지고 온 서하였다.

서하의 직구에 영주의 볼이 빨개졌다.


“이서하 멘트만 늘었네? 완전 선수야?”

서하는 영주의 말에 피식 웃었다.

“영주야.”

“응?”

“오늘 하루 내가 엄청 재밌게 해 줄게.”

“뭐야 이서하 완전 느끼해.”

“히히.”

“나 오늘 완전 재밌게 해 줘야한다?”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