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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Aug 13. 2022

율(燏), 편지#3

문득, 세계를 습득하고 세상으로부터 습득될 기세로

잘 지냈나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에 이 말을 망설이지 않고 멋지게 해내는 상상을 이따금씩 해요.

그 상상은 꿈으로도 이어졌던 것 같지만 그 꿈을 깨자마자 기록하지 못해서 이렇게 모호하게 남아있지만 때론 확실하지 않아 다행인 것도 있죠.



최근에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 도중에 당신이 떠오르진 않더군요. 당신이 제가 남겼던 말차럼 머리에만 남아가나봐요.

그리고 너무 좋았어요. 저의 인생 여행지로 등극해 버렸어요. 광활한 대자연과 절벽과 기암괴석, 웅장한 전경과 귀여운 가축들. 위험한걸 즐기는 당신도 분명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여행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니 문득 드네요.



공교롭게도 한국에 들어와 꽤나 아팠답니다. 건강했던 저인데 여행기간동안 물도 잘 못마시고, 피곤함이 지속되다 보니 면역이 조금 약해졌었나 봐요. 어디에서 옮은지도 잘 모르겠고 일도 못하고 며칠을 누워 있었답니다. 정말 아프더라구요. 그래도 여행가지말걸 하는 생각은 전혀 안들더라구요.


당신이 말했던 떠나게 될 날짜가 이제 다가온것같아요. 좋아한다던 페스티벌 소식을 듣고 알게되었어요. 제가 가자고 제안하니 그때쯤이면 기간이 조금 부담스럽다고 했던 기억을 살포시 갖고 있으니까요.



당신과 박물관을 가고 옛날 얘기를 나눴던 추억이 참으로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평범해도 당신이라 특별했어요.

당신은 어땠을까요.

수많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 중 하나로 그저 즐거움이었을까요? 아니면 나처럼 어여쁜 유일함이었을까요?


점점 회상이 당신에게 순수함이 아닌 가벼운 집착이 되는 건 아닐까 다시 걱정돼요.


당신이 생각나요.

보고싶다는 말은 안할래요.


당신이 먼저 보고싶다고 해주면 그때 제 맘을 얘기해 볼게요.



이제 저는 일상으로 돌아가 저의 본업과 아끼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밀도어린 진심으로 함께하고 싶어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촘촘히 기억의 책과 종이를 꽂을래요.

찢어질까 염려할거 없어요, 종이를 책 사이에, 그리고 적절히. 떠오르면 다시 볼 수 있게.





사막에서 낙타를 봤는데 참 귀여웠어요. 덩치는 말보다 큰것이 속눈썹은 길고, 순하고, 나를 봐주었죠.



그리고 아이들. 언어를 뛰어넘은 교감이 떠올라요.



교감, 참으로 누가 만든 단어일까요. 학습된 이미지도 있겠지만,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요.

앞으로도 여행이 아니라도 힘껏 교감할래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나만의 것'보다는 습득하고 공부하는게 수준을 올리는 길이라는 주제의 영상을 봤답니다. 보고 공감했죠. 다른 저명한 매개체를 접하는게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니까.



근데 저는 지금 저의 이야기를 그저 하고있네요. 그 어떤 선행학습 없이. 이것도 내가 나만의 것을 고집하려는 방어적인 태도에 불과할까요?

다른 사람 이야기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는걸요!


그치만 당신의 이야기는 기다리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줄래요?


내 삶에 몇 없는 아름다운 지진을 일으켜 준 당신.


당신께 오늘도 문득 편지를 씁니다.


아름답고, 팔팔하고, 한여름의 우롱차처럼 뜨겁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그리고 또 편지를 쓰게 될 당신의 최근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문득,

세계를 습득하고 세상으로부터 습득될 기세로.


편지할게요,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몸 조심!



너와 나 사이를 건너

 밝게 빚날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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